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교장은 승진하는 자리이다. 모든 나라에서 교장이 승진하는 것은 아니다. 독일처럼 교사협의회에서 선출되는 나라도 있고, 미국처럼 교사직과는 다른 직렬로 양성되는 나라도 있다. 승진은 하위계급에 재직하고 있는 자를 상위계급에 임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교사는 하위계급이고 교장은 상위계급이어서 자동적으로 교사는 교장의 부하가 되게 된다. 교장 직렬이 따로 있는 미국 교사들은 교장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행정이라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자신의 상관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더구나 선출되는 독일의 교장은 교사를 동료로 보지 부하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한국에서 교장은 어떻게 승진하는가? 교장은 교감 중에서 선발하므로 교감으로서의 재직을 전제로 한다. 교장이 승진할 때도 교감 승진과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점수에 의해서 결정된다. 승진점수는 경력평정, 근무성적평정, 가산점에 의해서 결정되고, 가산점은 ‘공통가산점’과 ‘선택가산점’으로 구성된다. 경력평정에서 점차 경력 기간을 줄여 교장의 노령화를 완화시키려고 하고 있다. 승진에서 1차적으로 가장 큰 변수는 가산점 제도이다. 여기서 세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가산점 속에 담임 경력, 보직 경력, 장학(연구)사 경력, 개인 연수 실적, 연구 실적, 연구학교 경력, 학폭 가산점, 접경 및 농어촌 점수 등이 포함되어 재직 중의 경력과 실적을 반영하고자 한다. 이렇게 해서 대략 승진 예정자들이 추려지면, 그다음 단계에서는 교사의 경우는 교장의 근무성적평정(근평)이, 교감의 경우에는 교장과 교육청의 근무평정(각각 50%)이 승진을 결정적으로 좌우하게 된다.
교장(교감)의 선발 과정에서 우리가 정말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은 점수의 투명한 관리가 아니라 승진의 준거가 되는 각각의 항목이 교장(교감)의 직무수행능력을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는 변수인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승진에서 가장 결정적 변수인 접경지역이나 농어촌, 도서벽지지역 근무경력이 교장이나 교감 업무를 잘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 현행 승진점수는 능력평가라기보다는 그동안 노력과 경력에 대한 보상 기제에 더 가깝다. 한 마디로 승진의 타당한 준거 체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어렵게 선발한 교감, 교장은 어떻게 양성되는가? 교감지명자가 교감이 되기 위해서는 소정의 교육을 받게 된다. 경기도의 경우, 교감은 100시간의 교육을 받는다. 교육과정은 기본역량과 전문 역량으로, 전문 역량으로는 교무 운영, 교육지원, 갈등관리 등 실무 위주 교육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일정 기간 교감직을 수행한 이후 교장 지명자가 된 사람들도 다시 소정의 교육을 받는다. 교장연수는 해외교육체험 연수 포함하여 200시간(대략 한 달)으로, 전문 역량으로 교육 기획, 조직 관리, 학교 경영의 수업을 받게 된다. 교장으로 임명된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교육연수원이나 교육청의 연수를 받는다. 교장 중에서도 특별한 이들은 서울대학교나 한국교원대학교의 행정연수원에서 6개월 파견 연수를 받기도 한다.
그러면 이런 소정의 자격연수로 교장은 충분히 양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가? 자격 연수로 교장의 업무수행능력들이 충분히 습득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교장제도는 양성 교육에 있다기보다는 승진 선발 과정 자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부와 교육청의 공식적인 양성제도가 아니라, 학교에서의 우연적인 도제제도에 더 의존하고 있다고 본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교사, 대개 교무부장은 자기와 함께 근무하는 교감에게서 3, 4년간 몸으로 교감 수업을 받고, 교감도 자기와 함께 근무하는 교장에게서 교장의 업무와 역할을 배운다고 본다. 전에는 거의 7, 8년 하던 교감 기간이 경기도의 경우 이제는 대략 3년 정도로 줄었다. 이 기간에 교감들은 적어도 두세 명의 교장으로부터 비공식적인 교장교육을 받게 된다. 결과는 복불복이다. 우연이다. 훌륭한 교장 밑에서는 좋은 교육을 받을 것이고 못된 교장에게서는 엉덩이에 뿔난 묘한 교육을 받을 것이나, 세상일이 다 그렇듯이 반면교사니 타산지석이니 하는 것이 있어 결과는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 것이, 피교육자인 교감의 태도와 성향, 능력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도 나올 수 있다.
내가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교장 양성 교육이 체계적인 것이 아닌, 너무 우발적인 요소에 의존하는 데서 생기는 문제점이다. 승진점수에 의해서 선발된 교감, 교장 후보자가 반드시 그 지위에 부합되는 인물인가 하는 의심이 교사들 사이에서 존재하고 있고, 그렇게 선발된 후보자들이 교감, 교장 자리의 무게에 비하여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양성되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커야 하는 교장제도의 취약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박박 기어서 승진한 사람들은 무언가 그 고생에 대한 보상심리를 갖게 마련이다. 그게 자기만족에 그칠 수도 있지만 가당찮은 권위주의와 교사들의 복종심과 인정 요구로 나타날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교장이 되려면 2년간의 교장교육 행정프로그램을 이수하여야 한다. 여기서 ‘교장학(principalship)’을 공부한다. 교장학(론)에는 교장업무 수행과 관련된 교육과정, 교육행정, 인사와 재정, 회계, 리더십, 갈등관리, 시설관리 등이 포괄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교사도 교장이 되려면 사표를 내고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직렬 자체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미국이라고 해서 학교에 문제가 왜 없겠냐마는, 교장이 교사를 부하로, 하급자로 인식하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는 없다고 할 것이다. 교장을 뽑는 날이면 서로 하기 싫어서 교사들이 결근한다는 독일에서는 더욱이 교장과 교사의 이러한 갈등은 없을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그리고 개인적으로 40년 가까운 교직 생활을 하면서 교감은 빼더라도 20명 가까운 교장들을 만났다. 여러 유형의 교장들을 만났다. 개념이 없는 교장, 비겁하고 욕심만 많은 교장, 교육에 대한 생각이 1도 없는 교장, 어떻게 저런 사람이 저 자리까지 올라갔지 의심이 가는 교장, 목구멍까지 권위가 쩐 교장 등등. 그래도 권위주의 시대에도 비전과 추진력을 가지고 주변을 설득해 가면서 일을 이루어 내는 훌륭한 교장 선생님들이 계셨고, 민주화된 이 시대에도 보신에만 급급하는 낯 뜨거운 교장들을 만나기도 했다. 훌륭한 교장 선생님들이 공식적인 교육 프로그램에 의해서 양성되고 다듬어진 것이 아니라, 본인의 천품과 스스로 자발적인 학습과 실천에 의해서 형성되어 가는 것을 지난 세월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교장 선생님들의 교육과 행정 수준이 굉장히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이 사회와 학교의 민주화 덕분이지 진일보한 교장 양성제도의 결과라고 보이지 않는 것은 유감이다.
내 이야기의 요점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우리나라의 교장은 공식적으로 ‘양성’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커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행 교장제도의 문제점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차라리 교장을 선출하여 보직으로 하자, 공모하자는 의견을 가지게 되는데, 선출제나 공모제가 완전한 선인가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다. 갑작스러운 제도변경이 가능한가에 대한 현실적인 의문과 함께 어떠한 제도도 완벽한 것은 없다는 우유부단한 신념 때문이다.(전종호 주필)
※ 이 글은 교육언론 <창> 오늘 칼럼으로 함께 실립니다.
저작권자 ⓒ 중앙교육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