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진로진학 코너 70. 취향들의 안식처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11.01 06:44 | 최종 수정 2024.11.01 10:22 의견 1

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 교사)

어느 이름 모를 가수의 공연 장면을 본다. 가수의 음악이 전혀 내 취향이 아니어서 계속 보기에 힘든 영상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건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의 열광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별로라고 여기는 음악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저렇게 많다는 데 문득 생소한 감정이 일어났다. 공연뿐만이 아니다. 운전하다가 라디오로 음악 방송을 듣다 보면 좋아하는 방송인데도 두 시간 동안의 음악 선곡 중 내 마음에 꼭 드는 음악은 손에 꼽을 정도다. 나만 그런 건 아닐지 모른다. 수많은 신청곡을 읽어주는 DJ의 수고로움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사람들도 비슷한 감흥의 들어줄 만한 음악을 듣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환영하며 듣는 것일 테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곡과 가수가 천태만상이라는 건 이상하고 신비로운 일이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건 취향은 사람마다 아주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우린 각자의 느낌대로 삶을 살고 있다.

탐욕과 무지로 투자를 잘못해 큰돈을 잃은 적이 있다. 실의에 빠진 날들을 보내던 중 무심코 보던 한 프로야구 편파방송 BJ의 고백에 꽂혔다. 그는 이른바 별풍선이라는 후원금을 받는 방송을 진행했는데 예상컨대 하루에만 백여만 원이 족히 넘는 후원금으로 고수익을 내는 유명 VJ였다. 우천으로 잠시 중단된 경기에서 자신의 지난날 암울했던 기억을 꺼냈다. 많은 수익을 내고 있어서 시청자들에게 자신이 남부럽지 않게 잘 사는 것으로 비칠 걸 잘 안다며 그러나 실제는 아직도 대출을 갚고 있는 형편임을 밝히고 이어서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십여 년 전에 본업과 야구 중계 모두 잘 풀려서 기고만장했던 순간, 후배의 소개로 한 전문가로부터 투자를 권유받았고 시험 삼아 소액 투자를 하다가 이내 확신에 차서 친구, 지인, 사돈의 팔촌까지 돈을 끌어대 '몰빵'했다는 이야기였다. 어느 날 즐거운 마음에 퇴근 후 문득 전화했더니 그 전문가는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미 해외로 도주해 버린 것. 거의 이십여 년 전 금액으로 23억이었으니 VJ는 그 순간 흘린 눈물을 떠올리며 다시 울컥하고 목이 메었다. 그러면서 그가 한 말이 나를 잠시나마 위로했다.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 사람 모두에게는 각자만의 고충과 어려움이 있는 거라고. 그래서 쉽게 남의 아픔과 행복을 단정할 순 없는 거라고.

각자의 취향과 고충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건 타인의 삶에 대한 존중을 뜻한다. 그래서 서로 간섭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당신처럼 누군가도 힘들고 외롭다는 걸 이해하자는 얘기다. 다시 말해 누구나 삶의 무게 한 짐씩은 지고 있으니 아무리 어려워도 위안을 얻고 이겨내기를 바란다는 응원과 격려이다.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 만큼 다른 사람도 저런 걸 좋아할 수 있구나, 내가 이런 게 힘든 만큼 다른 사람도 저런 게 힘들 수 있겠구나! 하는 인정에서 자연스럽게 공감과 연대가 싹튼다.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순간, 그들도 나처럼 살고 있음을 인정하는 순간, 각자의 삶은 비슷한 지점을 발견하고 안도하게 된다. 최근에 그런 지점을 발견하고 가슴 한편이 아려온 적이 있다.

