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바로 코앞인데, 분위기가 참 쓸쓸합니다. 예년 같으면 캐럴이 한창이었을 텐데 어쩌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캐럴도 좋은 시절의 행복한 느낌을 불러내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경기도 어렵고, 더욱이 이 나라 최고 지도자라는 사람이 벌인 한심한 행태의 후폭풍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여러 소식과 소문과 함께 사람들의 인정도 함께 나누는 연말 모임, 각종 밥자리, 술자리에서 나누는 연초의 당찬 계획과 실패의 씁쓸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 다시 꿈꾸는 들뜬 자리도 올해는 많이 생략하는 것 같습니다.
출근했다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맹장 수술을 한 적이 있습니다. 병원에 누워 아, 이렇게 집을 나왔다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일도 생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일터로, 여행으로 독립운동 또는 전쟁으로 집을 나갔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새삼 ‘자리’의 무게를 실감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회에 헬리콥터로 무장한 군인들이 진입하는 것을 보면서 아, 오늘 밤 누군가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생기겠구나 하는 생각에 순간 눈이 캄캄해지고 다음에 놀라고 분노의 감정이 폭발했습니다. 작고 사소하고 흔하던 일상의 자리가 얼마나 귀하고 새삼스러운지 다시 깨닫게 됩니다.
이번에 대통령이 벌인 사건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내란의 동기도, 진행 과정도 이해할 수 없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당인들의 후안무치한 태도도 이해할 수 없지만,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격노’하고,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합법 불법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미성숙한 인간이 대통령의 모습이라는 것에 대해 경악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교육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공부 잘하라고 우리가 아이들을 격려하는 일들이 바른 도덕성과 공공성의 기본이 없다면 교육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성적과 명문 학교 인기 학과의 진학 지도와 학력주의와 협력 없는 경쟁교육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현실을 똑똑히 보면서 우리 교육의 문제를 정면으로 재조정해야 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자리라는 게 공간(seat)을 뜻하기도 하고 위치(status)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지위가 있어 어떤 장소를 차지하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그게 그것입니다. 우리 모두 집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사적, 공적 모임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리에 감사하기보다 불만을 품은 적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만, 코로나 대재앙을 맞으면서, 내란이라는 국가 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는 오늘 이 자리,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에서 집과 제 나라를 떠나 길을 떠도는 난민이나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한 나라 한 국민으로서의 자리를 다시 돌아봅니다.
볼만한 것도 자랑할만한 것도 아니지만, 이 나이, 이 자리, 이 직장, 이 나라, 이 가족에 대해 자족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앞자리, 옆자리에 계신 분들이 예수님이고 부처님입니다. 이 재난을 벗어나 2025년 새해에는 어디 허름한 순대국집 목로에 앉아 가슴 속에 쌓여 저미는 사랑의 이야기 펼쳐 놓고 찬 소주 한잔 뜨겁게 나누는 자리가 열리기를 소망합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우 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구상, 꽃자리>
이 자리 저 자리. 앞자리 끝자리, 가시방석과 꽃자리. 이 중에서 마음자리가 가장 소중합니다. 모든 게 마음자리에서 나고 지는 법이니까요. 쓸쓸하고 한심한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드립니다.(주필 전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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