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진로진학 코너 66. 진짜 전문가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10.04 07:10 의견 1

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2020학년도 대입 때의 경험이다. 우리 학년에서 한 여학생을 경희대학교 태권도학과에 논술 전형으로 합격시킨 일이 있었다. 평소 학생의 성적보다는 몇 단계 위의 학교를 보낸 결과에 적잖이 놀라서 담임 선생님께 비결을 물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전국 단위로 유명한 진로 진학 전문가였는데 일단 태권도학과가 체육 계열이라 논술 자체의 경쟁력이 다소 약한 가운데 학생은 국어, 영어 중 1개 이상 3등급의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맞췄고, 자격 기준인 태권도 2단(품) 이상의 단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 학교의 논술 시험은 수능 주간의 주말에 있었으니, 아이는 이 정보들을 미리 알고 시험을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학년 부장으로서 담임 선생님의 틈새 전략과 전문성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진학 지도를 한답시고 같은 교무실에 앉아 있지만 실력에 따라 분명히 다른 지도 수준과 격차가 존재함을 새삼 느꼈다. 모든 선생이 같은 선생은 아니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자고 일어났더니 왼 손가락 몇 개가 움직이지 않고 곧이어 극심한 통증까지 일어나서 일단 동네의 조금 큰 병원에 갔었다. 해당 병원에서는 어떤 원인으로 한참 자라나는 고등학생의 왼손에 이런 증상이 생기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때 그 병원의 의사가 고개를 저으며 조금 큰 병원에 가보라고 권하는 모습을 잊지 못한다. 아쉬운 건 이게 어떤 병인 것 같으니 큰 데 가서 치료하라는 게 아니었다. 당최 병의 원인을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환자와 보호자의 신뢰가 생길 리 만무하였다. 그 병원에 간 후 한의원에 들러 몇 번의 침을 맞고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쩔 수 없이 가장 가까운 대학 병원에 갔다.

병명은 ‘수근관 협착증(손목터널증후군)’이었다. 신경계 쪽 질환이고 요즘은 많이 알려진 병이다. 과도한 손목 사용이 원인인 병인데 당시에 중간고사 공부를 하다가 손을 깔고 누른 채 엎드려 자고 일어난 후 나타난 증상이라고 말했더니 의사들이 그럴 리가 없다며 웃었다. 국내에 몇 개 없었던 ‘근전도 검사기’로 몇 차례 검사를 하고 내려진 진단이었고 집도는 당시 신경외과 명의라고 소문난 선생님이 해주셨다. 요즘 같은 의료 대란에 문득 그런 최고의 의사를 앞으로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날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스러움이 겹치는 장면이다. 어쨌든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나는 회복된 왼손으로 다시 기타를 치는 등 고통 없는 일상을 찾았다. 그때 느꼈다. 모든 의사가 같은 의사는 아니라는 걸.

소개팅 자리에 가느라 외곽 순환도로를 달리던 중 갑자기 차가 덜컹거렸다.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일어난 현상에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겁이 났다. 소중한 소개팅은 망쳤고 집으로 돌아와서 가까운 카센터로 들어갔다. 10만 킬로미터 이상의 주행 기록에 몇 번의 고장을 겪은 후라 이번에도 올 것이 왔다는 각오를 하며 진단을 받았다. 결론은 소모품의 일종인 점화 플러그의 노화였다. 이어 엔진 기통마다 꽂혀있는 점화 플러그 세트를 교체했다. 일체형이라고 망가진 것만 바꿀 수 없다기에 비용이 크게 들었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센터를 나왔다. 그런데 며칠 뒤 차가 다시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해당 카센터를 다시 방문하니 먼저 문제였던 점화 플러그가 다시 타버린 채 망가져 있었다. 이상하다고 의아해하는 기술자는 다시 플러그를 교체하며 추가 비용을 요구했다. 순순히 일부 비용을 지불했다. 그러고는 며칠을 잘 몰다가 다시 차가 덜컹거렸다. 이젠 안 되겠다 싶었다. 사람으로 치면 대학 병원, 직영 서비스 센터로 갔다.

큰 규모의 서비스센터여서 내 차로 몇 명의 정비공들이 몰려들었다. 점화 플러그를 교체했는데도 계속 타들어 가며 망가지는 현상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해 내 차를 빙 둘러 지켜보던 정비공들은 연신 설왕설래 의견을 나누며 논쟁을 했다. 아예 엔진을 들어내야 하나 싶어 큰돈 들어갈 걱정에 나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때 연륜이 느껴지는 한 정비공이 내 차를 지나치며 힐끗 엔진을 살펴보았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당시 그 정비공은 점화 플러그와 엔진 주변에 있는 접지선, 일명 ‘어스’가 빠져있는 걸 짚어냈다. 예상을 깬 간단한 조치에 주위에 있던 젊은 정비공들은 탄성을 외치며 겸연쩍어했다. 신기하게도 그 조치 이후 차는 더 이상 덜컹거리지 않았다. 처음에 갔던 동네 카센터에 다시 들러서 정황을 설명했더니 엔진 오일을 새로 갈아주었다. 크게 화를 내진 않았다. 그저 기술자도 다 같은 기술자가 아님을 깨닫고 나왔다.

