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진주고등학교 교사)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여러 가지 감정에 빠져들게 된다. 욕망, 기쁨, 절망, 경멸, 사랑, 증오, 헌신, 조롱, 공포, 신뢰, 환희, 질투, 동정, 겸손, 후회, 오만……하루에도 이런 감정들이 얼마나 교차하는지, 그리고 단 한 시간, 어쩌면 순간에도 여러 개의 감정이 동시다발로 내 마음속에 있거나 사라져 간다.

부처는 이것을 번뇌라 불렀고 스스로 그 번뇌로부터 벗어났는데 그것을 열반이라 불렀다. 열반은 마음에 불이 꺼졌다는 의미이니 부처는 그런 존재이다. 부처가 열반에 들었다는 것을 산스크리트어로 ‘타타아가타’라 부르는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여거如去’, 즉 ‘이와 같이 갔다’이다. 깨달음을 얻어 피안의 세계로 간 부처! 문제가 있다. 깨닫고 가버린 부처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부처 사후에 많은 제자들이 이 말을 이렇게 슬쩍 바꿨다. ‘여래如來’ ‘이와 같이 왔다.’ 하여 오늘날 부처의 10가지 별칭 중 첫 번째가 ‘여래’다. 어쨌거나 부처는 이 번뇌를 끝냈지만 노자께서는 그 번뇌를 돌아가는 방법, 혹은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도덕경에 이렇게 썼다.

"方而不割 廉而不劌 直而不肆 光而不燿 (방이불할 렴이불귀 직이불사 광이불요) (자신이) 반듯하여도 (타인을) 재단하지 않고 (자신이) 예리하여도 (타인을) 찌르지 않으며(자신이) 올곧아도 (타인에게) 거만하지 않고 (자신이) 빛나도 (타인을) 눈부시게 하지 않네.(도덕경 58 부분)"

위에 있는 온갖 감정의 기본은 평가에 있다. 즉 남을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8만 4천의 번뇌가 생겨난다. 그러니 일단 타인을 평가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보통의 우리는 일단 모든 것을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하려 한다. 요즘은 노자의 이 말씀을 따를 의향이 없다. 아니 따르기 어렵다. 나란 존재라고 해봐야 변방에서 시들어가는 중늙은이지만 현재의 상황을 보고 어찌 노자의 말씀에 순순히 따를 수 있으리오.

현재 대한민국에 일어나는 오만과 무지와 독선과 혼란은 분명 평가가 있어야 한다. 비록 8만 4천 번뇌로 온몸이 불타 없어져도 저 오만하고 거만하며 방자한 권력과 그 권력을 남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하고, 천신만고 끝에 단죄를 위한 절차에도 온갖 교묘한 술책으로 이를 비웃는 옛날 ‘도척’이라는 도적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급한 인간과 그를 배후에 두고 온갖 이익을 보려는 간악한 무리들을 평가하고 단죄하고 싶다. 비록 죽은 후 그 죄로 화탕지옥에서 몇 겁 동안 몸이 불타 고통 속에 있을지라도! 곧 탄핵 결정의 순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