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시

조재훈

시를 쓴다는 것, 부끄럽구나

아름다운 말을 골라야 하는가, 시여

일하는 이의 손, 숨어 우는 아이의 눈물

억울하게 눈 감은 가슴을 떠나

말을 비틀어 무엇을 짜는가

은행 앞 플라타너스에는

새도 와서 울지 않고

버려진 애가 쓰러져 자는데

버려진 애의 건빵만도 못한

시여, 화려한 문패여

겨울 공사장 헐벗은 일꾼들이

물 말아 도시락을 비우고

둘러앉아 몸을 녹이는

모닥불만도 못한 시여, 부끄럽구나

엘리어트가 어떠니 라캉이 어쩌니

우쭐우쭐 떠들어대면서

목판의 엿 한 가락만도

못한 시를 쓰는가, 시인이여

고구마로 한겨울

끼니 이어가는 아우에게

시인이라고 자랑할 것인가

흙을 등지고, 땀을 죽이고

먹고 낮잠 자는

외래어의 시를 쓴다는 것

부끄럽구나, 또 부끄럽구나

부끄러운 시업詩業

전종호

시를 쓰느라 밤새 시답잖은 시간을 보내고

시詩다운 것과 시답지 않은 것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시간을 돌아보는 아침

굴리는 눈알이 슴벅슴벅 편치 않다

고상한 것 같아도 시를 읽는다는 게

시인이라는 사람들 저 좋아서 먹고

떠들다 노래하고 쏟아낸 배설물들을

치우는 것은 아닌가 몰라

한 편의 시를 쓰고 한 권의 시집을 묶어

남을 읽게 하는 일이란

남의 귀한 시간과 돈과 여력을 빼앗는

되갚을 수 없는 헛지랄은 아닌가 몰라

시를 쓰고 시를 읽는 일이란 게 한심하게도

한 주먹의 통찰도 위로도 쓸모도 없는

쓰는 자 혼자의 기만과 만족이 아닐까 몰라

어쭙잖은 시인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조재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