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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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3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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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식(진주고등학교 교사)
15초짜리 짧은 동영상이 대세를 이루면서 더 이상 긴 호흡의 영상은 이제 설 곳이 없어졌다. 15초 동안 더 강렬하고 자극적인 내용을 담아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이 동영상 제작자들은 자신과 타인의 명예는 물론이고 인권의 침해와 심지어는 목숨조차 담보로 제공하며 영상을 제작한다.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조회수에 따라 돈을 버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이런 플랫폼을 만든 당사자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이 극단적인 흐름의 바닥에는 인간들의 채울 수 없는 끝없는 ‘욕망’과 역시 한계를 모르는 ‘현혹’이 있다.
현혹眩惑은 한자어 그대로 해석하면 ‘眩’은 ‘아찔하다’는 의미이고 ‘惑’은 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하다. 따라서 ‘현혹’은 아찔하고 강렬한 무엇에 홀려(인간의 냉철한 이성이나 판단력을 잃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무엇에 현혹되는가인데 21세기 세계라면 아마도 '자본'일 가능성이 가장 농후하다. 그 자본의 위력에 지배당하는 존재들의 문제는 나를 포함한 전 인류적인 것이라 나 따위의 섣부른 판단이 개입할 여지는 별로 없다. 다만 그 문제의 말단에서 내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하는 것일 뿐.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인간 욕망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될 수는 없다. 위대한 성인들조차 그 문제에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을 만큼 이 문제의 뿌리는 인간이라는 종種의 기원에 맞닿아있다. 2600년 전 중국의 노자 역시 이 문제를 고민했다는 증거가 도덕경에 나타나 있다.
常使民, 無知無欲 使夫智者, 不敢爲也. 爲無爲, 則無不治. (상사민, 무지무욕 사부지자, 불감위야. 위무위, 칙무불치, 백성으로 하여금 언제나 무지 무욕하게 하라. 지식을 가진 자들이 함부로 나서지 못하게 하라. 무위로써 시행하면 다스리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도덕경 3장 부분)
여기서 중요한 말은 ‘무지무욕’인데 이것은 백성을 바보로 만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와 ‘욕’은 인간에게 존재하는 지향적 의식의 표본이다. 즉 목적을 가지는 의식으로써 ‘지’가 의미하는 것은 편법이나 잔 재주를 이용하여 쉽게 성공하고 출세하는 세상과 그 상대편에 존재하는 사람들, 즉 그렇게 출세하고 성공한 자들을 부러워하고 자신 역시 그러한 방법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처럼 쉽게 또는 많이 자본을 획득하지 못해 분한 마음과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보는 순간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그것에 현혹되어 정신 차리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지’와 ‘욕’이다. 15초짜리 강렬한 영상의 저변에 깔린 상황이 이러하다는 것조차 사람들은 아예 보지 않으려 하거나 혹은 보여도 무시해 버리고 만다.
노자 당시에도 이런 문제로 고민한 것을 보면 시대가 달라지고 모든 것이 변해도 인간 종種의 바탕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15초짜리 동영상이 넘쳐나는 플랫폼 이야기를 해 보자.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욕망의 구조가 이 땅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조건 없이 공유된다는 것에 있다. 이를테면 산간오지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대도시 사람들까지, 그리고 나이와 전혀 관계없이 스마트폰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무한 욕망의 동영상을 언제나 보고 듣는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면도 분명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이 더 많아 보이는 것은 오로지 내 생각만은 아니다. 2600년 전 노자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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