1990년대에 나의 20대와 함께 했던 한 가수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됐다. 올해는 고(故)신해철이 타계한 지 10주년이다. 그의 음악을 듣고, 그가 쓴 가사를 되뇌며 20대를 보냈다. 학교에 발령을 받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와중에 어느덧 중년이 되어 야속한 세월을 돌아볼 때도 늘 그의 음악이 함께했다. ‘그대에게’로부터 ‘나에게 쓰는 편지’와 ‘영원히’, ‘날아라 병아리’를 지나 ‘일상으로의 초대’ 그리고 ‘Here, I stand for you’를 넘어 진정 의기소침하고 자신이 없을 때마다 들었던 ‘해에게서 소년에게’까지, 그의 음악과 노랫말이 내 인생 후반부의 20여 년을 지배했고 나는 거기에 기꺼이 점령당한 채 안도하며 삶을 버텨온 것 같다. 그의 10주기 추모 공연을 유튜브로나마 접하며 사람들의 취향과 기호가 다양하지만, 그의 음악에 대해선 얼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열광과 애도 속에 오랜만에 상념에 젖었다. 그리고 아마도 언젠가 들었을 법한 그의 음악 중 한 곡에 또 한 번 감정이 요동쳤다. 바로 그룹사운드 세 번째 정규앨범에 수록된 곡 ‘Hope’였다.

그 노래의 가사는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들 속에 이렇게 힘들 때가 없었다고 해도, 세상은 힘든 곳, 누구도 원망하지 말기를. 만일 절망의 끝까지 아프도록 떨어진다 해도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큰 소리로 외치면, 드디어 흐릿하게 눈물 너머 잡힐 듯한 희망을 느끼게 된다는 얘기다. 모든 고통이 바닥을 친 후에야 비로소 희망이 고개를 내민다는 전형적인 응원가이다. 일찌감치 캐나다 출신의 프로젝트 그룹 ‘Klaatu’가 희망이 없으면 아무 계획을 세울 수 없고 용기도 없으며 어떤 배도 항해할 수 없기에 희망은 어머니의 사랑 같은 마음이라고 했고, 오래된 명품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친구 앤디를 찾아가는 레드의 마지막 대사에서 태평양이 꿈에서 본 것처럼 푸르기를 ‘희망’한다는 울림까지 더하여 희망에 관한 메시지는 줄곧 나에게 힘이 되어 왔다. 비슷한 느낌으로 노래 ‘Hope’에도 잔잔한 감동을 받던 차에 나는 이 곡과 관련한 몇 가지 사연을 접하고 더 이상 차분한 감정선을 고수할 수 없었다.

곡명 검색에 딸려 온 블로그의 글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나의 유년 시절은 부모님의 불화와 가족의 붕괴로 길고 긴 암흑과 같았다…’라고 시작하는 그 글에서 작자는 자고 나면 눈물로 베갯잇이 흥건했었던 중학교 시절 이 노래를 듣고 힘을 냈었다고 고백한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살펴보았더니 어엿한 의료 전문 변호사였다. 환경을 탓하며 좌절하려는 아이가 있다면 귀감이 되는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직의 인생담이라 더 혹했을까? 편견에 갇히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유튜브로 다시 그의 음악을 들었다. 거기서 나는 아무리 취향의 다양성을 존중한다 해도 한 때 고통 속에서 힘겨워했던 사람들이 이 음악으로 어떤 ‘희망’을 품었었는지, 그리고 그 고통을 이겨낸 후 세상을 떠난 가수에게 얼마나 많은 감사와 고마운 마음을 갖는지, 댓글 속에 무수한 간증들을 확인하며 깊은 감흥에 젖었다. 한 사람의 노래가, 철학이, 위로가 어떻게 많은 사람들을 도왔는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음악을 들으며 댓글을 함께 보는 게 더 큰 감동을 불러일으킨다는 걸 처음으로 느낀다. 세상을 떠난 후 실제 삶 속에서 그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추모가 적지 않았던 점에서 아티스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좋은 삶을 살다 간 그를 동경한다. 나 역시 그의 음악을 듣고 힘을 얻은 기억이 많기에 그저 고마운 마음이 크다. 문득 진로 동아리 반 아이들에게 자신의 인생과 앞으로의 진로에 도움을 줄 음악을 정리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어른들만큼이나 다양한 취향과 감성을 지닌 아이들에게도 내가 느낀 공감의 연대가 가능할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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