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호

저 고개를 넘으면 공주유 공주로 들어가고

서울로 쳐들어가야 이 폭정을 끝낼 수 있슈

바람과는 정반대로 우박처럼 포탄은 떨어지는데

지게에다 지고온 밥바구니와 물동이에

나눠주는 밥이래야 김치 한 조각과 물 한 모금

한 숟갈의 기름소금이니 거의 맨밥을 먹고

우리는 겨우 산 아래로 돌덩이나 굴리고

허공에 대창이고 맞지 않는 화승총이나 쏘지만

전쟁은 이미 닿지 않는 사정거리 싸움이라

나는 틀린 것 같소 고향에 가면 마누라한테 전해주소

너무 한탄 말고 새끼들 데리고 싸목싸목 사는 대로

살아보더라고 말해 주소 인생이 다 그런 것잉게

마누라까지 뺏어가는 지주 놈들이 문제지

가난이 죄제 자네 마누라는 참말로 죄 없어

불쌍한 게 여편네들이여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감싸줘

가지 마유 여기서 울타리 장독대 수채 밑에도

봉숭아 접시꽃 하얀 꽃 빨간 꽃 촘촘히 심고

인생 속는 셈 치고 아들 딸 낳아 한 번 살아봐유

나비도 좋고 잠자리도 좋으니 나도 따라갈튜 보채는

달덩이 같은 새색시를 떼어두고 전쟁판에 뛰어든 새신랑은

등잔불에 심지 타듯 말도 못하고 가슴만 타들어 가는데

피가 내처럼 흘러넘치는 효포 혈흔천에서 능티고개까지

창의의 깃발은 높아도 발은 고개에 묶인 가망 없는 싸움에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사투리가 사뭇 섞여 쓰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