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임화(10)/ 김상천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1.11 10:56 | 최종 수정 2023.01.11 10:59 의견 0

7.홍대용(1731~1783)

동양 중세의 사상인 주자학은 ‘이理’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이는 본래 ‘玉’이라는 뜻과 ‘里’라는 음으로 형성된 글자로 옥 무늬, 나무 결 등 일정한 속성을 지닌 무늬를 뜻했는데 인간의 본성이 되었습니다. 속성이 본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즉리性卽理’이니, 주자학은 곧 성리학性理學이 되는 것인데, 주자학은 이렇게 자연학에서 출발한 인간학이라는 성격을 지닌 동양의 보편적인 사상입니다. 이것을 이원적으로 분류하먼 아래와 같습니다.

사실; 옥, 나무에는 일정한 줄무늬를 이룬 결이 있다.

가치; 인간사에‘도’ 줄무늬처럼 일정한 원리와 질서를 지닌 이치가 있다.

여기, ‘도’는 뭐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기, 인간사를 모든 것의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이치를 어린이들이 최초로 접하는 교과서인 <동몽선습>에서는 “천지지간 만물지중 유인최귀天地之間 萬物之衆에 唯人最貴”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동양적 인문의 세계를 아우르는 말로 매우 그럴듯한 말입니다. 부처님도 비슷한 말씀을 했다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말이란 매우 이데올로기적인 것이어서 누가 어떤 맥락에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데, 그것은 당연 이야기 하는 사람의 정치경제적 위상과 관련된 것입니다. 아무튼 유학자들이 던지는 최초의 말이 ‘인간’이라는 것은 그만큼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박혀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자, 그렇다먼 유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실제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주지하다시피, 인간은 현실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현실은 수많은 물질로 이뤄진 세계입니다. 이것을 자연계라 할 때, 인간계도 사실은 자연계의 일부입니다. 이렇게 볼 때, 자연계인 ‘기氣’의 세계를 떠나 인간계인 ‘이理’의 세계만을 유독 강조하는 유리론唯理論은 그만큼 자연계인 기의 세계를 부정하고자 하는 의도가 박힌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연계에 맑고 탁한 기의 차이가 있는 것과 같이 인간계에도 성인과 보통사람처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니 자연스레 계급적 사고를 내면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학인 주자학도 사실은 <주역周易>에서 비롯된 사고의 연장입니다. 거기, 하늘과 땅을 일컫는 건곤乾坤으로부터 음양이 나오고 오행이 나오고 이것이 자연계는 무론 인간계의 질서와 원리를 이룬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은 보편성을 지닌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왜곡될 소지가 큰 사상이기도 합니다. 하여 한漢의 동중서董仲舒라는 철학자는 하늘과 땅의 천지음양오행의 우주적 질서원리를 인간사회에 적용해서는 자연의 이치처럼 인간에게도 천지음양오행의 보편적 이치가 있고, 따라서 모든 사람은 하늘을 따르듯이 아버지를, 남편을, 임금을, 장자를 따라야 한다고 멘데이터리한 도덕의 옷을 입혀 놓았던 것이니, 뭐 “하늘이 변치 않듯 도 또한 변치 않는다天不變 道亦不變”고 하나의 국가 교학으로서 유학을 절대화시켜 놨으니 다들 꼼짝없이 이념의 굴레에 들씌우고 말았던 것으로, 이것을 후대의 주자朱子가 불교와 도교, 유교 사상을 종합해서는 성리학이라는 매우 그럴듯한 사상으로 체계화시켜 놓았던 것입니다.

자,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과 가치는 엄히 서로 다른 영역입니다. 또 사실이 그대로 가치, 당위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언어는 매우 자의적인 것이라서 본래 오른쪽을 뜻하던 ‘right’가 우파를 대변하는 말이 되면서 ‘올바른’, ‘정확한’ 뜻으로 분화를 일으키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줄무늬에서 시작된 理가 이치니, 도리니 하는 최고의 이념이 된 것입니다. 지식은 일종의 권력이고 하나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조선의 갈릴레이, 홍대용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를 얻습니다. 왜냐하먼 그는 중세의 봉건사회를 떠받치던 성리학 이념을 극복할 수 있는 조선 최초의 과학자이자 실학자였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박지원의 사상이 혁신적인 것 또한 여기서 비롯된 것인데, 자 오늘은 이 이야기를 좀 해보것습니다. 서양에서 지동설을 제기하고 증명한 대표적인 경우로 갈릴레이가 있지만 그는 16~17세기 사람입니다. 조선의 홍대용은 18세기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동서양의 과학적 인식에 낙차가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중요한 것은 홍대용이 스스로 공부하여-이것을 우리는 스스로 터득했다 하여 ‘자득自得’이라 합니다-얻은 지전설이 중요한 것은 마치 갈릴레이의 지동설이 서양의 중세사회가 근대사회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만큼이나 우리에게 홍대용의 지전설의 발견 또한 이에 못지않은 중요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실옹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집대성한 <의산문답醫山問答>에서 허자의 말에 답했습니다.

