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경미(관산중학교 교사)
2025.6.14.토요일. 8시 50분, 39 명의 시민들을 태우고 안산을 출발하여 파주를 향해 버스는 달렸다. 615 남북공동선언 25주년을 맞이하여 이를 기억하고 하루 속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노력으로 시민들이 직접 DMZ 안을 체험하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다. 버스, 입장료, 식사, 체험 등 모든 경비는 ‘615 평화연대’에서 지원하였다. 행사에 참여한 시민 모집은 경기도평화교육센터에서 보낸 공고를 보고 나의 네트워크를 돌려서 희망자를 모집하였다. 평소 개인으로는 가기 어려운 곳이라 이럴 때 묻어서 가면 좋은 프로그램이라 지인들에게 공지하여 37명이 만나고 곽인숙, 최연희님은 해설사와 안전요원으로 참여하였다. 안산미래교육상호문화분과에서 공식적으로 7명, 관산중에서 7명, 곡선중 동료들이 20년을 넘어서 7명, 전교조를 인연으로 나머지 동료들이 참여하였다.
먼저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망배단, 망향의 노래비, 북진과 남진으로 총알이 빗발친 기관차를 복원한 모습, 녹슨 기관차 위에서 자라던 뽕나무, 임진강을 건너는 철교, 그 한가운데를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 수 많은 사람들이 염원을 적어서 걸어둔 빛바랜 소망 리본, 그리고 좋은 날이 오면 북으로 보내려고 나란히 앉아있는 소녀상을 보노라니, 천 가지, 만 가지 생각이 오갔다.
이어서 임진강을 건너가는 곤돌라를 타고 2018년 문재인-김정은이 만났다는 ‘도보다리’를 건너 북녘땅을 바라보았다. 그때는 정말 통일이 곧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으로 설렜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저만큼 멀어져간 평화와 통일을 그저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임진강 평화등대, 평화정, 도보다리를 축소하여 재현한 다리, 월경 방지 표지판 등 분단 현실을 알려주는 것과 지뢰 위험을 알리는 빨간색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한국은 대인지뢰금지협약에 가입하고 비무장지대에서 길을 만든 곳은 지뢰를 제거했으나, 숲으로 함부로 들어갔다가 지뢰를 밟을 수도 있는 위험이 곳곳에 있다고 한다. 6.25 전쟁이 3년 동안 지속되었다. 막바지 휴전 협상 중에 휴전선을 어디로 정할 것인지를 두고 남한과 북한은 고지전을 펼쳤다. 지뢰는 전쟁 현장에서 적군의 전진을 더디게 하는 요인이기에 당시 미군 헬기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공중에서 뿌려졌다고 한다. 지뢰 제거 작업을 하거나 군 복무 중에도 지뢰를 밟아서 발목이 날아가는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묻힌 곳을 알 수 없는 지뢰는 그 후 70년 동안 끝나지 않는 전쟁의 흔적과 공포를 남겼다.
우리는 마침내 통일대교를 건너 민간인 통제선(DMZ) 안으로 들어갔다. 미리 예통을 해두었지만 군인이 민간인을 통제하는 곳이다. 군인이 지키는 초소 앞에서 시간이 멈추기도 하고 흐르기도 한다. DMZ 안 주민이 사는 마을은 세 곳이 있다. 최접경 지역인 대성동 마을, 1980년대에 조성된 통일촌, 2000년에 만들어진 해마루촌이 그곳이다. 우리는 가장 나중에 만든 해마루촌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식 뷔페식 식사로 모두 맛있게 먹고 후식으로 팥빙수를 더하니 저절로 만복감이 밀려왔다. 이어서 해마루촌 동네 한 바퀴를 돌며 고향에 와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마을을 구경하였다. 60호 가구가 모여 살고 있었다. 해마루촌은 동파리라는 마을 이름을 순수 한글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해마루촌은 울도 담도 없이 평화, 그 자체였다. 마당에는 푸른 잔디와 각양각색의 꽃들로 가득하여 집집마다 독특하면서도 어우러져서 더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오두산 전망대였다. 날씨가 쾌청하였으나 거리가 있으니 멀리 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망원경에 눈을 대고 하나라도 더 보겠다고 애를 태웠다. 오두산 전망대는 파주 자유대로 바로 옆에 있어서 오가기 편한 곳이다. 도라산 전망대가 해마루촌에서 멀지 않는 DMZ 안에 있고 도라산역도 있어서 그곳이 훨씬 북한이 눈 앞에 펼쳐지는데, 그곳을 가지 않아 아쉬웠다. 그 마음을 전하니 해설사님이 “도라산 전망대는 요즘 땅굴과 묶어서 방문을 해서 뺏다”고 했다. 그전에는 그렇지 않았으나 DMZ를 통제하는 군부대의 요구가 있으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인 모양이다.
한편 예정에는 없었지만 ‘북한군, 중국군 묘지’에 가보자는 나의 제안이 있었으나 일정상 가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을 인솔하여 수차례 파주, 연천-철원, 강화 등 DMZ 평화 기행을 다녀온 나는 ‘북한군, 중국군 묘지’에서 느낀 바를 간단히 사람들에게 전했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성장하고 성년기, 노년기를 보내는 일생은 물론이거니와 죽음, 죽음 이후의 추모와 기억까지도 한 사람의 인권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면에서 적으로 만났지만, 전장에서 주검이 된 북한군이나 중국군의 유해를 발굴하여 한 곳에 매장하여, 유해나마 부모 형제와 처자가 있는 본국에 송환되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현장이라고 덧붙였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소감 나누기를 진행하였다. 단톡방에서 사진도 공유하고 감상문도 올렸다. 한편 부모를 따라 참가한 어린이 삼 형제, 남매, 외동이 둘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일정 내내 의젓하게 기행을 하여 모든 어른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모두가 평화와 통일을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다. 버스가 안산에 도착하니 6시 10분. 모두 알찬 기행을 마치고 총총히 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