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풍 시인, 네 번째 시집 「스물아홉 번 이사한 남자」 출간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9.20 06:27 의견 0

안기풍 시인이 「기산리 개울물 소리」, 「수녀원으로 이사 온 남자」, 「기풍아 밥 먹었니」에 이어 네 번째 시집 「스물아홉 번 이사한 남자」를 출간했다. 거의 1년마다 한 권씩, 참 부지런한 시인이다. 이 시집은 앞의 시집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삶과 시 세계가 더욱 깊어지고 영글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시는 대체로 짧고, 비유나 상징과 같은 문학적 기교보다는 치열하게 살아온 삶을 진솔하게 직관과 직설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감동을 준다. 그의 시는 문학적 기교나 장치보다는 일상적 서사敍事, 꽃이나 풀이나, 물이나 나무와 같은 자연보다는 일상을 사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데에 그 특징이 있다.

시인 안기풍은 세속적인 의미에서 볼 때 성공한 사람이다. 튼튼한 회사를 운영하는 모범적인 기업가요, 많은 특허를 출원하고 소유한 저명한 발명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물아홉 번 이사한 남자」라는 시집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그의 오늘날의 삶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저 살아온 것이 아니라, ‘살아보니 살아’진 삶이었으며, 스스로 그가 만들어낸 길이었다. 남의 손에 이끌리고 도움을 받아서 쉽게 걸어온 길이 아닌 것이 그의 시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의 시에서 땀 흘려 일한 자에게서만 맡을 수 있는 정직한 땀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애틋한 눈물 자국을 볼 수 있다.

이 시집 1부와 2부에는 오늘날 시인의 자리에 오기까지의 쓰라린 경험의 시가 담겨 있고, 3부에는 여기저기 흩어지고 돌아가신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시편들이 있다. 4부에는 기산리 솔의 정원에 정착하면서 얻은 자연에 귀의한 삶의 시편들이, 5부에는 최근 작사가로 활동하면서 쓴 그의 노래 가사들이 실려 있다.

뭐라 뭐라 말해도 시는 삶의 기록이고 표현이다. 삶이 없는 시는 참된 시가 아니다.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삶을 꾸며 아름다운 말로 지어낸 말(巧言)을 시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진정한 시는, 문학은 제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언어이다. 그래서 시인에게 있어서 자기가 쓴 시 한 편, 한 편은 자신의 삶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기풍의 네 번째 시집 「스물아홉 번 이사한 남자」은 그의 눈물 젖은 자서전인 셈이다.

성공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달려온 삶은 기쁨과 만족으로 벅차오르기도 하지만 한없는 피로와 세상에 대한 염증을 함께 동반하게 된다. 일상의 탈출을 위해서는 숨구멍이 필요하게 되는데, 시인은 한때 수녀원이었던 곳, 즉 기산리 솔의 정원에서 자신이 살기 위한 숨구멍을 찾아낸다. 이제 솔의 정원에서 참새하고 함께 놀며, 까마귀도 불러내고 밤새 죽은 거위의 죽음을 슬퍼하고 15미터 개줄에 묶인 개의 슬픔을 읽을 줄 안다. 밤하늘을 보며 물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인생을 돌아보는 시인이 되었다.

세상이 숨 막힌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더욱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든다

작고 희미한 숨구멍

기산리

솔의 정원으로 숨는다

숨구멍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밤하늘 별과 달

개울물 소리

소나무와 정원의 꽃들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수녀원으로 이사 온 남자

날갯짓을 한다

(「숨구멍」 전문)

그의 도전은 끝이 없다. 그는 꿈꾸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꿈만큼 원대하다. 축복을 두고 얍복강 나루터에서 하느님과 씨름하는 야곱처럼 그는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이제 시인의 길과 함께 작사가의 길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가 작사한 노래는 소시민들의 애환, 꿈과 실패와 아쉬움을 섬세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꿈꾸는 자의 기개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

안기풍 시인은 깨어있는 사람이다. 시적 각성覺醒이 일상화되어 있고 감수성이 예민하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거나, 쉽게 넘어가는 문제나 현상도 그의 눈에는 기민하게 포착된다. 안기풍 시인을 볼 때마다 파도치는 바다 앞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한다. 파도는 멈추는 법이 없다. 하나의 파도가 지나가면 또 하나의 거대한 파도가 밀려온다. 밀려오는 파도를 거부하지 않고 파도타기를 하며 살아온 시인의 모습을 상상한다. 이제 그는 사업의 파도가 아니라 시와 노래라고 하는 거대한 파도에 맞서고 있다. 지나간 시간의 값비싼 경험들이 모이고, 더욱 예민한 촉수로 인생의 문제를 꿰뚫어 보는 지혜를 더하여, 교훈과 감성과 지혜가 더욱 감칠 맛 나는 언어로 표현된 아름다운 시들이 모인 다음 시집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이다.(글 전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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