“너는 정말 사람이로구나. 오륜五倫과 오사五事는 사람의 예의이고 떼를 지어 다니면서 서로 불러 먹이는 것은 금수의 예의이며, 떨기로 나서 무성한 것은 초목의 예의이다. 사람으로서 물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물이 천하지만, 물로서 사람을 보면 물이 귀하고 사람이 천하다. 그러나 하늘이 보면 사람이나 물이 마찬가지다.”(밑줄-글쓴이)

자, 이것은 기본적으로 인간 중심의 동양적 인문의 세계를, 성리학의 질서를 삐딱하게 본 것입니다. 나아가 ‘사람人이나 물物이나 마찬가지다同’라는 전언에서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은 그간의 ‘인간’ 중심-사실은 지주이자 지배관료인 양반층 위주-의 유교적 계층질서를 떠받치고 있는 유교적 실재론을 해체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주장이 갑자기 나온 게 아니라 그가 저 조선 최초의 기일원론자인 서경덕에서 비롯 주리론자主理論者인 이황과 주기론자主氣論者인 이이를 거쳐 노론의 송시열로, 다시 송시열 우파인 남당 한원진과 좌파인 김창협을 이어 김원행-홍대용-박지원으로 이어지는 조선적 리얼리즘으로서의 한국의 유명론의 계보를 확인할 수 있거니와, 더 정확하게 말해서 그것은 호론湖論-‘호湖’는 예로부터 금강을 일컬어 호강이라고 한 것처럼 충청도 일대를 중심으로 한 노론 세력의 보수적 이념을 대변하는 남당학파의 주장으로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를 그 종지로 하며 말로만 북쪽 오랑캐를 치자는 북벌론北伐論을 주장했던, 그러나 항일의병과 척사운동의 이념을 제공했던 학파입니다-과 달리 낙론洛論-‘낙洛’은 예로부터 중국의 도시 낙양洛陽이 수도의 보통명사처럼 쓰인 데서 비롯된 것으로 낙론을 대표하는 철학자들이 주로 서울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였기에 부르는 이름입니다-의 종지를 이루고 있는 사상으로 이것은 사실 근대적 평등관에 따른 개방론이자 사회적 약자들에 관심을 놓지 않는 민주주의론이며, 그리하여 그들의 정치적 입론이 또한 왜 청나라를 배워야 한다는 북학론北學論이었느지, 그들의 후예들이 왜 갑신정변 등을 주도한 개혁파 세력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조선사상사에 고유하게 이어오던 흐름이 아니었는가 말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이 글에서 주리론을 통매痛罵하고 있는 홍대용의 기일원론을 읽을 수 있거니와, 중요한 것은 그의 시선이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 매우 상대적이고 객관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실옹은 또 말합니다.

“사람이 생긴 것은 천지에 근본했으니, 내가 천지의 실정부터 이야기하리라. 태허太虛는 본디 고요하고 비었으며, 가득히 차 있는 것은 기氣뿐이다. 안도 없고 바깥도 없으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데, 쌓인 기가 일렁거리고 엉켜 모여서 형체를 이루며 허공에 두루 퍼져서 돌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는 것이니, 곧 땅과 해와 별이 이것이다. 대개 땅이란 그 바탕이 물과 흙이며, 그 모양은 둥근데 공계空界를 떠서 쉬지 않고 돈다. 온갖 물物은 그 겉에서 의지해서 사는 것이다.”(밑줄-글쓴이)

