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응우의 자연미술 이야기, 넓은 들과 문화와 예술이 있는 나라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3.05 07:28 | 최종 수정 2024.03.05 08:05 의견 5
올리비에의 집
동굴연구가이기도 한 올리비에는 프랑스 중부 샤토부(Chateauboux) 근교 마을에 선대 할아버지가 살던 농가를 매입하여 예술가 부인 마그리트와 함께 살고 있다.

오랜만에 다시 온 프랑스

6월의 마지막 날 12일간의 스코틀랜드 방문을 마치고 프랑스로 향했다. 하이랜드의 중심 인버네스에서 축구의 고장 맨체스터를 거쳐 오후 8시경 파리에 도착했다. 옆좌석의 “앤”이라고 하는 남아공의 인상 좋은 아주머니 덕에 비행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파리의 CDG(드골) 공항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매분 이륙과 착륙이 계속되는 아주 분주한 공항이었다. 그러나 분주한 공항의 상태에 비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간결하고 짧은 입국수속이었다. 입국장으로 나오자마자 올리비에 부부와 파리 제3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는 조카를 한꺼번에 만났다. 내심 걱정스러웠던 것에 비하면 참 다행스러웠다. 조카는 마침 방학이라서 사람도 사귀고 경험을 쌓을 목적으로 동행하기로 했다. 올리비에의 집으로 향한 차는 주차장을 빠져나와 센강을 지나 파리의 외곽을 향해 가지만 도로는 차로 가득하고 갈 길은 먼 상황이었다. 도로를 달리는 시간에 반비례해서 공항까지 마중 온 두 사람에게 마음속으로 계속 감사를 해야 했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의 한 가운데를 달리는 차 안에서 하늘 아래로 내려다 본 프랑스의 첫인상을 되새기며, 이 나라가 왜 전통적 농업국가인지 알 수 있었다. 2시간 넘게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뚫고 달렸다. 목적지를 반쯤 앞에 두고 오른쪽 차창에 해가 지고 나니 왼쪽 차창엔 보름달이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주유소를 낀 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올리비에 씨가 준비한 샌드위치로 저녁을 대신했다. 짭짤한 햄을 넣은 것보다 염소젖으로 만든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가 더 맛이 있었다. 아마도 멀리서 찾아오는 친구를 위한 배려가 입맛을 돋우지 않았을까?

네 시간여 달려온 끝에 이윽고 도착한 올리비에의 집은 프랑스의 중부 샤토부 근처의 농촌 마을에 있었다. 그의 증조할아버지가 살던 집인데 남에게 팔려는 것을 아비뇽에 있던 자기 집을 팔고 약 4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터는 주변의 경작지를 포함해 약 2헥타르 정도 된다고 했다. 이미 자정이 넘었지만 숙소 안내받고 미리 준비해 놓은 간단한 수프와 포도주 한 잔으로 2시가 지난 시간에 잠을 청했다.

푸른 행성의 블루스
올리비에와 마그릿 부부는 2012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초대작가였다. 그들은 금강의 생태공원에 커다란 음반을 설치하여 주목받았다. 음반 위 바늘침이 둥글게 돌아가는 밭고랑을 따라 지구의 다양한 소리를 듣고 있는 듯하다.

멀리서 온 또 다른 친구

이튿날 아침 새소리에 잠이 깨었다. 부부 예술가가 준비해 준 아침을 먹었다. 나의 조카도 어른들 틈에 끼어 같이 먹었다. 다행스럽게도 조카는 생각보다 의젓하고 나이의 차이가 큼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대화도 잘 통했다. 더구나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는 처지고 보니 어지간한 내공으로는 불가능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조카라고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같이해 본 기회가 전혀 없었다. 아주 어릴 때 빼곤 그저 명절에나 한번 보는 정도였던 것 같다. 부쩍 어른이 된 듯한 조카가 대견해 보였다.

친구들과의 만남
멀리 보르도에서 찾아온 프랑수아 다방(Francois Davin) 부부와 만나 인생과 예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올리비에 부부와도 오랜 교분이 있고 필자와는 특별히 20년 가깝게 교분이 있는 프랑수아 다방 부부가 멀리 스페인 국경으로부터 이곳으로 오는 날이다. 그는 나에게 오는 가을 애리조나의 피닉스에서 개최되는 국제조각 컨퍼런스에 토론자로 같이 참가할 것을 다짐받기 위해 오는 것이다. 프랑수아는 오래 전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자연미술가들의 국제적인 활동 조직(ANiN)을 결성할 때부터 인연을 맺은 작가로서 개인적 작업보다는 예술의 사회성과 예술인의 사회적 참여에 깊은 관심과 열정을 가진 분이다.

오전에 시장에서 배추와 오이를 사서 정성껏 김치를 담았다. 이것은 필자가 오래 전부터 하나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하며 해온 일이다. 정말 좋은 친구, 또는 좋은 자리가 있을 때 한국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것이다. 프랑수아는 프랑수아즈라고 하는 머리를 짧게 깎은 부인과 함께 저녁 나절에 돼서야 도착했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라 얘깃거리도 많고 해야 할 말도 많았는지 대화는 끝없이 이어져만 갔다. 34~5도가 넘는 초여름 더위를 피해 해그늘에 원탁을 놓고 차 한 잔으로 시작한 대화가 맥주를 지나 이윽고 포도주로 이어졌다.

밤이 이슥할 무렵 마그릿의 제안으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식사는 1층 중앙의 거실에서 코스로 진행되었다. 소고기를 넣은 채소 된장국으로 목을 축이고, 프랑수아 씨가 만들어온 돼지고기와 오리고기를 다진 마늘과 헤이즐너츠를 넣어 오븐에 익힌 요리, 다음으로 밥과 김치, 이어서 마그릿이 준비한 닭가슴살에 토마토 소스를 얹은 요리, 이어서 케이크와 아이스크림, 차로 마무리했다. 그야말로 사람과 동서의 음식이 만나는 그런 자리였다. 우리 말에 “밥상머리에서 정난다.”는 속담을 실감하는 만찬이었다. 무엇보다도 조카가 함께 있어서 좋았다.

개울의 수초 : 시내를 관통하는 냇물의 수초가 아름답다.
동네 장터
일요일마다 열리는 동네 장마당. 저렴한 가격의 생필품이 주로 거래되며 포도주와 치즈가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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