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즈의 불빛


우리는 볼리비아의 전통적인 문화 중 하나인 주술 문화를 보기 위해 마녀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입구 가게에는 통째로 말린 알파카 새끼와 라마 새끼가 걸려 있었다. 그 외에도 물약, 허브, 부적 등 신기한 물건들을 많이 팔고 있었다. 볼리비아 사람들은 말린 알파카 새끼나 라마 새끼를 문에 걸어두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주술을 믿고 마녀시장에서 이것들을 사간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개업식에 북어를 무명실에 감아 걸어두던 풍습이 떠올랐다.

마녀시장에서 나와 세계에서 가장 지독하다는 교통지옥을 통과하여 라파즈의 메인광장인 무리요 광장으로 갔다. 대성당과 대통령궁 그리고 국립미술관이 빙 둘러있었다. 우리를 반기는 건 비둘기 떼였다. 무리요 광장을 둘러보고 의지의 한국인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한국식당으로 가는데 가는 곳마다 길이 막히고 차들은 쉬지 않고 빵빵거렸다.

그런 중에도 거리에서 눈에 들어 온 것은 많은 차들이 꽃으로 예쁘게 치장한 모습이었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차 한 대가 재산 1호인 이들이 차를 애지중지하며 아끼는 마음을 엿 볼 수 있었다. 한국 식당에서 오랜만에 먹는 삼겹살과 김치찌개는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이제 케이블 카 탑승장으로 가서 라파즈의 야경을 보며 다른 케이블 카로 환승해 볼 것이다. 우리나라에 지하철이 있다면 라파즈에는 공중으로 다니는 케이블 카가 대중교통이다. 10개의 라인이 있으며 각 라인은 색깔 별로 구분되며 도심 곳곳을 연결하고 있었다. 케이블 카를 타고 보는 라파즈의 불빛은 커다란 절구 속에 촛불을 가득 켜놓은 것처럼 아름답게 빛났다. 엘알토 역에 도착하니 속이 점점 더 미식거렸다. 엘알토 역의 고도 4095m라는 표식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아름다운 야경을 보며 내려왔다.

엘알토 역(고도 4095m)


다음날 버스를 타고 구불거리는 언덕을 한참 올라 어제 왔던 ‘달의 계곡’을 지나 티티카카로 향했다. 라파즈 도시를 벗어나자 평지가 나타났다. 얼마를 달렸을까 시장이 보였고 시장 입구에는 커다란 바구니 여러 개에 빵을 가득 담아 팔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8겹의 치마를 둘러 입는다는 촐리타 위에 망토를 걸치고 모자를 쓴 전통적인 잉카 여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망토는 추울 때는 보온을 위한 옷이며 비가 올 때는 비옷이 되기도 하고 시장볼 때면 시장 바구니가 되고 멋을 낼 땐 패션이 되기도 한다.

촐리타 패션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외래 문화와 안데스 원주민의 전통이 만나 형성된 독특한 스타일로 원주민 여성들의 정체성과 저항의 상징이며 생존의 역사가 된 패션이다. 그들은 식민지 시대의 억압 속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지켜냈으며 지금은 이를 자랑스러운 잉카의 상징으로 재정립하여 원주민으로서 여성의 연대와 자부심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전통을 지켜가고 있는 이들을 보면서 오래전에 아이들과 함께 한복을 입고 어른들에게 세배 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난장의 빵 바구니

* 김양숙, 1990년『문학과 의식』시 등단, 2009년 [한국시인상] 수상, 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상, 2013년 부천문화예술발전기금수혜. 202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활동비 수혜. 시집 『종이 사막』,『지금은 뼈를 세는 중이다』,『기둥서방 길들이기』,『흉터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고래, 겹의 사생활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