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진로진학 코너 36. 거기에 없었다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3.08 07:22 | 최종 수정 2024.03.08 07:23 의견 1

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를 깨우려고 어깨를 흔들었더니 경찰에 신고해서 가해자로 몰린 선생님의 얘기를 들었다. 아이는 쌍욕을 하며 아동 학대라고 난리를 부렸고, 학부모는 이에 동조했다. 선생님은 그냥 어깨를 조금 건들며 잠을 깨웠을 뿐이라 했지만, 경찰서와 교육청에 불려 다니며 소명하다가 큰 실의에 빠져 이듬해 휴직계를 내셨다. 이상은 실제 벌어졌던 사연들을 묶은 ‘교총 현장 접수 교권 침해 사례 모음집(2023)’의 내용을 조합해서 만든 가상의 사건이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감히 실제 사례를 예시로 들 수 있겠나! 해서 불편한 마음으로 사례집을 보았다. 그리고 이내 휴지통으로 삭제했다. 차마 더 볼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학하고 여러 선생님을 만나니 유사한 사례를 많이 듣곤 한다. 휴지통으로 들어갔어도 사례집은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거기에 없었다. 그래서 안도한다. 그러나 그 장소에서, 그 학생과 학부모에게 크나큰 시련을 겪은 선생님과 그의 동료들은 그저 운명의 장난이려니 하며 찢긴 마음을 달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교권 침해의 사례는 날로 심해지고 선생님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언론에 오르내려도 세상은 그때뿐이다. 학교에서는 늘 긴장의 연속이다.

학년 부장과 담임을 하며 학생들의 자잘한 잘못을 지도하는 생활 지도의 한 복판에 있었다. 그때는 거기에 있었지만 큰 분쟁에 휘말리지 않은 건 단순히 운이 좋아서였다. 하지만 아무리 아이들을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상식의 수준에서 지도가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늘 안타까움과 인간적인 분노, 그리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교사를 오래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만만치 않은 날들이었다.

진로전담교사(또는 진로 교사)는 업무 강도에 있어 상대적으로 다른 선생님들보다 편하다는 인식이 크다. 내가 속한 업무 영역에서 이런 주위 평을 고백하긴 쉽지 않다. 그러나 교과를 바꾸고 진로전담교사의 길로 도전하겠다는 선생님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런 분위기는 다른 선생님들에게 달콤한 유혹 이상의 피난처로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근 대학원에 확인한 바 입학만 약 3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고, 내가 나온 대학원도 계속 경쟁률이 상승하고 있으며(5년 전부터 진로상담전공 대학원을 졸업해야 진로 교사 선발 응시에 자격이 주어진다.) 경기도 교육청의 경우도 재작년에 약 1.6대 1인 진로 교사 선발 경쟁률이 작년에는 약 3대 1로 상승했다는 소식에 많은 선생님들이 원하는 길임을 알 수 있다. 요즘은 교장 및 교감 선생님 등 관리자로 승진하고자 하는 선생님들이 많이 줄어서 승진 가산점의 필수 과정인 교육 대학원의 인기가 없어진 지 오래이고, 그런 교육 대학원을 그나마 유지해 주는 학과가 진로전문상담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마저 만연하고 있다.

학교에서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 다만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이건 여느 직장이나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쉽게 보이면 일이 몰리고, 너무 유능해도 불리하다. 성과급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심신의 고통과 견줄 수 없기에 힘든 일은 기피하는 현상이 학교에도 존재한다. 진로전담교사도 마찬가지다. 어떤 선생님은 전과하기 전보다 훨씬 많은 상담과 사업을 하며 분주한 분도 있고, 어떤 선생님은 딱 정해진 거기까지의 일만으로 만족하는 분도 있다. 후자의 선생님에게는 많은 선생님의 부러움과 시샘이 따라다닐 것이다.

