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진로진학 코너 72. 과유불급(過猶不及)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11.15 07:26 의견 1

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나 싶다. 달리 말하면 모든 일에 어느 정도의 지켜야할 선은 있는 법인데 그렇게까지 선을 넘어야 하느냐이다. 일찍이 영화 ‘해바라기’에서도 명대사가 있지 않던가?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마안, 속이 후련했느야!” 하긴, 심증으로만 짐작했던 사회 지도층과 권력자들의 파렴치가 정도를 벗어난 모습들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시대에 누굴 탓하겠는가? 그렇게 얍삽하지 못하고 융통성이 없으며 뻔뻔하지 못하면 어찌 성공할 수 있겠냐는 증언들이 넘쳐나고 있지 않은가? 명백하게 세상사에는 도리(道理)라는 게 있는데 요즘 들어 그걸 말하는 게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현실에서 그나마 가장 정도(正道)를 표방해야 할 교육 분야에서조차 수많은 꼼수와 극성들을 만날 때마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깊은 한숨과 자괴감을 지울 길 없다.

며칠 전 큰딸이 이제 중학교 1학년생인 죽마고우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의 엄마와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터라 중학생이 된 후부터 입시 관련 얘기들을 몇 차례 나눴다. 아이는 나름 성실히 학교생활을 하고 학업에도 열심인 모양이었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친구의 집이 수도권이 아닌 지방(충청권)이라는 점. 거기에 서울, 그것도 강남 중심의 사교육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소외감과 불안이 따라온다. 아이 엄마의 고충에 나로서는 공교육 활동에 토대를 둔 기본적 고입 정보와 준비할 거리 등을 소개하는 게 전부였다. 아이를 면밀히 관찰할 수 없기에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에 그저 칭찬과 격려를 더할 뿐이었다. 그러나 아이 엄마는 다른 사교육 종사자로부터 내가 했던 여러 조언들이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였다는 진단을 들었다고 한다. 그 내용을 전화로 전하며 친구는 아무래도 대부분의 아빠들 입장에서, 그리고 친한 친구를 두둔하고픈 마음에서 기분이 나빴다고 한다. 그 사교육 종사자가 무슨 소리를 했을지 짐작은 가지만 정확한 내용은 모르기에 그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갓 중학교 1학년을 마무리할 아이에게 엄청난 진학 지도의 방향이 그럴싸한 게 있다는 전제는 맘에 걸리는 부분이었다.

사교육은 불안을 먹고 자란다. 문제는 우리의 공교육이 만들어낸 제도들이 그런 불안의 틈새를 키워낸 데 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천편일률적이고 단순한 방식으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평가할 순 없다. 학교 활동이 복잡하고 다양해질수록 그걸 준비하려는 학부모와 아이들의 걱정은 커지고 그 걱정을 비집고 돈거리가 되게끔 만드는 건 사교육 기관이면서 동시에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한 기관들의 필연적 숙명이다. 명문대 입학이라는 성과로써 학부모와 아이들을 만족시켜 주면 그만이겠지만 그 속에서 드러나는 무한한 욕망의 표출과 경쟁 분위기는 꼭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발행한 ‘교육통계연보’에는 2023년 전국 사교육 학원 수가 8만 8천여 개이고, 강사 수는 35만 명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전국 산업별 사업체 수와 종사자 수에서 2022년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 서비스업체는 9만 1천여 개이며 종사 인원은 총 87만 5천 명에 달한다. 전체 산업 종사자의 4.65%에 해당하는 인원이다. 교육 서비스업 인원은 운수 및 창고업, 정보통신업, 금융 및 보험업 종사자보다 많다. 사교육 기관은 이미 하나의 국가적 산업 분야이고 고용 창출원이다. 이제 그 누구도 사교육 분야를 부정할 수 없고 무시할 수 없다. 심지어 사교육 기관이 공교육의 부족한 측면을 보완해 주고 있는 순작용을 한다는 견해도 만연해 있다. 공교육에서는 사교육을 전제로 하고 정책이나 제도를 만든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말이다.

학부모님과 상담할 때면 내가 공교육 교사로서 아이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아무리 충실하게 제안한다고 해도 학부모님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고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사교육 기관으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듣고 온 부모님의 경우는 내가 해주는 공교육 입장에서의 제안과 정보 들을 참조하고 사교육에서 들은 그것들과 비교하면서 나름의 수위를 조절하는 분들도 계신다. 만일 내가 사교육에 종사하는 입장이라면 어떨까? 나 역시 지금과는 다른 제안들로 학부모님들을 긴장하게 만들 것 같다. 일단 아이의 성적을 최대한 객관화해서 냉철하게 확인시켜 주는 작업이 가능할 것이다. 거기서 비교 대상이 되는 기준점은 높게 잡을수록 좋겠다. 이 정도 실력으론 다른 동네 애들과 비교하면 어림도 없어요. 라는 말은 기본값이겠다.

