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일 새벽 4시에 잠에서 깼다. 참새들 지저귐 대신 나이팅게일 노랫소리가 귓전에 가깝게 들리는 것이 필경 남의 집이었다. 지고 갈 보따리는 이미 잠자리에 들기 전에 미리 꾸려 아래층 현관에 두었다. 익숙한 시간은 아니지만 내친 김에 일어나 샤워하고 침대 시트를 벗기고 덮었던 담요와 이불을 네모나게 접어 머리맡에 두고 휴지통도 비웠다. 이 또한 일상과 다른 행위지만 집주인의 수고를 조금이나마 덜고자 함이다.
손가방 속에 여권과 파리행 기차표, 부다페스트행 버스표를 챙겨 넣고 1층 거실로 내려오니 약속 시간 1분 전, 잠시 후 알람이 몇 번 울리자, 올리비에 씨가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왔다. 그의 거동이 어찌나 시골의 노인 같았던지 갑자기 고맙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예술유목이 그의 집을 숙소로 일주일 동안 진행되었다. 행사 종료 후 2, 3일 만에 모두 떠났다. 올리비에 부부는 작가가 떠날 때마다 기차역이 있는 샤토루(Chateauroux)까지 바래다주곤 했다. 나는 닷새 만에 마지막으로 떠나는데 파리행 열차가 하필 아침 6시 12분 출발이어서 그의 집에서는 5시 기상, 정확히 30분 후 출발해야 했다. 화를 낼 줄 모르는 그들은 다녀와서 자면 된다고 하지만 내가 떠나야 비로소 저들은 행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부다페스트까지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그것도 지름길이 아니라 암스테르담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다시 독일로 내려와 중부유럽을 관통해 발칸 반도로 들어가는 장장 36시간이 소요되는 여정이다. 전에는 비행기나 열차를 주로 이용했는데 몇 년 전부터 버스 여행을 선호하게 되었다. 버스 여행은 기차나 비행기보다 시간은 더 걸리지만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하고 더 많은 경치를 볼 수 있다. 더구나 나는 차창 밖 풍경을 보는 재미로 여행을 하는 사람이다.
2016년 이란 예술유목 중 남부의 호르무즈 해역에 떠 있는 작은 섬 ‘파라다이스 아트 센터’에서 독일인 여행객을 만났었다. 그는 뒤에 바퀴 축 하나가 더 달린 이상한 자전거를 가지고 왔다. 그의 자전거는 중간 바퀴와 뒷바퀴 위에 사람이 겨우 누울만 한 널판이 고정되어 있었다. 유사시 그는 그 널 판 위에서 노숙한다고 했다. 그의 생김은 영화 ‘스팅’의 주연 ‘로버트 레드포드’처럼 생기고 목소리도 시원시원했다. 그는 독일서 그곳까지 8개월이 결렸다고 했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 왜 이렇게 힘들게 여행하느냐?” 묻자, 그는 아주 간명하게 “비행기는 너무 빨라!”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나는 세상의 다른 한 축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 나의 버스 여행도 그 다른 한 축을 향해 가는 것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