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진로진학 코너 40. 중하위권의 쇄빙선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4.05 07:00 의견 2

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 교사)

어느 날 아들의 성적표를 보았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되니 드디어 국어 몇 점, 수학 몇 점하는 점수와 성취도가 찍힌 성적표를 받게 된 것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잘 쓰고 깜찍한 발언을 많이 했던 아이, 장난감 놀이를 할 때나 컴퓨터 게임을 할 때도 영특해 보이던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1학년을 지나 지금까지 흔한 사교육은 피하지 않고 시켰다. 행여나 부모 지원이 없어 공부를 못했다는 말은 들을 수 없어서였다. 그리고 오늘 성적표를 부푼 가슴으로 받아 본다. 그러나 시험 본 과목이 죄다 D, E, D, E 일색이다. 성취도가 그러하니 원점수는 60점, 50점대가 즐비하다.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1년 도합 7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유치원 기간까지 합해 품었던 아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주저앉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오늘은 수많은 일상 중 아주 특별한 날, 우리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아이임을 알아버린 날이다.

위와 같은 상황에 직면했다고 가정하자. 아마도 아이의 학업 성취를 지표화된 성적표로 처음 받아보는 부모님 중에는 깜짝 놀라며 기특함을 느끼는 경우보다 위와 같은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현실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보다 못하는 아이가 훨씬 많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상대평가 체제인 고등학교에 가면 잘해도 소용없다. 다른 애들보다 잘해야 한다. 그러는 가운데 아이가 속칭 상위 몇 %에 들어가느냐는 지표로 뒤이어 이어질 수많은 희망과 좌절, 인정과 무시의 편견 속 굴레에 빠져든다. 중학교에서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고등학교에서도 더욱 공부를 놓아버릴 가능성이 크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미 학교 붕괴라는 말을 접었다. 처음엔 충격적이던 모습도 자주 보게 되면 익숙해지고, 그걸 표현하는 말도 하나 마나 한 소리가 되어 버린다.

세상은 공부 잘하는 아이 편이다. 흔한 입시 설명회를 가보자. 진학 유튜브나 기사들을 보자. 어떻게든 좋은 학교에 가고자 하는 욕망으로 충만하다. 중심에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그들의 성적이 있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로 이어지는 대학 선호 안에서 좀 더 좋은 학생을 뽑기 위한 대학들의 눈치 보기는 모집 요강들의 차이를 만들고, 그 안에서 묘한 불균형과 혼돈이 생겨나면 속칭 입시 전문가들은 그 틈새를 파고들어 조금이라도 유리한 전략을 비장의 카드라며 제시한다. 나만 해도 그 유혹을 피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학부모님께 관련이 없을, 인근 학교 서울대 합격 인원을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매번 알려드렸는지 모르겠다. 우리 교육의 부조리함을 연일 성토하지만 나 역시 시스템 속에 순응하는 부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고민해 본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진학 지도는 없는가? 이른바 중하위권을 위한 입시 설명회는 없는가? 학교에서 무기력하게 잠자는 아이들에게, 상위 몇 %에 들지 못하여 희망이라는 단어가 사치인 아이들에게, 무얼 해도 안 될 거라는 좌절에 빠진 아이들에게 그래도 할 수 있다는 응원의 근거는 없을까? 이제야 살펴보는 내 관심이 부끄럽지만 늦었더라도 찾아내고 싶었다. 그랬더니 이런 궁금증에 이미 여러 해답을 제안한 선생님들이 있었다. 그분들의 채널을 구독하고, 영상을 두루 본 다음 나 또한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 제시된 학교들과 학과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중하위권 학생들의 경쟁력은 모두가 주목하는 그곳을 향하지 않을 때, 그런 용기와 각오가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걸 알았다. 역발상과 희소 분야 접근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었다.

선생님들이 제안한 학교 중 몇 곳을 소개한다. 취업과 보수 등에서 만족도가 높은 학과와 학교들이다.

만일 아이가 지도에 관심이 있고 그래서 지리를 좋아한다면 훗날 한국국토정보공사나 LH공사와 같은 공기업과 국토교통부, 전국 지자체의 지적직, 토목직 등의 공무원, 한국감정원, 부동산 감정평가법인, GIS 업체, 항공사진측량업체, 지적측량업체 등의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학과가 있다. 서울에는 이 학과가 설치된 대학이 없고, 전국 4년제로는 청주대, 목포대, 경일대, 대구대 정도의 대학만 있어서 졸업 후 진로의 경쟁률이 낮은 큰 장점이 있는 학과, 바로 지적학과이다. 대표적인 청주대의 경우 대입 정보 포털 ‘어디가’에 공시된 2025년 학생부 교과(일반전형) 70% 환산 등급은 3.94였다.

