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응우의 자연미술 이야기, 동유럽 예술 유목 4

천도재가 웬 말인가!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7.30 07:16 | 최종 수정 2024.07.30 08:42 의견 10

올리비에와 마그리트 작 ‘들어와 앉으세요’ : 이들은 부부로서 늘 같이 여행하며 작업한다. 이 작품은 2010년 공주의 ‘자연미술의 집’ 마당에 설치했던 작업이다. 야투와 처음 만났을 때의 작업으로 동양의 음양 사상을 작품으로 풀어낸 것이다.


한여름 라자리아 마을의 아침은 서늘하지만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아침 식사 후 뒷산으로 현장 작업을 나갔다. 마침 프랑스에서 온 올리비에와 마그리트 부부가 언덕 위에서 뭔가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언덕 위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의 기초에 불거진 두 줄의 철골 끝에 솔방울을 세우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하는 작업이 마치 어떤 의식처럼 보인다는 생각에 당신들이 이 작업을 완성하고 나면 작품의 의미를 확대하여 내 방식대로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겠다고 제안했다. 그들은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조금은 기대하는 눈치였다. 산을 오를 때 일행의 간식으로 가져온 사과로 제물을 삼고 식수를 제주로 하여 익숙한 방법으로 자연신에게 고하고 안녕을 기원했다. 이 모든 것은 그들 부부와 합의된 것으로 나름 경건하게 수행했으며 예의 기록도 잊지 않았다. 이후 우리는 각각 흩어져 두어 시간 현장 작업을 했다.

고요한 작, 기도


아침부터 잔뜩 찌푸린 하늘은 점점 구름이 짙어지더니 이윽고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지나가는 비려니 생각하고 소나무 아래 피신을 했으나 빗발은 더욱 굵어져 진퇴를 결정해야 했다. 결국 두 패로 나뉘어 나는 강 화백과 함께 숙소를 향해 허겁지겁 빗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번개의 섬광과 벼락의 굉음이 점점 가까워질 무렵 누군가 우리의 뒤를 따라왔다. 마그리트였다. 그녀의 남편은 얼핏 보기에 한 참 뒤에 쳐진 채 따라오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어느 나무 밑에 피신했다 우리를 보고 따라 뛰기 시작한 듯했다.

사정없이 내리는 빗발과 천둥소리에 놀라 앞뒤 살필 여유 없이 앞만 보고 뛰고 또 뛰어 가까스로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안착한 후로도 한동안 비는 계속 내렸다. 얼마 후 빗줄기가 잦아들 무렵 나무 밑에 은신했던 두 사람이 돌아왔다. 그들도 비를 피하진 못했든지 모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들이 말하는 것은 비가 아니라 사고에 대한 것이었다. 중간에 따라나섰던 올리비에 씨가 그 와중에 넘어져 콧등에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갔다고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넘어져 일어서지 못해 달려가 보니 혼절한 상태에서 길 위로 흐르는 흙탕물에 입과 코를 박고 있었다는 것이다. 권오열 화백이 입가의 오물을 제거하고 기도를 확보한 후 유타카 타미씨가 흉부 압박을 가해 호흡을 재개하고 정신을 차리게 했다고 한다.


오후 병원에서 돌아온 올리비에는 숙소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우리는 저녁 시간에 서로 대면하였다. 그는 콧등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코 안 쪽으로도 내상이 있어 솜을 넣은 상태지만 큰일은 아니라고 했다. 그들 부부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참 다행이라고 했더니 마그리트가 “너의 기도가 약발을 받지 못한 것 같다.”라고 농담했다. 그래서 나도 그대로 되받아 “더 큰 일 없이 살아있으니, 나의 기도가 통한 것이다. 그러나 더 안전하게 한 번 더 제를 올리겠다.”라고 답을 했다. 뜻밖에도 올리비에 씨는 넘어져 혼절했던 게 아니라 달리던 중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이라고 했다. 아주 오래전 사다리 위에서 망치질하다 정신을 잃고 떨어져 어깨를 다친 일이 있었다며 스스로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 당시 아무도 그가 넘어지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다면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누군가 “이 작가님 기도가 혹 천도재 아니었나요?”라고 말해 모두 한바탕 웃었지만, 일이 이만하게 수습된 것도 모두 자연신의 보호가 있었던 것 아니겠는가!

이응우 작 ‘명상’ : 광활한 대지 앞에 한 인간은 보잘것 없는 존재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우주와 연결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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