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 산곡남중 교장)

매년 12월 10일은 ‘세계 인권의 날’이다. 이날을 맞으면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인권의 소중함에 대해 각별한 소회를 되풀이하게 된다. 왜냐면 그것은 결코 거저 얻은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최근에도 12•3 비상계엄으로 인해 평소 우리가 당연시하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심각한 상실을 눈 앞에 두고 이를 지켜내고 기사회생한 것을 생각하면 더욱 인권에 대한 각별함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다시 ‘세계 인권의 날’을 앞두고 인권과 교육의 본령을 되짚어 보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가장 보호받지 못하고, 제도적으로도 목소리가 약한 존재는 누구인가? 그 중심에는 여전히 청소년이 있다. 청소년은 대개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고, 법적 권한은 제한되며, 사회적 강자는 아니지만 학교•가정•노동환경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여러 형태의 인권 침해에 직면하고 있다. 체벌, 과한 규제, 부당한 노동, 정치적 배제는 여전히 반복되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지난 십수 년간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기반으로 행동해 온 단체들이 있다. 아수나로(청소년인권행동), 청소년유니온,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그 주체다. 이들은 거대한 조직도 아니고 정치적 후원을 받는 단체도 아니지만, 청소년이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닌 시민임을 사회에 가장 분명하게 강조해 온 이들이다.

먼저 아수나로는 학교 안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인권 침해를 가장 먼저 문제화했다. 두발 규제, 체벌, 강제 야간자율학습과 같은 관행은 오랫동안 “교육적 필요성”이라는 명분 아래 정당화되어 왔다. 그러나 아수나로는 이러한 규제들이 학생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문제임을 사회적 공론장으로 끌어냈고, 결국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학생도 시민이며 인권은 학교 문 앞에서 멈출 수 없다”는 메시지는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을 되묻는 선언이었다.

청소년유니온은 교실 밖의 현실을 정면으로 다뤘다. 많은 청소년이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임금체불•폭언•부당해고 등 구조적 인권 침해를 당하지만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청소년유니온은 청소년 노동문제가 단순한 고용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임을 사회에 알렸고, 노동인권교육 확대, 최저임금 현실화 논의 등 정책 변화를 이끌었다. 이는 청소년이 학교에서는 학생이지만 사회에서는 분명한 시민이며 노동자임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확대를 핵심 의제로 내세웠다. 청소년은 사회적 영향력의 큰 부분을 감당하지만, 정치적 의사 표현에서는 제한되어 왔다. 이 연대체는 국회와 정부를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캠페인을 펼쳤고, 그 결과 2020년 선거권 연령이 만 18세로 하향되는 역사적 변화를 만들어냈다. 이는 청소년을 보호 대상으로만 다루던 관점을 넘어, 사회의 주체로 인정한 의미 있는 성과였다.

이들 단체의 활동은 결국 교육의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보편적 인권의식을 갖춘 청소년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학생인권교육, 학교자치 활성화, 생활규정의 학생 참여, 교사 인권연수 등 교육계의 점진적 변화가 있었다. 청소년들은 그 속에서 “권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사하고 지켜내는 것”임을 배웠다. 민주주의는 교실에서 시작된다는 말은 이제 상징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이제 우리 교육이 할 일은 명확하다. 첫째, 인권교육을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정규 교육과정 속에 통합해야 한다. 둘째, 학생 참여 확대와 자치의 실질화를 통해 민주적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노동•정치•사회제도에 대한 교육의 강화로 청소년의 실제 삶을 반영해야 한다. 넷째, 지역별 격차가 큰 학생인권조례의 지속성과 전국적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 인권을 교권에 대한 대항마로 간주하려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예컨대 서울시의회의 학생인권조례 폐지의 움직임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는 지극히 편협한 인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청소년 인권은 모든 사람들의 ‘인권의 바로미터(척도)’라 할 수 있다. 또한 미래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인권을 배우고 경험한 세대는 이를 지키고 확장하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인권의 날을 앞두고 우리는 다시 확인해야 한다. 청소년의 권리를 존중하는 교육은 결국 교사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인권(人權)은 만사(萬事)라는 사실을 인권 교육을 통해 보다 널리 보편화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