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진로진학 코너 53. 너, 이름이 뭐니?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7.05 06:23 의견 2

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 교사)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꽃, 김춘수」’

80년대를 대표하는 우리나라 그룹 중 ‘들국화’가 있다. 그 그룹명은 이름지어짐(命名)을 통해 존재가 의미를 갖는다는 시, ‘꽃’을 고등학교 때 접하고 그 맥락에 가장 부합한 이름이라고 평소에 생각했다. 그들의 음악은 예쁘게 키워진 국화가 아니다. 말 그대로 거칠고 투박한 ‘들’국화다. 요즘 말로 하면 근본이 없다. 분명히 서양 록 음악에 토대를 두었지만 어디서 이런 음악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한국적이고 새로운 록이라며 당시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그 그룹의 이름처럼 꽃들의 이름을 떠올릴 때 존재론적으로 가장 자유로운 꽃은 아예 이름이 없는 들꽃일지 모른다.

우리 동네에는 호수공원이 있다. 이 이름은 모호하기 짝이 없다. 만일 호수가 곧 공원이라면 그 속에서 다양한 물놀이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호수가 있는 공원이라면 일단 호수는 그저 바라볼 대상이 되고 그 주변이 활동의 중심으로 바뀌어 공원이 더 중요한 곳이 된다. 아니면 호수가 한 개도 아니고 자잘하게 많아서 말 그대로 호수들의 공원일 수도 있다. 말이 대상을 완벽히 지시할 수 없기에 이름 지어짐이 중요하다는 걸 저 시를 배우며 알았다. 이 말을 하면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 대한 미셸 푸코의 평론집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한다. 물론 대학 때처럼 책을 펼쳐놓고 잠들 가능성이 높지만.

이름을 제대로 짓는 게 어려운 일임을 여러 단어에서 느낀다. 예를 들어 중국(中國)집은 우리나라에선 중국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닌 중식당(中食堂)으로 여겨진다. 이에 비하면 식당(食堂)은 음식을 먹는 집이라 명쾌하다. 학교(學校)는 배우는 곳에 붙인 이름인데 그 안에는 학교라는 뜻의 글(校)이 이미 들어있어서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새삼 느끼게 한다. 왜 아픈 사람이 가는 곳은 병국(病局)이 아니라 병원(病院)일까? 이름만 보면 약국(藥局)이 더 크게 느껴지는데 말이다. 병원이란 이름은 너무 직설적이어서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곳이라는 고귀함과 숭고함이 덜한 느낌이다. 모든 입시 관심사가 의대로 쏠리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망이 되는 일터의 이름으로는 적합지 않다. 요즘 같은 권세라면 김춘수 시인이 야속하게 느낄 이름 지음이다.

지나친 외래어 표기가 사대주의로까지 비난을 산 바 있는 우리네 영어 이름 짓기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가급적 우리말 이름으로 지어주자는 데 동의한다. 이를테면 볼펜(ball-point pen)을 ‘돌돌 붓’, 컴퓨터는 ‘셈틀’, 썸네일은 ‘마중 그림’, 치팅 데이는 ‘먹요일’ 등으로 바꿀 수 있겠다. 90년대에는 첨단 정보 산업 분야에 친근한 우리말 이름들이 많았다. ‘천리안’, ‘나우누리’, ‘ᄒᆞᆫ글’과 같은 상표들이 그랬고 우주 항공 분야에는 ‘우리별’부터 ‘누리호’, ‘다누리’에 이르기까지 좋은 이름들이 있다. 인문학 분야보다 과학 분야에 저런 이름들이 많이 보이는 점에서 대한민국 공학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런데 이건 지나치면 되레 우리말이 더 어렵고 번거로울 수 있다. 자연스러운 언어의 표현 방식을 억압해서 문제가 되는 일로 대표적인 게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 작성이다. 학기 말에 생기부를 작성할 때면 어김없이 드는 자괴감이 있다. 글자 하나, 문구 하나까지 고려해야 하는 지침들 때문이다. 최근 들어 영어 표기를 최대한 금지하라는 것도 그렇다. 그래서 ‘바리스타’를 국립국어원에 들어가 대체어인 ‘커피 전문가’까지 찾는 수고를 해야 한다. AI도 무조건 ‘인공 지능’으로 쓰라는 데는 할 말을 잃는다. 지금도 아이들 희망 직업에 도대체 카페 사장은, 인플루언서는 어떻게 적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대학들 이름에도 사연이 있다. 선교사 언더우드가 세운 연희전문학교와 역시 선교사이자 의사인 알렌이 세운 세브란스 의대(전 광혜원)가 합하여 만든 게 ‘연세’대학교가 된 건 유명한 예이고, 노원구에 있는 한국성서대학교는 말 그대로 Bible University이다. 인하대학교는 ‘인천의 하버드’가 아니라 1952년 하와이 교포 이주 50주년 기념 사업으로 세워진 학교(교포들의 성금으로)라 인천의 인(仁)과 하와이의 하(荷)에서 유래한 이름을 갖고 있고, 아주대학교는 나이 든 분들은 아실만 한 단어인 아세아주(亞洲)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가천대학교는 총장 이길여 여사의 호인 가천(嘉泉:아름다운 샘)에서 딴 이름이다.

