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지(盲地)/ 박지웅

하무뭇 승인 2022.10.21 07:54 의견 0

남해에 땅 보러 갔다가
땅값이 비싸 구름만 보고 왔지요

공중의 부동산들은 아름다웠지요
수백 군데 필지를 둘러보았지요

구름까지 길이 난 푸른 금산 자락에
홀린 듯 풀어진 노을이라니

마음에 드네요 저 땅 위치가 좋네요

중개인은 지나치게 정직했어요
구름은 모두 맹지여서 팔기 어렵다네요

토지대장을 떼면 글씨들이 삐뚤삐뚤 흘러내렸고요
소유주는 아마 비와 휘파람과 들꽃 같았어요

들어가는 길도 나오는 길도 없이
두근거리거나 수군거리는 흰빛의 땅

살구 같은 달이 뜨면 맹지가 눈을 뜬댔어요
드러난 길로 새들이 쏟아지기도 한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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