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교사)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아이들의 달라지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었다. 평소 속을 많이 썩였던 개구쟁이들이 일단 변했다. 도대체 그게 학생의 어떤 인권에 해당하는지 모를 변명을 주절였고, 때로는 빈정거림을 섞어가며 반항감을 배설하기 시작했다. 토닥거리며 달래려는 시도에도 ‘손대지 마세요’라는 정색이 나왔다. 흡연하는 현장을 적발해도 꽁초를 던지며 증거 있냐고 묻는다.
잘못이 명확한, 마치 1 더하기 1이 2와 같은 상황의 지적에도 ‘왜요’를 남발한다. 이미 체벌을 자제하고 있었고 자정 능력으로 금지하려는 분위기였다. 당시 혁신 교육을 담당하던 장학관님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학생인권조례의 시행에 앞서 도내 학생부장들을 모아 의견이라도 들어보셨냐고 따졌던 기억이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인권이 심각하게 유린당하고 있다는 전제로 만들어졌다면 크게 오판한 거라는 생각이었다. 선생님들을 조금만 더 믿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많은 학생이 유명을 달리했다. 배에는 선생님들도 타고 있었다. 언론으로 들리는 선생님들의 미담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학교 안전 교육의 부실을 질타하며 이후 해당 업무가 폭증했다. 나는 그 당시에도 안전 지침을 잘 지킨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전문가의 지시를 어찌 인솔자들이 거부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세상이 잘 모르는 내용은, 비율로 따지자면, 당시 세월호에 있던 사람 중에 가장 많이 돌아가신 분들은 학생도, 승무원도, 일반 승객들도 아닌 바로 선생님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단원고 교감 선생님은 당신만 살아나왔다는 자책감으로 스스로 생을 달리하셨을까?
아이들에게 먼저 구명조끼를 주고 밖으로 나가라며 돌아가신 선생님들의 일화를 들었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희생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교원 단체들도 선생님들을 주목하진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스스로 면구스러워 그랬을 것이다. 그 당시 한 역사학자의 말이 가슴에 맺혔다. 단원고 선생님들은 특별히 의로운 분들만 뽑아서 그런 거냐고?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학교에 있는 수많은 선생님은 그와 유사한 일이 발생하면 당시 단원고 선생님들처럼 행동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대부분의 선생님이 그렇게 다짐하고 대학을 갔고 시험을 봤고 수시로 연수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영어로 직업을 뜻하는 단어 중 vocation이 있다. 라틴어 vocare의 voc(call)를 어원으로 하는 저 단어에는 신의 부름 즉 소명(召命)으로서의 직업의 의미가 들어있다. 우리 사회에는 소명 의식이 크게 요구되는 직업들이 있다.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인, 경찰과 소방관, 그리고 교사들이다. 소명 의식이 요구되는 직업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연민과 봉사 정신이 없으면 일을 수행하는 데 많은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내가 교사로 있으면서 얼마나 다른 학생들을 위하고 도움을 주려 했는지 생각하면 부끄럽다. 그러나 학교 울타리 안에서는 최소한 작은 무례라도 범하지 않으려 했고 작은 규칙도 어기지 않으려 했다. 웬만하면 사소한 일에는 다른 사람보단 나를 희생하려 했고 인간에 대한 측은함과 애틋함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장애인 인권 교육에서 지하철 운행 방해 시위를 벌인 장애인 단체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어린 학생의 논리에 놀란 기억이 있다. 나보다 약한 사람들의 작은 권리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세태라면 도대체 우리의 인권 교육은, 원대했던 선언은 무슨 역할을 한 건지 묻고 싶다. 수많은 선생님이 명예퇴직을 신청한다. 그러나 그 퇴직은 말처럼 명예롭지 않다.
나는 그분들에게 교사의 사명을 버리고, 학생 지도의 앞선 방식을 익히지 못한 게으르고 뒤떨어지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그건 현장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내용이다. 인권의 의미를 바로 세워야겠다. 학생들의 인권을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의 인권을 위한 노력이 늦었지만 꼭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러한 노력을 망설인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전부였을 교실에서 꽃다운 나이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선생님의 뜻을 허무하게 만드는 처사일 것이다.
오늘 잠들수 없는 밤, 미안하고 북받치는 감정으로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