자, 이것은 실로 놀라운 주장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그의 의견은 분명 기 중심의 사고를 지닌 물질적 사유의 소유자로, 더욱 놀라운 것은 지구가 둥글고 공계에 떠서 쉬지 않고 돈다는, 이른바 지동설地動說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이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모든 것이 중국을, 남자를, 임금을, 장자를 중심으로 한 고정된 사고로 자신들을 세뇌시켜 왔던 성리적 사고의 패러다임이 이 주장으로 흔적도 없이 무너질 수 있는 파괴력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지구가 둥글고 더욱이 쉬지 않고 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볼 때, 조선에게 있어 중국은 더 이상 중심이 아니고, 그러니 그들의 사상 또한 영원할 수도 없는 것이니, 우리에게는 우리 사정에 맞는 우리의 생각이 중요하다는 ‘조선적’ 사유가 싹틀 수 있는 사상적 토대가 마련된 것입니다.

이것은 저 데카르트적 의미에서의 아르키메데스의 점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그러니까 데카르트는 늘 입버릇처럼 아르키메데스가 자신에게 점 하나만 주어지면 지구를 들어 올릴 수 있다는 말을 입에 올리곤 했는데, 그 점은 무엇보다 확실한 점이어야 만이 가능했던 것으로,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을 그것을 중심으로 돌고 도는 일종의 북두성 같은 사상의 거점이 될만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론 데카르트에게는 생각하는 자아로서의 ‘코기토cogito’였습니다만, 그러나 이것도 사실은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의 지동설에서 충격을 받아 탄생한 이론으로 저 중세의 ‘보편자’라는 마법에서 깨어나 상대적이고 주체적인 나라는 근대적인 ‘개별자’를 깨닫게 된 것은 실로 자연과학의 힘이기도 하거니와, 홍대용의 지동설이 중요했던 것은 과연 우리에게도 이런 확실한 아르키메데스의 점에 해당하는 사상의 북두성을 지닌 전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뭐 그러니까 우리에게도 스스로 독자적인 사유를 진행 시켜 온 주체적인 삶의 내력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리하여 여기, ‘허자虛子’는 곧 성리학자를 상징하는 실재론의 세계요, ‘실옹實翁’은 실학자를 대변하는 유명론의 철학이 아닌가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유명론의 무기로 실재론의 실상과 허상을 벗기고 그 거짓fakes으로서의 가면의 은폐된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실옹 자신의 말대로 ‘이야기’가 필요하였다는 점입니다. 이야기, 그것은 가면을 벗기고 껍데기를 몰아내는 유명론의 세계입니다. 사실 ‘이理’라고 발음할 때에 있어서의 시니피앙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거기에 특정한 의미를 지닌 시니피에를 박아넣은 것은 특정한 인간입니다. 그리하여 왜 그가 저 <소크라테스의 변명>처럼 하나의 철학 소설의 한 형태로서의 ‘문답問答’이라는 대화체를 구사하여 친절하게 설명하고 자세하게 논증하고 있는지, 이것은 그대로 이야기가 중세의 마법의 세계를 벗어나기 위한 탈마법화의 효과적인 무기였기 때문입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보았을 때, 시는 사실 지배자들의 생략의, 비유와 상징의, 은폐의 기호전략과 닿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생략과 비유와 상징, 은폐 뒤의 장막에 가려진 진실의 세계를 낱낱이 고발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그대로 방치해둔다는 것은 김어준 사태에서 볼 수 있듯 지배자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전략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의 지배자들이 시인 밀레토스와 더불어 소크라테스를 고발하여 그를 사형에 처했듯이, 정조가 다산과 더불어 <詩經> 등 고문의 아정한 세계를 벗어나 소소한 진실을 실어나르는 이야기에 물들어가는 조선 후기의 문풍을 바로잡고자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일으킨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니, 그것은 과연 이야기가 지닌 탈중심적이고 원심적인 성격 때문입니다.

이로써 조선 후기 이른바 패관체 소설을 비롯하여 소품문小品文 등 민중적 서사체로의 일상생활에 기초한 ‘조선적朝鮮的’ 기풍이 다양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특히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패사체 소설로 화려하게 열매를 맺거니와, 실로 박지원의 스승인 홍대용의 등장은 조선사상 일대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국립중앙과학관이 문헌으로만 전해지던 조선 후기 실학자 홍대용의 혼천시계를 260여 년 만에 실물로 복원한 시계. 추의 힘으로 움직이는 자명종과 혼천의를 연결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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