1도 1국립대의 원칙에 따라 지방 국립대들은 각 도의 명칭으로 불리 운다. 충북대, 충남대, 전북대, 전남대, 그리고 강원대 등. 아이들에게 대학 설명을 하다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려면 가야 하는 대학으로 교육대학을 얘기하면서 다른 명칭에 궁금증이 생겼다. 교대는 충북교대, 전남교대가 아니라 각 도를 대표하는 도시 이름을 따서 청주교대, 공주교대, 전주교대, 광주, 대구, 부산교대 등으로 불리운다. 해방 이후 만들어진 국립대보다 훨씬 이전에 도시별로 있었던 사범학교의 영향으로 본다. 중등 교사보다는 초등 교사 양성이 국가적 과제로는 순서상 먼저였기 때문일 것이다. 걸어온 길의 다름이 이름의 차이로 나타난 경우다.

학교 공간에도 수시로 이름 지어짐이 진행된다. 나 같은 선생들은 어릴 때부터 줄곧 생활한 공간이 학교이다 보니 그 이름 변화를 경험한 역사가 길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의미로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었고 교무실도 교육지원실, 또는 연구실로 많이 대체되었다. 교육청이란 이름도 교육지원청으로 바뀐 지 오래다. 지시나 감독보다는 지원의 의미를 강화한다는 취지는 알겠는데 제일 좋은 지원은 쓸데없는 사업을 안 하는 거라는 걸 왜 모르는지 궁금하다.

업무가 지향하는 바를 표현한다는 취지에서 부서 이름들은 일대 변화를 겪었다. 우리 학교의 경우 교무부는 교무기획부로, 연구부는 혁신연구부, 학생부는 생활인권부와 학생자치부로, 그리고 과학부를 자연과학정보부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 그전에는 없던 교육과정부와 같은 부서가 생긴 지도 오래다. 딱딱하고 권위적인 느낌이 배어있는 이름들이 새로운 시대와 변화의 요구에 걸맞게 바뀌는 모습은 자연스럽고 참신하다. 그러나 바뀐 이름에서 추가된 업무의 흔적들이 느껴지는 게 나만의 불안은 아닐 것이고, 때론 이름만 그럴싸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모호하다면 오히려 개명 전보다도 나을 것이 없다. 이름은 붙여진 것이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름만 앞세우면 안 될 일이다.

해가 가면서 힘든 것 중의 하나는 아이들 이름 외우기이다. 학급 담임이 아닌 이상 학년 전체의 아이들 또는 전교의 아이들 이름을 꿰고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올해는 아이들 사진을 갈무리하여 상담한 학생은 수시로 확인한다. 중학생은 자라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1학년 때 사진으로 현재 얼굴을 판독하는 게 큰 난제다. 졸업생이 찾아오면 당혹스러움은 더욱 커진다. 센스 있는 아이는 “저 누구누구예요, 쌤~” 하며 아예 이름을 선포하고 등장해서 기억력이 흐릿해진 선생을 돕는다. 그러나 줄곧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름은 본(本)이 아닌 말(末)이라는 점이다. 아이들의 이름과 더불어 그 뒤에 감추어진 진면목을 끊임없이 살펴보고, 들어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오늘도 상담하면서 아이보다 몇 배는 더 떠든 나를 반성하며 드는 생각이다.

그룹 들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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