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시 문답】죄의 시와 부끄러운 시업詩業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5.07.18 08:29 0 죄의 시 조재훈 시를 쓴다는 것, 부끄럽구나 아름다운 말을 골라야 하는가, 시여 일하는 이의 손, 숨어 우는 아이의 눈물 억울하게 눈 감은 가슴을 떠나 말을 비틀어 무엇을 짜는가 은행 앞 플라타너스에는 새도 와서 울지 않고 버려진 애가 쓰러져 자는데 버려진 애의 건빵만도 못한 시여, 화려한 문패여 겨울 공사장 헐벗은 일꾼들이 물 말아 도시락을 비우고 둘러앉아 몸을 녹이는 모닥불만도 못한 시여, 부끄럽구나 엘리어트가 어떠니 라캉이 어쩌니 우쭐우쭐 떠들어대면서 목판의 엿 한 가락만도 못한 시를 쓰는가, 시인이여 고구마로 한겨울 끼니 이어가는 아우에게 시인이라고 자랑할 것인가 흙을 등지고, 땀을 죽이고 먹고 낮잠 자는 외래어의 시를 쓴다는 것 부끄럽구나, 또 부끄럽구나 부끄러운 시업詩業 전종호 시를 쓰느라 밤새 시답잖은 시간을 보내고 시詩다운 것과 시답지 않은 것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시간을 돌아보는 아침 굴리는 눈알이 슴벅슴벅 편치 않다 고상한 것 같아도 시를 읽는다는 게 시인이라는 사람들 저 좋아서 먹고 떠들다 노래하고 쏟아낸 배설물들을 치우는 것은 아닌가 몰라 한 편의 시를 쓰고 한 권의 시집을 묶어 남을 읽게 하는 일이란 남의 귀한 시간과 돈과 여력을 빼앗는 되갚을 수 없는 헛지랄은 아닌가 몰라 시를 쓰고 시를 읽는 일이란 게 한심하게도 한 주먹의 통찰도 위로도 쓸모도 없는 쓰는 자 혼자의 기만과 만족이 아닐까 몰라 어쭙잖은 시인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조재훈 시인 2 0 중앙교육신문 중앙교육신문 jclee63kr@naver.com 중앙교육신문의 기사 더보기 저작권자 ⓒ 중앙교육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죄의 시 조재훈 시를 쓴다는 것, 부끄럽구나 아름다운 말을 골라야 하는가, 시여 일하는 이의 손, 숨어 우는 아이의 눈물 억울하게 눈 감은 가슴을 떠나 말을 비틀어 무엇을 짜는가 은행 앞 플라타너스에는 새도 와서 울지 않고 버려진 애가 쓰러져 자는데 버려진 애의 건빵만도 못한 시여, 화려한 문패여 겨울 공사장 헐벗은 일꾼들이 물 말아 도시락을 비우고 둘러앉아 몸을 녹이는 모닥불만도 못한 시여, 부끄럽구나 엘리어트가 어떠니 라캉이 어쩌니 우쭐우쭐 떠들어대면서 목판의 엿 한 가락만도 못한 시를 쓰는가, 시인이여 고구마로 한겨울 끼니 이어가는 아우에게 시인이라고 자랑할 것인가 흙을 등지고, 땀을 죽이고 먹고 낮잠 자는 외래어의 시를 쓴다는 것 부끄럽구나, 또 부끄럽구나 부끄러운 시업詩業 전종호 시를 쓰느라 밤새 시답잖은 시간을 보내고 시詩다운 것과 시답지 않은 것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시간을 돌아보는 아침 굴리는 눈알이 슴벅슴벅 편치 않다 고상한 것 같아도 시를 읽는다는 게 시인이라는 사람들 저 좋아서 먹고 떠들다 노래하고 쏟아낸 배설물들을 치우는 것은 아닌가 몰라 한 편의 시를 쓰고 한 권의 시집을 묶어 남을 읽게 하는 일이란 남의 귀한 시간과 돈과 여력을 빼앗는 되갚을 수 없는 헛지랄은 아닌가 몰라 시를 쓰고 시를 읽는 일이란 게 한심하게도 한 주먹의 통찰도 위로도 쓸모도 없는 쓰는 자 혼자의 기만과 만족이 아닐까 몰라 어쭙잖은 시인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조재훈 시인 2 0 중앙교육신문 중앙교육신문 jclee63kr@naver.com 중앙교육신문의 기사 더보기 저작권자 ⓒ 중앙교육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