국가공무원법 68조, "공무원은 형의 선고, 징계처분 또는 이 법에서 정하는 사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휴직·강임 또는 면직을 당하지 아니한다." 교사는 국가공무원법 68조에 의해 신분을 보장받고 있다.
그러나 국가공무원법의 신분보장 조항을 침해하는 두 개의 법이 있다. 하나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폭법)이고 하나는 아동청소년보호법(이하 아청법)이다. 학폭법의 폐해는 널리 알려져 있어 간략히만 언급한다. 학폭법은 교사의 교육적 개입 자체가 원천봉쇄되어 있다. 교육적 해결이 아니라 재판에 준용하는 방식이 채택되어 있기 때문에 교사가 개입하는 순간 범죄가 된다. 따라서 나처럼 아이들의 문제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교사일수록 잠재적 범행(?)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아청법에 비하면 학폭법은 새발의 피다. 학폭은 발생의 기미라도 보이는데 교사가 아동학대로 걸리는 건 예측불가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초중등교육법 제38조(목적) "초등학교는 국민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초등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기초적인 초등교육에는 기본교육이 포함되어 있다. 기본 교육은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민주시민의 기본 자질에 해당하는 것이다.
복잡하지 않다. 인사하고, 줄서고, 종치면 자리에 앉는 등의 것이다. 기초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본교육을 해야 하는데 요즘은 교사가 기본교육을 시키는데 애를 먹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기초교육의 시간은 배정되어 있으나 기본 교육의 시간은 따로 배정되어 있지 않다. 즉 인사하기 몇시간 줄서기 몇시간은 정해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건 무슨 말인가? 기본적인 자기관리력은 이미 가정이나 이전 단계에서 배워왔다고 보고 기초교육을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교실에서는 기본 교육이 안된 아이들이 더 많아지고 줄서고 정리하는 것 하나 하나 새로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줄서고 인사하는데 놀이와 즐거움으로만 할 수 있을까?
아이의 발달단계에 맞춰 마음다치지 않게 성심을 다해서 하면 된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단호함과 엄격함이 필요하다.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필연적으로 단호함과 엄격함 그리고 교사에 대한 권위가 있어야 집단생활에서의 기본 질서를 가르칠 수 있다. 2015년 가정에서 학대받던 원영이 사건으로 촉발되어 입법된 아동청소년보호법의 원래 입법취지는 친권자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함이 컸다.
그러나 이것이 교사에게 화살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바로 교사를 보호자의 개념에 넣고 학대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교사든 친권자든 학대에 대해서는 엄단해야 한다. 그러나 그 기준이 모호하고 특히 교사는 부모의 공격에 대처할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시 앞으로 넘어가보자. 초등교육의 특성상 기본교육 즉 자기관리와 기초질서에 대한 교육을 교사가 한다. 이런 교육에는 필연적으로 단호함과 엄격함을 내재한다. 그렇다면 단호함과 엄격함으로 아이가 상처받았다고 교사의 학대자로 몰아붙이면 과연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글을 쓰는 나부터 살아남을 수 없다. 오히려 매일 엄격함과 단호함으로 아이의 문제사태에 접근하는 나는 잠재적 아동학대자가 된다. 너무 지나친 해석이 아닌가 우려하지만 실제 전국 곳곳의 학교에서 교사가 아동학대로 몰려 민원과 고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분명 국가공무원법 68조는 공무원으로서 교사의 신분을 법적으로 보장해주고 있지만 학폭법과 아청법 아래에서는 무용지물에 가깝다. 오히려 헌법보다 무서운 떼법은 교사의 신분을 한낮 파리목숨으로 만들 수 있다.
17년 7개월.. 앞으로 내가 정년까지 할 수 있다면 재직 할 수 있는 기간이다. 과연 난 정년을 볼 수 있을까?
학폭법과 아청법이 있는 한 숨 죽이며 복지부동하는 교육로봇으로 살아야 가능하지 않을까? 요 며칠 머리를 지끈거리고 가슴이 무거운 나날이 지속된다. 답이 없다.
(이 글은 차승민 선생님께서 2018년 7월 29일에 쓴 글입니다. 법이 교육을 쫒아내고 고통이 교사의 몫으로 남는 작금의 상황에 다시 불러온 글입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