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신일중학교 교사)

록 음악을 들으며 젊은 날을 보냈다. 이제 반백이 넘으니 흔히 말하는 전통 가요, 혹은 트로트라는 장르에 빠져들 만도 하지만 20대 때부터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되었다. 아직도 주로 듣는 음악은 록 음악이다. 그래서 음악은 철저히 기호이다. 당신이 듣는 음악이 당신을 말해준다. 지금도 어떤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쓴다. 공부하며, 일하며, 이동하며, 아니면 아무것도 안 할 때조차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 그러니 음악은 가장 많이 향유하는 예술일 것이다. 문득 학교에서 아이들과는 어떤 음악을 듣는지 정리하고 싶었다. 말 그대로 ‘스쿨 오브 더 뮤직’이다.

14년 만에 중학교에 돌아왔다. 고등학교와 달리 아이들의 활동 중심 수업이 많아서 수업 중에 음악을 트는 경우가 잦다. 첫 수업에 무언가 시키고 틀어준 배경 음악은 그룹 ‘비틀즈’의 노래들이었다. ‘Across The Universe’를 들으며 ‘아무것도 나의 세계를 바꿀 수는 없다(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라는 후렴구에 빠져든다. 아이들의 활동을 살펴보며 귓가는 호강 중이다. 그들의 노래 ‘Let It Be’가 흐르니 드디어 그룹의 이름을 맞추는 아이까지 나타난다. 왜 그들이 레전드인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음악은 정말 어느 곳에서나 어울린다. 무엇을 들을지 막막할 때 마지막 구원이다.

비틀즈의 로고와 비슷한 우리나라의 보이 그룹은 ‘BTS’이다. 리더인 RM이 지금 내가 있는 중학교 출신이다. 그들의 발라드곡들은 아이들이 집중할 때 활용하기에 좋다. 충분히 잔잔하고, 충분히 낭만적이다. “내가 나인 게 싫은 날 영영 사라지고 싶은 날/문을 하나 만들자 너의 맘 속에다/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곳이 기다릴 거야/믿어도 괜찮아 널 위로해 줄 magic shop(「Magic Shop」 중)”. 거기에 스메랄도의 전설에서 차용한 ‘전하지 못한 진심(The Truth Untold)’은 비장한 곡의 분위기만큼 아이들을 차분하게 집중하도록 돕는다. 선배님의 음악을 향유하며 자라는 아이들이다.

한 주에 한 번 아침 등교 맞이 당번을 한다. 중앙 현관 앞에서 아이들과 인사를 하며 작지만, 성능 좋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가져가 음악을 튼다. 내게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BTS의 노래들 속 그 어려운 가사를 아이들은 실내화를 갈아 신으며 무의식중에 정확히 따라 한다. 그들이 초등학교 때 들었던 노래다. 노래방이 생기니 자막을 보지 않으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없어졌다는 건 나이가 들어가며 약해진 기억력에 관한 핑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어렸을 때 불렀던 노래가 제일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영어가 섞인 난해한 가사를 기억하고 부르는 아이들에게서 애창곡이 존속하는 변함없는 방식을 확인한다.

무슨 수업 중에 음악이냐고 하실 분들이 있지만 정말 중학교 1학년의 수업 중 활동에는 음악이 경쾌하게 쓰일 때가 많다. 친구들을 찾아가 무언가를 확인하고 함께 작성하라는 주문이 던져지고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안을 이동할 때,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OST인 ‘Awesome mix vol 1 & 2’를 틀었다. 1970년대의 올드팝이 흘러나오고 첫 곡인 그룹 Redbone의 ‘Come And Get Your Love’에서는 놀랍게도 일부 아이들이 어깨춤을 들썩이며 춤까지 춘다. 그때, 알고 있던 멜로디를 들으니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반응하는 어린 영혼들에서 받은 충격은 신선하고 황홀했다. 아! 이 아이들이 불과 3~4년만 지나면 교실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로 변한단 말인가! 하고 멍하니 있는데 어느덧 잭슨 파이브의 ‘I Want You Back’으로 청아하고 어린 마이클 잭슨을 만난다.

수업 장면과 음악이 어우러져 아이들의 모습을 그 자체로 아름답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한 아이가 방학을 맞아 헤어진 엄마를 찾아 길을 떠난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 ‘키쿠지로의 여름’의 OST를 틀 때 그렇다. 음악 감독 히사이시 조의 ‘Summer’를 비롯한 곡들은 영화 속 주인공 아이의 뭉클하고 가슴 시린 사연과 잘 맞는 수작이다. 음악을 들으며 익숙한 피아노 멜로디에 맞춰 흥얼거리는 아이가 나온다. 그럴 때 아이들을 바라보며 다만 진로와 직업이 현실에 부딪혀 힘들고 어려운 숙제가 되지 않길, 그리하여 고사리손으로 무언가 그려내는 그 찬란한 동심이 영원히 상처받지 않기를 때때로 기원해 본다.

흘러나오는 음악이 좋으면 아이들은 묻곤 한다. 가수가 누구고 어떤 내용인지. 역시 활동 중 배경 음악으로 틀은 전설의 포크 듀오 ‘사이먼 & 가펑클’의 곡을 듣더니 아이들의 반응이다. 내가 들려준 음악은 1981년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열린 그들의 자선 공연 중 ‘Scarborough Fair’와 ‘April Come She Will’이다. “스카버러 장(Fair, 場)에 가나요?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라와 백리향이 있는”. 아트 가펑클의 청아한 목소리로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을 들으면 관심을 갖는 아이가 몇 있다. 그러면 공연 장면을 설명한다. 공원의 유지 보수 및 재개발을 위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서 열린 자선 공연이었고 무려 50만 명이 넘는 인파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인간은 서로 싸우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였다고. 가르치고 배우는 공간이 넓어진다.

교실에서, 학교에서 왜 음악을 들려주는가? 음악에는 적어도 사람들의 갈등과 다툼을 극복할 공감의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가사와 멜로디가 있는 음악을 들을 때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우리는 잠시나마 인간성을 회복한다. 선하고 아름다운 존재들임을 확인한다. 그래서 요즘처럼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이 잔소리가 되기 쉽고 배척과 혐오가 아이들을 수시로 위협하는 때일수록 그것을 활용할 여지가 크다고 믿는다. 무엇을 가르치며 배울 것인가? 어떻게 해야 적합한 진로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인가? 해답이 쉽지 않은 질문에 너무 걱정하지 말자. 일단 음악을 나누며 듣자. 그리고 천천히 생각해 보자. 인생은 예술의 부분집합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