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라는 별칭/ 제갈량
이것은 내가 실제로 감자같은 인상인 것이 주요하겠지만,?초심을 잃지 말라는 계시인 것 같아 잠시 숙연해졌다
하무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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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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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건강 검진 다녀와서 저녁을 먹자마자 산방에 갔다. 배추들이 잎을 늘리고 넓히며 자라고 있다. 황짱 친구들을 한 번씩 뿌려주었다. 그리고 서둘러서 병든 고추들을 따내고, 그나마 오려내서라도 건질 수 있는 것들 또 한 푸대 따가지고 귀가했다. 그리고는 피곤했던 지 거실과 방에 불을 켜 둔 채로 잠 들었다가 새벽 세 시 이십 분 경 깼다.
고추 따 둔 것을 그대로 두면 모두 상한다. 잠 깬 새벽에 꼭지 째 하나 씩 물에 헹궈낸 후 또 오리기 작업을 했다. 먼저 오려낸 뒤 씻는 것보다 배 이상 시간이 절약됐다. 경험은 요령을, 요령은 결국 지혜를 낳는다. 건조기에 모두 넣어 돌리다가 출근할 때 건조기 채로 차에 실었다.
오늘은 대월중학교 교장선생님과 약속이 있었다. 학교 업무 전반에 대해 긴히 전해줄 내용이 있다며 방문 공문을 보내왔었다. 정식 인수인계는 9월 1일 이후 이루어지지만, 이러한 사전 소통은 내게 참 소중하다. 두 시간 동안 학교 주요 교육활동과 주요 사업에 대해 매우 상세한 내용들을 전해들었다. 그동안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대월중 교직원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생활해 오셨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학교장들의 인수인계는 회계적인 부분을 확인하고 도장을 찍는 정도로 그치는 게 대부분이어서 어찌보면 형식적이다. 그런데 상세한 설명과 지역사회 네트워크 상황, 그리고 그 동안에 축적된 주요 자료들까지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전해주셨다. 그리고 오늘 전해 들었지만 나와는 인연이 깊은 구리에서 교장을 하는 후배와 막역하게 소통하는 사이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평소 잘하진 못하더라도 욕먹을 짓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암튼 전임 교장 선생님과 또 하나의 귀중한 인연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네 시가 넘어 곧바로 산방으로 갔다. 작동 중인 건조기를 빼고 집에서 고추를 담아 가져온 건조기를 작동시켰다. 먼저 것은 이미 잘 말라서 자루에 담아 밀봉했다. 쪽파와 무를 심으려다가 먼저 배추에 황장 친구들을 뿌렸다. 방아깨비들 서너 마리가 배추 하나 씩 걸터앉아 느긋하게 포식하다 말고 내뺀다. 하루 사이 배추가 더 자랐다.
오늘도 미처 따내지 못한 병든 고추를 따냈다. 이제 얼추 다 딴 것 같다. 그리고 오려낼 수 있는 것들 한 바구니 딴 뒤 황짱 살포했다. 과연 다시 온전히 자라날 지 궁금하다. 고추 때문에 시간이 꽤 지났다. 무 두둑에 마주 보는 구멍을 두 개씩 20cm 간격으로 뚫었다. 작년에 쓰고서 냉장 보관했던 무씨를 세 알 씩 뿌린 후 고랑 사이 밀려든 젖은 토사로 덮어주었다.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점심을 적게 먹어서 허기가 극심하다. 불을 켜고서 따낸 고추들 헹궈서 오려낸 뒤 건조기에 넣었다. 7:40분. 완전히 어두워져서 철수했다. 손이 매워서 얼굴을 살짝 만져도 화끈 거린다. 허기는 극에 달했다.
오늘 낮에 선생님 한 분이 시집 한 권을 선물로 주셨다. <박승렬, 감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문학동네>. 얼마 전 방학 때 감자전 얘길 들으셨는지 제목에서 내가 떠올라 구입 하셨단다. 아! 그런데! 선생님은 모르시는 내 별명이 감자선생이었다. 첫 발령 받아서 첫 스승의 날에 지금은 이 선생님보다도 나이가 많은 제자가 감자 저금통을 선물하면서 붙여준 이름이다. 난 그 별명을 사랑했다. 오래전 <우리교육>이라는 잡지에 글을 게재할 때, 감자선생이라는 별칭을 썼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내가 운영 관리하던 홈페이지도 <감자선생 국어교실>이었다.
교사 첫 시작하던 해에 학생이 붙여준 별칭을 교장 시작을 앞두고 선생님께 듣게 되니 기막힌 우연의 일치이다. 이것은 내가 실제로 감자같은 인상ㅡ난 그렇게 보아 주는 것이 참 좋다ㅡ인 것이 주요하겠지만, 초심을 잃지 말라는 계시인 것 같아 잠시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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