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학생들에게 진로 심리 표준화 검사를 학년마다 실시하고 있다. 흥미와 적성의 두 가지 검사를 통해 어울리는 직업을 찾는데 이 두 검사를 직업 찾기에만 활용하면 아쉬움이 남기에 학업성취와 비교해 보는 작업을 함께 한다. 심심하니까 하는 분석이지만 상담하면서 활용하면 호소력이 큰 자료이다. 진로는 멀고 성적은 가까우니까. 우리 학교에서 활용하는 업체의 심리 검사는 적성 영역에서 언어이해, 논리수학, 시각공간, 과학이해의 네 가지 내용을 다룬다. 분석이라고 하기까진 민망한 약식 비교를 해본다. 성적순으로 아이들을 정렬하고 상위 20% 아이들의 해당 영역 백분위 평균에서 하위 20% 아이들의 그것을 뺀 후 차이를 확인하는 것. 두 개 학년 아이들을 비교해 본 결과 공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적성 영역은 과학이해, 논리수학, 시각공간, 언어이해의 순이었다. 흥미 영역은? 탐구형, 관습형, 진취형, 사회형의 순이었다.
공부할 때 논리수학 영역이 뛰어난 학생들이 유리할 것이라는 단견은 내가 문과생이었기에 비롯된 부러움의 발로일 것이다. 과학 원리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적용하는 과학이해 능력은 논리수학과 언어이해 능력을 함께 요구하기에 학업성취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흥미 영역에서는 탐구형이 압도적으로 큰 영향을 보였다. 그다음은 관습형, 그리고 진취형의 순이었다. 생각해 보니 맞는 결과이다. 공부란 게 결국은 모르는 개념이나 원리를 해결(탐구형)하고 난 후 진득하게 반복하여 그것을 체화(관습형)하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거기에 자신만의 확고한 의지와 경쟁심(진취형)도 한몫할 것이다.
흥미, 적성 영역과 함께 이번에 성적과 비교한 한 가지 내용이 더 있다. 바로 진로 성숙도와 성적의 관계이다. 대학원 다닐 때 진로 성숙도가 높은 아이들이 성적도 높은지 그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연구를 간단하게 했었다. 경기도 학생들의 종단연구 5천 개 샘플을 입수하여 그들의 학업성취와 비교했고, 전에 있던 고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도 실시해 보았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 진로 성숙도가 학업성적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꿈을 찾으면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다고 다들 진로 교육에 열을 올리나 싶었다.
그러나 작년과 올해 우리 학교 3학년 아이들의 진로 성숙도를 성적과 비교해 본 결과는 그것과 달랐다. 솔직히 말하면 대학원 때 한 연구도 영향이 그리 드라마틱하게 큰 건 아니었다. 꿈과 진로의 확고함이 성적으로 이어지리라는 희망이 현실에서는 결정적인 게 아닐 수 있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의 경우지만 결론적으로 진로 성숙도는 학업성취와 그리 큰 관련이 없었다. 심지어 올해 3학년 아이들에게는 ‘자기 이해’ 항목에서 학업성적 하위 20% 아이들의 수치가 상위 20% 아이들보다 높게 나타났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앞으로 어떤 진로가 어울리는지 잘 알지 못해도 공부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적과 아무 연관이 없어 보였던 진로 성숙도 안의 내용들 가운데에서 그나마 수치가 크게 나온 항목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항목을 확인하며 나는 마음이 아팠다. 그것은 바로 ‘진로 준비 필요성 인식’이었다. 진로에 관한 어떤 내용들보다 지금, 이 순간 무언가 ‘해야만’ 한다는 절박감이 곧 학업성취와도 연결되는 것 같았다. 공부를 한다는 건 나를 찾는 것도, 꿈을 꾸는 것도 아닌, 그저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몸부림일지 모른다.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덧없는 열정에 아이들의 지친 어깨가 아른거렸다.
학년말이니 한 해 활동을 정리하고 내년을 기약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학생, 학부모와 함께하는 교육 대토론회도 그렇다. 올해는 총 6가지 주제 중 진로 교육이 당당히 제시되었고, 모둠장 역할을 내가 했다. 모둠장으로서 진로 교사인 내가 우리 학교 진로 교육 현황과 개선점을 진행하는 낯 뜨거운 시간이었지만 그런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학생과 학부모님들은 많은 의견을 개진해 주었다. 대학생들에게서 듣는 학과 멘토링에 관심 학과를 미리 조사해 달라던가 창직, 기업가 정신 함양 프로그램의 증설, 학습 컨설팅으로 표준화 검사를 확대해달라는 요청, 현장 직업 체험활동 등 전반적인 체험 프로그램의 확충 등이 요구되었다. 고마운 제언들이다.
문득 진로 교사로 임용된 3년 전이 떠올랐다. 16년 만에 들어온 중학교에서 새로운 교과와 업무를 담당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그것들을 꾸려나갈지 막막하고 두려운 마음이 컸다. 그런 두려움들은 이내 수업과 업무에서 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 완수하면서 잦아들었다. 첫해에는 처음 하는 일이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최대한 효율적인 방법을 고안하면서 진행했기에 정신없는 와중에 만족감이 큰 시기였다. 두 번째 해는 처음 했던 일들의 미숙함을 보완하면서 조금 더 완벽하게 다듬는 시기였기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올해가 어느덧 세 번째 해를 맞아 학년말에 이르렀다. 작년에 비하면 완숙에 완숙을 더한 최고의 해가 되어야 할진대 여기엔 기대치 않았던 매너리즘의 마수가 뻗쳐온다. 이제 ‘해야만 할’ 일들의 한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부럽지 않았다. 게다가 해야만 할 일이라 억지로 하는 사람들로부터는 비록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런 마음이 든 적이 없다. 언제나 대단해 보이는 사람은 남들이 부여한 ‘해야만 할’ 일이 아니라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만들고 의미를 창출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직장을 뛰쳐나와 자기 일을 하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들의 비율이 높을 것이지만 조직 속에서 월급을 받는 피고용인 중에서도 그런 사람은 종종 빛을 낸다. 학교에는 수많은 선생님 중에 일의 안개를 뚫고 자신만의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진심 부러운 마음을 일으키는 분들이다. 진로와 일을 가르친다며 나는 그런 분들의 일과 삶의 철학을 그저 지향할 뿐이다. 내년을 생각하며 아직도 ‘해야만 할’ 일을 떠올리는 내 의식의 한계는 그래서 아쉽고 안타깝다.
꿈이 큰 아이의 맑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떠올린다. 비록 지금 학업성취가 뛰어나진 않더라도 무엇이 되고 싶다며 관련 분야의 정보를 찾거나 책을 읽고 각종 체험 장소를 다니는 아이. 그 일이 단순히 돈과 명예 때문이 아니고 자기 행복과 많은 사람을 위해서 좋다고 믿기에 하고 싶다는 아이의 모습에서 그 아이가 가야 할 길의 수단으로써 공부는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느낌이다. 꿈이 있으면, 확고한 진로가 정해지면 자연스럽게 열심히 공부할지 모른다며 자신의 나약한 의지를 꿈에 핑계 대는 일이 없어야겠다. 다만,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기에 공부를 하는 아이들을 격려하면서 명확한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더라도 스스로의 삶을 굳세게 열어가는 즐거움과 힘을 기르자고 응원해야겠다. 그 응원에 나를 포함하는 건 가르치며 배우는 연대가 주는 위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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