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황희의 수다, 간송의 후예들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5.08 06:33 | 최종 수정 2024.05.08 13:31 의견 0

박황희(고전연구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베개를 하고 누워도 즐거움이 또한 그 가운데에 있다. 의롭지 않으면서 부유하고 귀한 것은,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다.” 子曰:“飯疏食飲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자왈:“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의.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

논어 술이편에서 공자는 거칠고 조악한 음식을 먹고 맹물을 마시며, 팔베개를 하고 불편하게 살지라도 도의(道義)의 즐거움만 그 가운데 있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한다. 또한 인의에 입각하지 않은 불의한 짓을 해서 얻은 부귀공명 따위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정신적인 만족과 가치를 추구하는 안빈낙도 사상의 대표적인 표현이다.

젊은 날 낙심과 좌절의 시기에 나는 이 말에서 큰 위안을 얻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카알라일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개 같은 인간들에게 개 같은 대우를 받지 않기 위하여 돈을 번다.” 현대는 돈이 없으면 사람 노릇조차 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부모를 모시는 일도, 자식을 교육하는 일도, 친구와 교제하는 일도 최소한의 경제적 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삶의 존재 자체가 민폐가 되고 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안빈낙도는 매우 궁색한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대개의 유자들이 ‘청부’와 ‘청빈’을 강조하지만 ‘절세’와 ‘탈세’의 구분조차 모호한 복잡한 금융환경의 현실을 외면한 소리이다. 개인에게 있어서뿐만이 아니라 국가적 입장에서도 ‘청부’나 ‘청빈’만을 앞세운다면 국제 경쟁력이 하락하는 것은 물론이요, 대외신인도에도 부담을 주고 국가의 재정을 악화시켜 후진국으로 전락하는 것은 뻔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축재에 열을 내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안빈낙도를 자족의 수단으로 삼거나 인생의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청빈을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도덕이지만, 청빈을 남에게 요구하는 것은 죄악이 될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을 미화하면서까지 굳이 부자를 혐오할 이유는 없다. 빌게이츠는 말하기를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당신의 실수가 아니지만, 죽을 때까지 가난한 건 당신의 실수이다.”라고 하였다. 가난은 구제와 극복의 대상이지,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는 없지만 불행을 막는 도구가 되기에는 매우 유효한 방패막이이다.

저마다 돈을 버는 이유와 방법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돈의 가치는 쓰는 데 있다. 쌓아두고 붙잡고만 있을 거라면 굳이 돈을 벌어야 할 까닭이 없다. ‘부’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재산을 소유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부’는 자신이 얼마나 ‘소유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썼는가’에 있다. ‘돌고 돌아서 돈’이라고 한만큼 돈에는 영원한 주인이 없다. 잠시 내가 소유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영원히 내 것이라 주장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오직 자신이 쓴 것만큼만 내 것일 뿐이다.

어느 페친의 담벼락에서 읽은 글이다. “정주영 회장이 저승에서 이건희 회장을 만났다. ‘자네도 왔는가? 혹시 돈 가진 거 있으면 5천 원만 빌려주게’ ‘선배님 죄송합니다. 돈이 한 푼도 없는데요.’ ‘허허허 자네도 빈손으로 왔구먼’”

돈의 효능은 잘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쓰는 데 그 의미가 더욱 크다. 돈을 잘 쓴 대표적 인물로는 간송 전형필 선생을 들 수 있겠다. 자신이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으로 그는 식민지 시절 한국의 문화재를 지켜내었다. 수식과 설명이 필요 없는 위대한 선각자이다. 나의 지인 중에도 간송을 닮은 인사들이 여럿 있다. 해마다 도서구입비 만으로 억대 이상을 지출하는 나의 친구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의 수장고에는 국립중앙도서관에도 완본이 없는 영락대전 전질이 있는가 하면 멀리 포르투갈이나 스페인까지 가서 구입해 온 진귀한 문화재급 고서적들이 즐비하다.

뿐만이 아니라 수십억의 자비를 들여 지성과 문화를 공유하는 지식인의 품격 있는 놀이터 ‘PUM’을 개설하기도 하였다. 이번에는 또 자신의 회사 건물 3층에 아재들의 문화 휴게소, 열린 공간 사랑방인 ‘SPACE-ONE’을 오픈하였다. 당연히 나는 일 순위로 종신회원에 등록하였다. 앞으로 이곳 아지트에서 좀 별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자신이 번 돈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멋지게 돈을 쓸 줄 아는 친구가 참으로 존경스럽다.

한 번뿐인 인생 이렇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살 수도 있었는데, 후세에게 아무런 물려줄 것조차 없이 그저 ‘곡굉이침지(曲肱而枕之)’ 하며, ‘어아여부운(於我如浮雲)’이요 하였던 내가 너무나 부끄럽기만 하다. 우리의 자식 세대만큼은 나처럼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변화를 두려워하며 생명력 없는 늙은이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아침이 활기차고 역동적인 나라에서 날마다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청춘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세속의 오물이 두려워서 은둔하여 안빈낙도하며 살기보다는 개 같이 벌지라도 정승처럼 쓸 줄 아는 영향력 있는 인생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운명이란 닭장 속에 떨어진 매의 알과 같은 것이다. 스스로 닭장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평범하고 무료한 삶을 선택할 수도 있고, 매의 본능을 깨우치고 힘찬 날갯짓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다.”[命運就像落在雞窩裏的鷹蛋. 自己適應雞舍的環境, 可以選擇平凡無聊地生活, 喚醒鷹地本能, 揮動着有力的翅膀也, 可以過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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