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응우의 자연미술 이야기, 튀르키예 유목을 그리며
이즈미르
중앙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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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31 07:56 | 최종 수정 2024.12.3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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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르 안착
2015년 5월 23일 오후 1시 영종도를 떠나 21시간 튀르키예 서부 에게해 연안항구도시 이즈미르(Izmir)에 도착했다. 오전 7시, 아직 일과가 시작되기 전 이른 아침 예정보다 늦게 친구 바롤 토팍(Varol Topac)씨를 국내선 입국장에서 만났다. 그는 어느 항공기인지 분명치 않아 헤메느라 늦었다고 했다. 시내로 오는 차창 밖 이즈미르의 풍경은 그리 낯설지 않았다.
바롤의 아파트는 도로변 언덕에 붙은 맨 아래층 발코니가 있는 아담한 집이었다. 그들은 아들 방을 나의 침실로 내주었다. 아기 엄마는 ‘새마(Sema Okan Topac)’였다. 그녀는 41일 전 “옐른” 이라고 이름을 지은 첫아들을 출산, 41살에 비로소 엄마가 된 꽃중년이었다. 그녀는 대학에서 도자기를 지도했으나 지금은 육아로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고 했다.
아침을 먹고 바롤을 따라 그의 일터로 갔다. 그는 이즈미르의 문화센터 큐레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전에는 다른 도시의 대학에서 교수로 있다가 새마와 결혼 후 가정을 꾸리기 위해 직장을 바꾸었다고 했다. 오후에는 또 다른 미술관을 소개했다. 방문한 날 마침 프랑스 문화원이 주관한 “텍스타일의 미래”전 준비가 한창이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해가 질 때까지 바롤의 작업실과 그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의 작업실은 개발제한 구역으로 묶여 도시 속 오아시스처럼 시골 정경이 남아 있었다. 그는 이 특별한 마을 초입의 과수원집을 임대하여 작업실로 쓰고 있었다. 뜰 옆에 자그마한 채소밭이 있고 2층 건물은 온통 작업재료와 도구들로 가득했다.
마을과 농장에는 작업에 쓸 수 있는 재료들이 많았다. 그리고 길 하나를 건너면 해안까지 적지 않은 공간이 다시 펼쳐지는데, 이곳은 시민공원이 있었다. 우리는 마을을 돌고 또 돌아 날이 저문 9시경에 시내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처음 먹는 튀르키예의 전통 빵과 양고기 그리고 채소와 시큼한 우유로 배를 채웠다. 자정이 가까울 무렵 맥주를 마시고 깊은 잠에 빠졌다.
금줄의 유습
새벽녘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잠자기 전에 마신 맥주 때문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옐른의 종알대는 소리에 잠은 깼지만 일어나기 싫어 그대로 누운 채 이불 속 아늑함에 취해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집안이 고요해져 거실로 나왔더니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아침에 병원에 간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밤 아이 감기 때문에 부부가 이야기한 일이 생각났다.
혹시 나 때문에 아기가 아프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과거엔 우리도 아기가 태어나면 대문간에 금줄을 쳐 외부인이 방문하는 것을 미리 차단했는데 이곳 사람들도 출생 후 40일이 되는 날까지는 산모를 돕는 아주 가까운 친지 외는 방문을 삼간다고 했다. 그래서 만 40일이 되어야 이웃과 친지들이 찾아와 새아기의 출생을 축하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오기 하루 전 외부인들의 방문이 있었고 아마도 아이의 감기는 그 무렵 시작되지 않았을까? 그래도 난 41일째 되던 날 왔으니 우연치고 참 다행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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