아이가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영재원을 다니게 했다. 자연스럽게 중학교에 와서는 영재고나 과학고 진학을 준비하는 과정을 밟는다. 학원에서 실시한 수학, 과학 레벨 테스트에서 어떤 위치를 확보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학교에서는 연신 수업 활동이 산만하고 기본적인 내용도 소화하지 못하는데 영재고를 준비한다니 진실 여부는 아이와 학원, 학교 선생님의 삼자대면으로만 확인이 가능할 것이다. 영재고를 나오고 재수를 해서 의대에 학종으로 지원하면 대학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과학 분야에 관심이 커서 영재고를 갔지만 좋은 의사가 되어 인술을 펼치겠다고 진로가 바뀐 것까지야 뭐라 할 수 있겠냐마는 애당초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서 영재고를 택했다면 그건 문제가 있지 않겠냐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삼킬 때가 있었다. 학부모님의 잘못이 아니다. 불안과 꼼수를 제조하고 배포하는 사특함이 문제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영어는 수능 영어 1등급 정도의 실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과고, 영재고를 가기 위해선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준비해도 늦다고 한다. 학교 시험 문제를 분석해서 예상 문제를 만들어 연습을 시키는데 아이는 그 학원 교재를 시험 문제를 내는 선생님 수업 시간에 풀고 있다. 수학은 고1 수학(상), (하)를 넘어 수Ⅰ, 수Ⅱ까지 어느 정도 선행을 진행해야 일류대에 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국어가 성적 올리기에 가장 껄끄러우니 이를 위해 독서 및 논술 학원을 보충해야 한다. 이 정도 선행을 진행 중인 학부모님으로부터 탐구 과목도 어느 정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받을 때는 어떻게 답변드려야 할지 난처해진다. 선행학습이야 말 그대로 현행이 완벽하다는 전제로 진행해야 맞을 것이고 그게 된다면 고등학교 과정을 예습하는 차원에서 누가 비난할 수 있겠나 싶다. 문제는 현재 배우는 과정을 충분히 소화하는 것과 별개로 진행되는 추가 학습과 선행 학습의 과잉 공급이다. 거기에 끝이 있을까? 이만하면 됐다는 수준은 있을까? 공부가 다 된다고 쉴 수도 없다. 이어지는 학생부 종합 전형 대비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슨 활동을 어떻게 해야 세특과 창체를 잘 채울 수 있고 학생부를 경쟁력 있게 만들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학종을 대비할 수 있을지 고민은 끝이 없다.

“엄마가 과탐 점수 깔아줄게”라는 기사를 보았다. 한 입시 커뮤니티에 수능 4교시만 원서 접수를 했다는 학부모의 글이 올라오면서 나온 기사다. 이과생 기준으로 2024학년도 수능부터 서울대가 과학탐구Ⅱ 과목 의무화 제도를 없애면서 이 과목 응시생이 크게 줄어들 거라 예상했는데, 급기야 2024학년도 수능에서는 물리Ⅱ 과목 응시생이 3,803명에 불과했다. 이에 일부 학부모가 해당 과목에 지원해서 등급을 깔아주면 같은 원점수라도 자녀의 표준점수가 향상될 수 있음을 노린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기사가 난 올해 과탐Ⅱ 과목 접수자는 물리Ⅱ가 6,241명, 생명과학Ⅱ가 8,214명이었다. 접수 인원만으로 비교했을 때 작년보다 2천 명 이상 늘어났으니 기사가 농담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위와 같은 극성과 유난 속에 합격한 아이의 집에서 나눌 대화를 상상해 본다. “너, 엄마가 수능 깔아줘서 합격한 거 잊지 마!”, “그러길래 사람들이 뭐라 해도 영재고 가서 의대 가야 한다고 했지! 그때 그 말 안 들었으면 어쩔 뻔 했어!”, “선생님한테 세특 이렇게 써달라고 샘플 갖다 드린 거 천만다행이지 뭐니, 학원에서 컨설팅받길 잘했어!”…… 불법이 아니니까 괜찮다고, 제 자식 입장이 되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나만 그런 거냐고, 오늘도 계속 흐릿해지며 뒤로 물러나는 선을 불안하게 바라본다. 지켜지지 않은 선을.


저작권자 ⓒ 중앙교육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