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6월 7일이 봉오동 승전 105주년이었다. 승전 기념일 이틀 뒤에 봉오동에 온 것은 특별한 느낌이었다. 봉오동 전투는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수행한 첫 독립전쟁이었으며,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은 홍범도 장군이었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전투의 실제적인 배경에는 최진동, 최운산, 최치흥 3형제 장군의 헌신과 지원이 있었다. 사실 이 전투의 최고사령관은 최진동이었다. 아마 영화 <봉오동 전투>나 소설화된 홍범도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은 보고 듣지 않았을까?
방현석은 소설 <범도>에서 봉오동과 최씨 형제들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홍범도 장군이 임시정부 이동휘 총리에게 보고하는 장면이다.
“처음에 내가 놀란 것은 이 지형이었소. 총리도 보셨겠지만 봉오동은 천혜의 요새요. 그다음에 놀란 건 최진동, 최운산, 최치흥 형제와 그 가족들이었소.” 위험을 무릅쓰고 전 재산을 바쳐 독립군을 지원하고 스스로 독립군을 지휘한 최씨 형제들에 대한 헌사다.
“장군께서 놀란 세 번째는 무엇입니까?” “봉오동의 마을과 사람들입니다.(......) 군영만 살피지 마시고 마을도 한 번 돌아보시오. 그러면 최진동과 그의 형제들이 무엇을 만들어 놓았는지 알게 될 거요. 총리, 나라를 되찾으면 말이오. 이 봉오동 같은 나라를 만들어 주시오. 넉넉하고 바르고 아름답고 여유로운 사람들의 나라 말이오.”(범도2. 499-500)
“대한독립전쟁의 제1회전에 참전한 대원 여러분! 우리는 부패한 나라 조선도 아니고, 허울뿐이었던 대한제국도 아닌 대한민국이 소집한 군대에 발을 들여놓은 첫 군인들이오. 그 군대의 제1군사령관인 내가 따로 여러분에게 할 말은 없소. 존경하는 최진동 총사령관이 내건 이 한 마디를 모두 마지막 숨이 멎는 순간까지 명심해야 하오. 모두 따라 하시오.”
대원들은 나에게 근사한 말을 듣기를 바랐지만 나는 근사해지고 싶지 않았다. 근사해져야 할 것은 내가 아니고 우리 부대였고, 부대가 근사해지려면 부대원들이 총사령관을 근사하게 여겨야 하는 법이었다. “우리가 힘을 내야!” 대원들이 내가 외친 구호를 받았다. “대한이 힘을 낸다!” 대원들의 외침이 고려령에 메아리쳤다. “그렇소. 우리가 힘을 내야 대한이 힘을 내오. 우리가 이겨야 대한이 이기오. 이깁시다. 반드시 이겨 보입시다.”(범도 2.507)
단순히 천혜의 전투 요새가 아니라. 해방된 나라의 이상향으로 그려졌던 봉오동에 오면 저 홍범도 장군의 쩌렁쩌렁한 봉오동 출정사가 들려올 것 같은데, 홍범도와 최진동 형제들의 봉오동은 없었다. 마을은 사람의 흔적을 지우고 숲으로 덮였으며 지금은 물을 받아놓은 저수지가 되었다. 그것도 그 앞에 방문객의 자유로운 출입을 막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사진 한 장 박고 나오는 서글픔은 점차 중국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지우려는 중국의 역사 공정에 대한 비애로 변했다. 자랑스러운 항일투쟁의 역사와 영웅을 우리의 현실에서 부정하는 어처구니없는 무도한 한국 정권에 대한 분노는 말해 무엇하랴! 이곳을 방문하고 남긴 이창윤 시인의 울분이 내 속을 파고 들었다.
아, 봉오동/ 이창윤
연길을 거쳐 용정
봉오동 전투 격전지에는
저수지가 들어서 있었다.
출입을 막는 바리케이드 앞에서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먼발치에서 골짜기 안쪽을 망연자실 바라볼 뿐,
그들이 막으면
한 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빼앗긴 땅
을사늑약 이후 외교권을 강탈한 일제가
철도 부설권과 채굴권을 미끼 삼아
청나라에 맘대로 팔아넘긴 간도
해방 뒤 분단된 한반도는
영유권을 요구하지 못했고
별다른 조치 없이 백 년이 지나
되찾기 어려운 조상의 땅
한자로 새겨진 ‘禁止入內금지입내’ 팻말 앞에서
속수무책 발길 돌릴 뿐
언제쯤이면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그 골짜기 마음껏 딛고
독립투쟁의 발자취 온전히 되새겨볼 수 있을까
친일 뉴라이트 정권 아래
육사에 있던 홍범도 흉상마저
내몰리는 치욕의 현실 앞에서
참담한 마음 불끈 쥐어볼 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하는가
동북공정 아래 왜곡된
고구려, 발해, 간도 독립운동의 역사
친일과 친미로 얽힌 기득권의 틈바구니에서
훼손된 자주정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뿌리와
독립군의 역사를 지우려는 마수의 수렁 속에서
마음의 가지를 어디로 뻗어야 하는가
압록강 유역 끊긴 다리 위에서
매서운 밤바람 맞던 내 영혼 한 자락은
돌아오지 못한 채
잃어버린 땅, 북간도에 아직 머물고 있다
(글 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