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의 눈꺼풀은 어디로 갔을까(6)/ 하재일

순수함과 장수의 상징, 백설기에 관한 유년의 추억

하무뭇 승인 2022.06.05 10:50 의견 0

어린 시절 안면도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은 굿을 많이 구경하게 되었다는 일이다. 절집도 교회도 거의 없었고 승언리 시장에 공의(公醫)는 있었지만 병원도 마땅히 없었던 시기였다. 그러니 사람들은 몸이 아프거나 무엇을 기원하려 하면 만신을 불러 굿을 제법 크게 벌렸던 것 같다. 집안의 안녕을 비는 ‘안택굿’ ‘재수굿’도 꽤 많았다. 오늘 밤 누구네 안택을 한다거나 아무개가 아파서 굿을 한다고 하면 그 시절엔 신이 났고 기대가 많았다. 굿을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고 구경 가면 포슬포슬한 백설기 떡을 얻어먹는 행운도 맛보게 된다. 바람도 세게 불고 바다에 나가 고기 잡는 일도 많아 날씨와 민감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이유가 있어 '용왕재' 같은 재도 많이 지내는 것을 보았다. 어떤 집은 시루떡을 이고 바닷가에 나가 서해 용왕님께 '해우(김, 海苔)'이 잘 돋기를 기원하며 재를 지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굿떡’을 ‘수부떡(壽福을 비는 떡이 아니었을까)' 이름했는데, 그 의미는 나도 잘 모른다. 친구들과 어울려 담을 넘어가 장독대에 올려놓은 수부떡을 훔쳐다 먹곤 했다. 그런데 한 가지 禁忌(taboo) 사항이 있었다. 떡을 훔치면 일단 내달려야 하는데, 가지고 가다가 넘어지면 병자의 동투(동티)가 옮긴다고 하여 항상 조심하였다. 평소 배곯고 살았으니 떡은 간절히 먹고 싶고, 잘못 치닫다가 넘어지면 동투가 옮아 중병에 걸릴 것 같고 , 그때 아이들의 고민이 얼마나 심각하고 절절했던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짐작도 못하리라.

초등 5학년 무렵 어느 겨울이었다. 지금의 안면암 근처 외진 골짝에 위치한 동네 어떤 누이 집에 병자가 발생하여 큰 굿을 하게 되었다. 굿판 마지막 날, 청대(竹)를 잡고 작두를 타고 톱밥을 뿌리며 마당 여기저기에서 불꽃을 뿜어대며 요란하게 징과 꽹과리를 두들길 때, 동네 조무래기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나도 단단히 준비를 하고 용감하게 형들을 따라 나섰다. 나는 달리기도 못하고 동작도 굼떠서 일행으로부터 언제나 동행할지 말지 고민하게 만드는 고려 대상이었다. 그날은 행복스럽게도 형들로부터 선택을 받았다. 우리가 도착해서 굿을 하는 집에 먼저 도착하면 먼저 적정을 살피는 일이 항상 급선무였다. 뒤란 음침한 곳이나 외양간, 농기구를 넣어두는 헛간 같은 데서 유심히 떡을 놓는 위치를 파악했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큰 돈을 희사하여 굿을 하는 집이었는데 그날 우리는 외양간에 숨어 있었다. 그런데 망을 보다가 내가 그만 발을 헛디디어 외양간 한쪽 소오줌통에 한쪽 다리가 빠진 것이다. 한겨울 얼어붙은 오줌통에 빠졌으니 발은 시렵고 역한 냄새에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겨울에 무논이 얼면 비행기 썰매(외발 썰매)를 타러 다녔는데 갈 때마다 몰래 부엌에서 성냥갑을 좀 뜯고 성냥골을 한 움큼 잠바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얼음이 처음에는 단단해서 썰매 타기가 괜찮다가 해가 떠올라 점점 온도가 올라가면 얼음이 녹아서 곰보다리가 되었다. 울렁거리다가 마침내 논에 푹 빠지게 된다. 그것을 ‘오릿국 잡는다’고 표현했는데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놀다 보면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집에 오는 도중 원뚝(간척 사업으로 생겨난 뚝방)의 마른 풀밭에 불을 질러 양말도 말리고 시린 손과 발을 따뜻하게 불을 쬐기도 하였다. 그날 밤, ‘수부떡’은 먹는 둥 마는 둥했고, 아직까지 그때 쬐던 불기운만 따뜻하게 남아있다.


● '흰무리'/ 하재일

친구들과 어울려 뒤란 담장을 넘어가
장독대에 올려놓은 시루떡을 훔쳐먹곤 했다

떡을 훔치면 일단 내달려야 하는데,
들고 가다 넘어지면 병자의 동티가 옮긴다고
하여 살얼음을 디디듯 걸음을 조심하였다
배곯고 살았으니 떡은 먹고 싶고, 잘못 치닫다가 넘어지면 동티가 옮아 중병에 걸릴 것 같고,
어둠이 이만저만 깊은 게 아니었다

그런 밤이면, 만신은 청대를 잡고
작두를 타며 톱밥을 뿌리고
불꽃을 뿜어대며 마당 여기저기서
밤새 요란하게 징과 꽹과리를 두들겨 팼다

백설기
무우팥시루떡


저작권자 ⓒ 중앙교육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