새 학기를 시작하면서 올 한해 수행할 업무들을 떠올리고 부서 연간계획서를 작성하고 있다. 진로전담교사의 업무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학생 진로·진학 상담이다. 사실 이게 주 업무인데 현장에서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진로와 꿈을 찾는 과정은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의대 정원 확대 이슈처럼 극도의 세속적 쏠림으로 잘 주목받지 못하고, 진학지도의 경우 실제 원서접수를 책임지는 3학년부가 있기 때문에 진로 교사는 어쩔 수 없는 쉐도우 스트라이커 처지이다. 게다가 막강한 사교육 시장과 경쟁하는 상황에서 제한된 정보력과 여건으로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 업무가 진로 교사의 본령이라면 어렵더라도 꿈을 얘기하고 거대한 정보의 틈바구니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기대로 임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상담하는 본인도 편할 수 있고, 내담자도 만족할 수 있다.

그다음은 다른 교과와 마찬가지인 정규 수업이다. 진로 교사는 주당 10시간의 수업시수를 제도적으로 보장받는다(경기도 중등 진로전담교사 배치 및 운영지침). 이 수업은 통상 성적 산출 등의 평가 과정으로부터 자유롭기에 시험 문제 출제 등의 부담이 없다. 이는 성적에 매몰되어 참된 진로 활동을 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조치라고 본다. 특히 중학교의 경우 실제 성적 압박에서 벗어난 아이들이 좀 더 즐겁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충실한 진로 수업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대로 성적에도 안 들어가는 과목에 아이들의 호기심과 수업 참여 동기를 끌어내려면 좋은 수업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더욱 요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게다가 평균 8시간 이상의 상담을 실시하고 이를 수업 시간으로 인정해서 다른 과목과의 평균 시수를 맞춰주는 제도 안에서 어떤 선생님은 상담을 많이 해서 그 시간을 다 합치면 보통 교과보다 훨씬 많은 주당 수업 시수를 실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 또한 일이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이다.

끝으로 진로심리검사, 진로정보제공 및 다양한 진로체험활동 등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업무이다. 크게 눈에 띄고 무언가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고백컨대 나의 경우도 전 학년의 진로체험 행사를 진행한다던가, 한 학년 전체 학생을 현장직업 체험처에 보내는 등의 업무를 진행할 때면 유난스러운 행사로 인해 존재감을 보여주었다는 착각에 빠져들 때가 있다. 학교에선 예로부터 ‘수업 참 잘하는군!’보다 ‘정말 일 잘해!’가 더 듣기 좋은 칭찬이었던 적이 있다. 그때의 향수일까, 아직도 업무 능력에 관한 인정은 스스로를 뿌듯하게 만드는 학교생활의 도파민이다.

올해는 우리 부서에 부원이 없다. 학생이 줄어들면서 교사 T·O도 줄어서 결국 Wee 클래스 전문 상담 선생님(심리·정서 상담을 주관함)을 제외하면 나 홀로 모든 진로상담부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많은 학교에서 비슷한 상황이 이미 진행 중이다. 업무분장표를 보니 중복되는 내용을 빼고도 해야 할 큰 사업이 10가지 이상이다. 아마도 작년보다는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다. 그렇지만 업무의 많고 적음이 선생님들의 진정한 고통은 아니다. 수많은 선생님이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상처를 받고 이런 상황을 이겨내거나 회피하면서 버텨내고 있다. 이건 실재하는 고통이다.

아직도 학교에는 문제 상황의 아이들과 빈번히 접촉하며 고생하시는 담임 선생님, 생활 인권부, 학년 부장 등의 선생님들이 있다. 갈수록 업무 분장 희망원에 빈칸으로 남는 경우가 잦은, 해당 부서의 업무를 올해도 누군가는 채워나가며 학사 일정을 꾸려간다. 학교 현장에서 이분들의 노고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존중받아 마땅한 분들이다. 작년은 선생님들의 아픔이 큰 메아리로 시민들에게 다가가 기억에 남는 해가 될 것이다. 올해는 그런 메아리가 좋은 반향을 일으켜, 어떤 업무부서라도 두려움과 긴장이 없는 학교가 만들어지는 새로운 해이길 빈다. 그래서 더 이상 기피 부서도, 선호 부서도 없이 평안함을 누리는 학교가 되길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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