선생님이 되고 싶고 바다가 좋다면 부경대학교 수해양산업교육과가 있다. 졸업과 동시에 중등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전국 10개의 수산계 고등학교와 2개의 해사 고등학교 교사로 임용된다. 학과는 기관, 냉동, 식품 가공, 수산·해양, 항해가 있다. 재학 중 3급 어선항해사, 3급 기관사를 취득하여 항해사 및 기관사, 해양수산부 공무원, 해양경찰 등의 분야로 진출할 수도 있다. 역시 국내 유일의 학과이고 제한된 인원 내에서의 경쟁이라는 장점이 있다. 2025년 학생부종합전형의 70% 환산등급은 4.19였다.

꽃을 좋아한다, 스마트팜 농장을 경영하는 부농이 되고 싶다, 농수산물로 새로운 스타트업을 하고 싶다면 국립한국농수산대학이 있다. 농업 경영인 양성이 목표인 학교로 학비가 무료인데 졸업 후 6년간 영농에 종사해야 한다. 2017년 기준, 졸업생 중 85.9%가 영농에 종사하고 있고, 가구당 소득이 연평균 8,910만 원에 달하는 등 다수의 졸업생이 고수익을 내고 있다. 수산양식학과의 경우 연 소득은 평균 10,242만 원이다(농촌여성신문, 2018). 2024학년도 입시 결과는 도시인재전형에서 가장 높은 원예환경시스템전공이 평균 4.12 등급이었다.

물류 유통의 한 부분인 거대 냉동 창고를 관리할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냉동공조학과가 있다. 4년제 대학에는 한국해양대, 부경대, 전남대, 동명대의 4개밖엔 없어서 역시 희소 학과이다. 국내 냉동·냉장과 공조 분야 기업체 및 공기업 취업에 유리하다. 향후 각종 산업에서 냉동과 공조 분야의 활용도가 높아지는 만큼 이 학과의 수요도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동명대의 경우 2024학년도 학생부 교과 전형 70% 환산 등급은 4.75였다.

도시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수많은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 등의 리프트 장치를 볼 수 있다. 당장 내가 사는 신도시 아파트의 경우 왕성한 승강기 교체 공사가 진행 중이고 어느 건물을 가도 승강기가 없는 현실은 상상할 수 없으며 다른 교통수단으로 이동할 때도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는 무조건 거쳐야 할 장치이다. 이 승강기를 설치, 유지·보수 및 관리하기 위한 세계 유일의 대학이 바로 한국승강기대학교이다. 실무 중심으로 2년 동안 알찬 수업을 진행하며 졸업 후에는 이 대학 출신자들이 취득하는 자격증으로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한다. 세계적인 엘리베이터 기업체와 한국승강기안전공단 등의 공공기관에 취업한다. 경남 거창에 있으며 전문대의 특성상 홈페이지에 공개한 합격자 환산 점수는 일반고의 경우 최저 43.5, 평균 72.7점이었는데 학교 담당자에게 확인 결과 4~6등급의 학생들이 입학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점수가 인서울 대학을 갈 정도는 되지만 보다 확실한 취업을 원하는 경우(주로 문과 학생들이 해당됨) 특화된 농협대학이 있고, 철도 기관사를 꿈꾼다면 한국교통대학이 있다. 이 경우는 2~3등급의 학생들에 해당한다. 3~4등급 대 학생들 가운데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은 덕후라면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도 추천할 수 있다. 졸업 후 박물관 학예사 등의 전망이 좋은 학교이다.

희소 학과로 특수한 대학들은 지방에 설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점은 많은 학생들이 꺼리는 큰 이유다. 또한 각종 대학 정보 어플과 사이트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본 결과, 선배들과의 관계에서 ‘똥군기’ 등을 묻고 걱정하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일 특별하고 희소하다는 이유로 폐쇄적인 문화가 있다면 충분히 경계할 만한 사항이다.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여러 가지를 고민하는 아이들의 질문이 보였다. 내 마음도 거기에 있었다.

저렇게 취업이 확실한 학교를 가려면 일정 정도 그 지역에서 정착할 수도 있다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지방에 사는 학생들도 서울로, 경기도로 지향하는 요즘 분위기에 그것은 큰 용기일 수 있다. 한국농수산대학교의 경우 몇 년 전에 화훼 농가에서 실습받던 학생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경우가 있었다. 특성화고 실습생들의 사고와 유사한 뉴스는 지원하는 학생들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학생들 자신의 편견도 극복해야 할 사항이다. 낮은 내신 등급과 성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모여있다는 자괴감에 긍정적인 요소보다는 부정적인 요소들에 민감할 수 있다. 인터넷에 제공된 정보보다는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국승강기대학교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진로 취·창업 지원센터장님이 친절하게 응대해 주셨다.