만일 어떤 아이가 “선생님, 논술로 갈 수 있는 미대가 있나요?”라고 물으면 즉답할 수 없는 나는 당황할 것이다. 물론 아이나 선생이나 인터넷을 찾아보면 바로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이다. 2024학년도 대입의 경우 동덕여대, 홍익대, 가천대, 한국공학대가 미술 계열에 일부 학생을 논술로 뽑았다. 미술 계열뿐만 아니라 체육, 연기 분야에도 논술로 학생을 뽑는 학교가 있었다. 앞서 말한 경희대의 경우는 이제 더 이상 논술로 태권도학과 학생을 뽑진 않는다. 다만 스포츠의학, 체육학과를 뽑는다. 음악 계열은 논술로 뽑는 학교가 전무하고 비실기 전형은 거의 뽑지 않는다. 이런 특징들을 굳이 인터넷의 힘을 빌려 검색하지 않고 미리 파악하고 있다면 아이와의 상담에서 한 단계 나아간 정보의 맥락과 행간의 의미를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 이상이 준비되어있다면 더욱 깊이 있는 어떤 제안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비로소 아이에게 최선의 선택지를 줄 수 있는 수준 높은 상담이 가능해진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나는 이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전문가 인지 고민하게 된다.

진학 정보뿐만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공부를 잘할 수 있어요?”라는 질문에 학생에게 꼭 맞춘 최적의 학습 코칭을 해줄 수 있고, “제가 어떤 진로를 가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미래 사회에 유망하고 학생의 흥미와 적성, 잠재력에 걸맞은 진로를 제시해 줄 수도 있다. 모든 학생이 즐거워하고 만족하는 수준 높은 진로 수업을 디자인할 수 있고, 학생들에게 진정 유익한 진로 체험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수준은 천차만별이어서 일률적으로 전문가의 권위를 부여할 잣대가 없다. 이 분야는 종합적인 평판과 명성 정도로 전문성을 가늠할 뿐이다. 그런 기준으로 판단해도 나는 어느 영역이나 최고라고 자부할만한 정도는 아니기에 솔직히 전문가의 칭호가 민망하다. 이건 겸손이 아닌 평범한 자기 인식의 발로다.

일전에 노래 악보를 하나 받아서 이게 어떤 음악이 될지 궁금해 음악 선생님께 연주와 녹음을 부탁한 일이 있다. 몇 분이 지나고 음악 선생님은 악보를 직접 연주한 음악 파일을 뚝딱 완성해서 보내왔다. 아, 이 악보가 이런 음악으로 표현되는구나! 수년간의 노력을 통해 형성된 그 실력에 나는 전문성을 부여해도 충분하겠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기능적 영역에서는 전문성을 파악하기 쉬운 장점이 있다. 교과별로도 어학과, 수학 및 과학, 예체능이 그렇다. 나 같은 사회 계열 교과에서는 경탄할 만한 전문성을 쉽게 발견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 대신 특별한 상황에 이르면 상대적으로 드러나는 수준과 깊이의 차이가 있기에 그제야 전문성을 알아낼 수 있다. 행정가로서 교장, 교감 선생님의 활약도 그런 경우가 많다.

단박에 전문성을 파악할 순 없는 영역에 종사하며 스스로 얼마나 충실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평가해 본다. 최고의 전문가라는 평가와 찬사를 받을 정도의 수준이라면 좋겠지만 그 정도의 성취를 이루지 못한 평범한 보통의 진로 교사라도 크게 낙담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자신의 역량을 탓하지 말고 그저 매 순간 던져지는 학생과 학부모의 질문에 충실히 답변하려고 애쓰는 자세나마 잃지 말아야겠다. 운이 좋고 정성이 더해진다면 시간이 지나 ‘최고’라는 인정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목표에 대한 집착이 좌절과 아쉬움을 낳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기에 과한 마음을 달래며 위로하고 있다. 나에게 관대해야 다른 이들에게도 관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선생이라고 다 같은 선생은 아니지만, 일상에 충실하고 작은 인정에 감사하는 다 같은 선생 가운데 하나로 묵묵히 버텨가고 싶다. 최고가 될 수 없다고 실망하진 말자는 격려가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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