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진주고등학교 교사)
교직 생활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요즘 자주 꿈을 꾼다. 사실 나는 자는 시간이 아주 짧기 때문에 거의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최근 들어 자주 기억에 남는 꿈들을 꾼다. 언제나 마지막이라는 것은 늘 다양한 감정을 가지게 하는 모양이다.
사실 퇴직 이후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지금의 내 삶이다. 방학 중에는 아침에 일어나 걷고 식사를 준비하고 늘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 학기 중에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시간에 학교에서 아이들과 수업하는 시간이다. 수업하는 시간만 분명하게 멈추는 것이 나의 퇴직 생활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그 퇴직 이후가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아마도 관성 때문일 것이다. 지난 삼십 몇 년 동안 해 왔던 일들이 하루아침에 멈추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삼일절이 어제였고 오늘은 일요일, 아침 일찍 산을 올랐다. 안개비가 내리는 산을 걸으며 지금 쓰고 있는 중학교 철학 4의 마지막 부분인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의 시간성에 대해 생각한다. 사실 시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뭐라고 이야기해도 맞고 동시에 틀린 이야기일 수 있다. 동서고금의 철학에서 시간은 늘 애매한 주제였기 때문에 대부분 깊이 관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맞고 틀린 것을 증명할 방법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이 시간을 해석함에 있어 시간 자체를 칼로 사용한다. 즉 시간의 칼로 자른 상태가 바로 무상無常이다. 이 무상을 연결시키는 것이 연기緣起다. 따라서 불교에서 시간은 '무아'와 '공'의 핵심증거로 사용된다. 쉽게 말하면 시간이 흐르니 모두 변하고, 따라서 나도 없고 모든 것이 비워진다는 의미이다.
노자께서는 이 시간을 매우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도덕경 전편에 시간과 관련되는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중 '시간'과 짝지워서 자주 비유하는 대상이 바로 '물'이다. 아무래도 시간을 흐름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 ‘물’과 ‘시간’에 대해서 공자께서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셨다. “서자여사부 불사주야”(逝者如斯夫 不舍晝夜; "가는 것이 이와 같아서 낮과 밤을 쉬지 않는구나!"(논어 자한)
노자도덕경에도 시간과 물은 동시에 비유된다. 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 莫之能勝, 以其無以易之. (천하막유약어수. 이공견강자 막지능승, 이기무이역지.) (도덕경 78장 부분) 세상에서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하지만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 있어 아무도 물을 이길 수 없으며 그 무엇도 물을 대신할 수 없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아주 오래 지속되면’이라는 가정이 빠져 있어도 우리는 그 시간적인 상황을 물의 속성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즉, 시간이라는 단어는 단 한자도 없지만 전체적인 맥락으로 시간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도덕경 전체를 통해 이런 상황을 노자께서는 자주 활용하는데, 이것은 이야기의 깊이를 더해주고 독자에게 더 많은 공간을 열어주고자 함이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흐름의 시간개념을 가능한 멀리하고 시간을 실존 가능성과 묶는다. 즉 시간이라는 연속선 위에 존재하는 사물, 인간이 아니라 시간이 존재 자체로 증명되는 상황으로 논리를 전개한다. 그러기 위해서 매우 다양한 개념을 도입하기도 한다. 우주론적 관점으로 본다면 시간 역시 하나의 사태로서 그 사태의 포괄성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단지 인간의 인지 범위를 넘어서 있을 뿐이다. 어쨌거나 그 절대의 시간 중에 나의 교직 생활은 이제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