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상징인 멋진 올드카를 타고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시내를 돌아 혁명의 광장으로 갔다. 쿠바의 내무부 건물 벽에 새겨진 체 게바라의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hasta la victoria siemprefksms”라는 카스트로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의 글귀가 새겨진 벽에 체 게바라의 벽화와 벽화의 그림자를 보면서 39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다간 체 게바라는 왜 쿠바를 사랑하는 혁명가가 되었나? 아르헨티나 출신인 체 게바라는 왜 쿠바에서 혁명을 일으키게 되었나? 묻고 싶어졌다. 아르헨티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의과 대학시절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다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는 참상을 보게 된다. 그 당시 반자본주의 혁명을 통한 국가 전복만이 남아메리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된 체 게바라는 피델 카스트로와 라울 카스트로 형제를 만나 쿠바 혁명에 합류하게 된다. 혁명가는 위대한 사랑에 의해 인도된다는 즉 인간에의 사랑, 정의에의 사랑, 진실에의 사랑, 사랑이 없는 혁명가는 상상하기 불가능하다는 신념으로 그는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사상을 몸소 실천한 혁명가가 되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예고치 않은 일들이 생긴다. 트리니다드로 떠나는 날 아침 약속된 버스가 두어 시간 늦어지면서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점심을 예약했던 레스토랑은 취소되었고 대신 고속도로 길가의 휴게소에서 점심으로 햄버거와 샌드위치를 먹게 되었다. 휴게소는 다행히 망고와 아보카도의 농장이었다. 우리는 망고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커다란 망고나무 아래서 점심을 먹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작은 전화위복이랄까? 그러나 아무리 서둘러 간다 해도 트리니다드에서의 일정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개인적으로 살사의 발생지인 트리니다드에서 살사공연을 보고 싶었는데...
트리니다드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도시다. 그러나 전기 사정이 나쁜 도시였다. 밤이면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어두운 돌길을 걸어 다녀야 하는 상황이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도중 살사를 가르쳐주는 곳에서 젊은이들이 발랄하게 살사를 추고 있는 모습을 보며 들어가서 잠깐이라도 배우고 싶다는 유혹을 느꼈다. 고개를 내밀고 들여다보다 비가 내려 미끄러운 돌길을 걸어와야 한다는 생각에 아쉽지만, 그냥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식당에서 메뉴를 시키고 음식을 먹는 중간에도 전기가 나갔다 들어오길 반복했다. 식당 주인은 하루 저녁에도 두세 번씩 단전이 되어 자가발전에 의지하고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핸드폰의 전등을 켜서 손에 들고 메뉴를 정하고 식사하면서 일행들과 어렸을 때 단전되면 촛불 아래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렸던 TV 프로그램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나름대로 즐거운 식사를 했다. 물론 한국에서라면 불쾌했을 상황이 지구 반대편 트리니다드에서는 과거 소환용이 되어 용서가 되었다. “그래 여기는 쿠바니까” 하며 여행이 주는 불편을 또 다른 즐거움으로 승화 시켰다.
저녁내 비는 오락가락 하였다. 내일 아침은 체 게바라가 묻혀 있는 산타클라라로 가는데 걱정이 앞섰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쿠바에서 민중혁명에 성공하고, 아프리카 콩고 게릴라 운동에 뛰어들었다가 남미 볼리비아 게릴라전에서 사망한 체 게바라 죽은 지 30년 지나 체 게바라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를 찾아 그가 마지막으로 승전한 쿠바의 산타클라라에 묻힌 그의 묘를 보러가는 것이다.
체 게바라 묘지에 도착하자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그런데 어제 저녁 많이 내린 비로 직원들이 출근하지 못해서 체 게바라의 묘를 볼 수 없다는 가이드의 말을 들었다. “그래 여기도 쿠바니까”하며 푸른 하늘을 향해 멋지게 서있는 체 게바라 그의 동상 앞에서 사진 몇 컷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그의 본명은 에르네스토 게바라이다. 게바라 앞에 넣은 ‘체’(Che)는 ‘나의’라는 뜻을 가진 인디언 감탄사다. 그의 지지자들 친근하게 ‘체’라고 부른 것처럼 나도 그의 이름 앞에 체를 꼭 붙여서 불러주고 싶다.
* 김양숙, 1990년『문학과 의식』시 등단 2009년 [한국시인상]수상 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수상, 2013년 부천문화예술발전기금수혜. 202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활동비수혜. 시집『지금은 뼈를 세우는 중이다』,『기둥서방 길들이기』,『흉터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고래, 겹의 사생활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