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작업실의 봄


계룡산 꼭대기에서 내려 보면 서남쪽 상월과 경천 동네는 연천봉이 북쪽을 막고 국사봉 날개가 남으로 쭉 뻗어 넓은 들을 품은 곳이다. 앞에 솟은 노성산을 왼쪽으로 비껴 나가면 우리나라 최대 곡창인 호남평야가 창창하게 펼쳐진다. 동네마다 벼농사는 기본이고 비닐하우스에서 딸기며 깻잎이 연중 출하되며 황토밭에서는 맛있는 고구마가 생산된다. 각각의 작목들은 축제를 통해 소비자와 만나며 특히 딸기는 동남아 수출 품목이다.

명산으로 이름난 국립공원 계룡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친 이 마을에 들어온 것도 올해로 8년째다. 퇴직 후 직장생활에 밀렸던 예술혼을 일깨우려는 숙원을 이루고자 함이다. 건축비를 줄이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많은 부분을 직접 감당해야 했지만, 절실한 꿈을 이루는 일이라서 끝내 지치지 않았다.

겨울 끝자락


작업실을 짓고 들어선 첫해 겨울바람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 실내에서 지냈기 때문에 거친 자연의 실체를 모른 채 겨울나기를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이 마을에선 태풍보다 더 무서운 바람이 해빙기에 찾아오는 동풍인 것을 알지 못했다. 동풍은 한번 시작하면 4~5일 혹독하게 분다. 비바람이 동반할 때는 그 피해는 더 커진다. 산등성이를 넘어 들판을 짓누르는 듯 할퀴고 지나가는 이 바람을 견디지 못하면 이 동네에서 살 수 없을 것이다. 마을 토박이 어른들은 "바람골에 양반이 사는 거요", "여기서는 장독 뚜껑도 날아다녀"라고 말하지만 나는 "바람이 센 곳에 귀신이 산다."라고 생각하며 세워 놓은 작품을 쓰러뜨리면 즉시 더 튼튼하게 세우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3, 4년 지나자, 작품은 견고해지고 나 자신도 거친 자연에 적응되어 갔다. 일반적으로 자연 현장에 구조물을 세울 때 생각보다 2, 3배 단단히 고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곳은 그보다 더 단단히 해야 했다. 몇 년 적응기를 거치며 이제 이 동네를 관장하는 지신(地神)께서 나의 입촌을 허락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마늘농사

밭고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