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호(경기대 교수)
동학은 기도식에서 음식물을 진설하는 것을 철패했다. 해월은 사람들이 음식물을 진설해 놓고 기도하는 것을 인심의 발로이므로 거절하지 못하다가 1875년 기도식에서 음식을 진설하지 못하게 하고, 정한수 한 그릇을 떠 놓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다. 동학은 사람이 한울님이므로, 하늘 저 멀리에 한울님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의 종교적 의례인 기도식에 음식을 진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기독교의 하느님과 달리, 사람이 모두 한울님이므로 저 멀리 있는 한울님에게 빌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통의 의례를 따르지 않고 정한수 한 그릇을 떠 놓는 것을 기도식의 표준으로 삼았다.
동학은 유교에서 말하는 천제나 상제가 하늘에 있다거나 천제나 상제가 보이는 천도라는 것이 멀리 있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사람이 한울님이므로, 천신에게 빌어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로부터 삶을 영위하면 된다고 말한다. 이것이 ‘자재연원(自在淵源)’이라는 말이다. 자신에 있는 자신(自神)으로부터 삶을 영위하는 것이기에 저 멀리, 인간과 다른 신을 설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가 왜 스스로 존재하는 지[自在]를 그 근원을 깨침[淵源]이 필요하다. 사람의 마음은 곧 한울님의 마음이고, 내 마음이 너의 마음임을 깨닫는 것이 자재연원의 의미이다. 자재자연의 의미를 깨치면 그 스스로 진정한 자유인임을 깨닫게 되고, 주체임을 알게 되니 이는 신분이나 반상이 그를 옭아맬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동학은 제사를 부정하지 않는다. 제사가 유교의 전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윤리나 도덕은 인간 신변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것인데, 제사도 그렇다고 본다. 그런데 이를 억지로 기준을 세워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니 하는 것은 사람을 억압하는 것으로 본다. 당연히 제사는 조상을 기리고 기억하는 자연스러운 행위이지, 유교의 예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해월선생은 1878년에 개접(開接)의 말을 하면서, “일반 제사에 위를 설하되 벽을 향해 설치하는 것이 옳은가? 나를 향하여 설치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나를 향해 제사상을 진설하는 것, 그것은 내가 한울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