현실은 인기가 예전만 같지 않아서 자신들도 학생 모집에 더욱 정성을 쏟고 있다는 얘길 전한다. 고등학교 졸업자가 절반 정도만 들어오고 나머지는 다른 학교를 다니다가 들어오는 유턴 입학, 다른 직종에 근무하다가 입학하는 재입학의 경우가 많다고 한다. 코로나19 이후에 이상하게도 실제 현장에서 기계 등을 다루는 업무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해지는 느낌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힘들어 보이는 일, 소위 ‘기름밥’ 먹을 것 같은 일은 아이들이 더욱 피한다는 얘기다.

급여의 경우도 유지·보수 및 관리의 경우보다는 설치 분야가 월등히 높지만 학생들은 공사 현장의 어려움에 큰 부담을 갖고 기피한다고 한다. 실제로는 한 5년 정도의 실무 경력을 쌓으면 요령이 붙고 어느 정도 위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자신의 업체를 차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나 아무리 좋아도 당장의 편함을 추구하기에 아이들에게는 외면받는 분야이다.

대학에 직접 물어보면 언제나 정보의 편향이 있을 수 있다. 자기 학교가 나쁘다고 말하는 담당자가 어디 있을까. 그래서 지도를 보고 가까운 거창군에 있는 고등학교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좋은 대학교라면 당장 주변에서 학생들을 보내려 할 것이고, 이를 통해 좀 더 정확하게 학교의 평판을 확인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전화를 받은 고등학교 선생님 왈 “그건 대학교에 직접 묻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니, 그게 아니고 이미 대학교엔 전화해 보았고, 제가 연락드린 연유는 이러저러합니다. 라고 극도로 몸을 낮춰 물으니 고3 담임 선생님을 연결해 주었다.

인근의 두 고등학교 3학년부 담임 선생님 말씀으로는 거창군 역시 농어촌 특별전형 등의 혜택으로 지역 내 좋은 대학을 지망하려는 아이들이 많고 대도시로 진출하려는 아이들이 많아서 승강기대학은 거의 지원을 안 한다고 했다. 다소 김빠지는 답변이었다. 그 3학년 담임 선생님들과 공감한 건 요즘 아이들이 추구하는 안온한 삶이었다. 여력만 된다면 가능한 한 힘든 일은 피하고 싶다는 것.

그러나 수많은 인서울 대학생들이 안정적이고 괜찮은 취업처를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현실은 그런 아이들의 욕구를 모두 만족시켜 줄 수 없는 취업 시장의 분명한 한계를 확인해 준다. 일전에 해외로 이민 간 젊은이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캐나다에서 용접공으로 자리를 잡은 청년 얘기인데 한국에서 장인·장모님을 초대하여 식사하는 자리에서 장모님의 얘기가 나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딸과 사위가 이곳에 와서 이렇게 정착하니 참 좋다고, 한국에서는 청년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좋은 대학 나온 애들도 취업하기가 너무 힘드니 어떡하냐고 한탄을 하셨다.

그러나 캐나다로 이민 간 그 청년이 용접공으로 일하는 건 그 나라에서 기피하는 육체·기술 노동이다. 물론 기술직 우대로 많은 보수(영상에서는 연봉 7천만 원 정도로 기억한다.)를 받지만 언어와 문화적 고충, 그리고 힘든 용접 일을 고려한다면 과연 국내에서는 그 정도 도전이 불가능했을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같은 일일지라도 캐나다에선 괜찮고 우리나라에선 힘들어서 싫은 이유는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멀리 거창군의 두 고등학교에까지 전화를 건 나는 서울로, 경기도로, 화이트칼라로, 관리직으로, 그리고 무시당하지 않고, 대접받으며 존중받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다소 강박적인 쏠림이 안타까웠다. 지방에서 살아도 안정적이며 워라벨이 지켜지는 괜찮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고, 약간의 육체적 노동이 가미된 기술 전문직이어도 장기근속이 가능하고 적정한 급여를 주는 직장에 취업이 쉽다면, 그런 일들을 배울 수 있는 대학과 학과가 주목받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음을 또 한 번 실감했다.

대학 입학으로 모든 걸 결판내지 않는 사회로 바뀌길. 고등학교 때 성적이 좀 안 좋아도 대학에 가서 각성한 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사회로 바뀌길. 평균 수명도 늘어 기왕 오래 살 수 있게 된 마당에 삶의 결정적 위치 선정을 조금 더 유예할 수 있는 사회적 여유가 꼭 만들어지길 바란다. 이미 중학교 졸업 전에 수능 영어를 모두 끝내야 한다고 몸달아 있는 제자들을 보며 드는 간절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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