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과 다양한 조형미를 갖춘 아메리칸 빌리지
오키나와 중부 차탄초 미하마에 자리한 아메리칸 빌리지는 가히 작품이었다. 저녁노을에 물들어가는 해넘이가 아름답다는 선셋비치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닷바람을 즐길 사이도 없이 추적추적 내리는 부슬비가 나그네의 걸음을 시샘했다. 알고 보니 미국 샌디에이고의 시포트 빌리지를 모델로 하여 쇼핑과 레저를 패키지로 즐길 수 있도록 꾸민 오키나와 인기 제일의 명소. 비록 승차하지는 못했으나 대관람차가 테마파크 분위기를 돋우는 곳으로 대형마트 이온몰을 비롯해 기발하게 장식한 카페나 맛으로 유혹하는 레스토랑 등 각종 상점들이 촘촘히 모여 있어 두루 눈요기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조경에 관한 한 점수에 인색한 필자의 입에서도 거푸 감탄이 흘러나온 건 요리조리 빠져나올 수 있게끔 기획한 이동로. 특별히 야경이 환상적일뿐더러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열어 젊은이들에게 갈채를 받는다는데 서둘러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오키나와 국제 거리(沖縄国際通り)는 오키나와현청 앞 교차로를 시작으로 유이레일 마키시역에 이르는 직선 도로를 말한다. 즉, 나하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데 약 1.6km에 걸쳐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에는 오키나와 수호신과 토산품을 판매하는 가게들로 즐비했다. 아내와 함께 끝까지 걸으며 기웃거린 곳만 해도 줄잡아 수십 군데. 대형 백화점을 위시해 다문화 식당, 쇼핑센터, 호텔 등이 있었고, 뒷골목으로 들어가니 반갑게도 ‘홍익 치킨’이라는 한글 간판이 눈에 띄었다. 이곳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공습으로 폐허가 되었으나 전후 발 빠르게 재건하였고, 그 덕분에 기적의 1마일로도 불리고 있다는데, 관련 자료를 뒤적이니 매주 일요일 12~18시 사이에는 현청 앞에서부터 무츠미바시 교차점까지 약 650m를 보행자 전용 길로 지정되어 있어서, 그때마다 에이사 등과 같은 재밌는 퍼포먼스를 구경하는 이들로 북새통이란다.
예쁜 꽃으로 장식한 오키나와 엑스포 기념 해양공원
오키나와 엑스포(EXPO) 기념 해양공원(1976년 개장)의 백미는 예쁜 꽃으로 수놓은 정원이었다. 일행 중 연배가 비슷한 이에게 물으니 선뜻 동의하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일본인의 장인정신을 한국인이 따라가기는 어려울 거라는 점에는 공감을 표했다. 무엇보다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건 츄라우미 수족관의 장대한 건축미. 그 미적 수용의 범주에 그치지 않고 세계 최대수조에서 노니는 고래상어와 귀가오리 등 오키나와의 바닷속을 생생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아쿠아리움 높이는 8.2m, 폭 22.5m, 두께 60cm의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밖에 새하얀 모래사장과 새파란 바다 빛깔의 대조적 조화로움이 일품이었고, 눈앞에 보이는 이에지마섬의 인공해변과 어울리는 귀여운 움직임으로 관람객들을 흥겹게 해준 돌고래 쇼를 보면서도 마음 한편이 불편한 바는 어쩔 수 없었다. 수조에 갇힌 열대어들이 있어야 할 곳은 널따란 바다여서다.
궂은비에 젖은 옛 류쿠왕국의 견고한 슈리성 모습
류큐 왕국이 남긴 슈리성(首里城)을 잠시나마 돌아볼 틈새를 얻은 건 다행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촉박한 시간뿐만 아니라 대대적으로 수리가 한창이어서 일부에 국한해 중국과 일본의 축성 기술이 혼합된 독특한 성벽 양식을 살펴보는 것으로 족해야 했다. 처음 마주한 슈레이몬(守礼門)은 예절을 지킨다는 뜻으로 슈리성 내 여러 문 가운데 균형미와 디자인이 뛰어났다. 16세기 중엽에 건립되어 1933년에 국보로 지정했으나 오키나와 전쟁 때 소실되어 1985년에 복원했단다. 그다음 소노향우타키이시몬(園比屋武御嶽石門)은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건축물로, 국왕이 외출할 때 안전을 기원하던 장소이자 류큐 왕국의 성지였다. 우타키(御嶽)는 류큐 왕국의 토속종교인 신도(神道)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오키나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주둔 미군의 영향으로 신사보다 교회당이 많다는 것도 여타 일본과는 색다른 지점이다.
공항으로 가기 전 우산을 받치고 2000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슈리성을 둘러본 결과, 오키나와 최대 규모의 성채를 둘러싼 성터는 전체적으로 우아한 곡선 형태를 띠고 있었다. 문화적•역사적 가치를 지닌 정원석 배치 기술로 보아 13세기 말부터 14세기에 걸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애석하게도 1945년 오키나와 전투에서 완전히 파괴된 뒤 철거지는 류큐대학 교정으로 사용하고 있다가, 1980년부터 시작된 복원 계획에 의해 이처럼 과거의 모습을 되찾았다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선명한 주홍색 성벽이야말로 류큐 왕국의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전하는 오키나와의 상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사흘간 행복지수 높은 장수마을 오키나와를 돌아봤으나 맑은 대기를 맘껏 흡입하며 궁금증을 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일정이었다.
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현재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하며, '평택자치신문'(17년째 주1회)과 '주간시민광장'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