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년, 새로운 시작을 위한 응원, 그럼에도 선생이기를...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3.04 07:20 의견 0

[2024년 2월 8일 마지막 교단일기]나(대구 복현초등학교 퇴직 교사)


1988년 3월 올림픽 준비로 온 나라가 분주하던 때 성당국민학교 4학년 2반 담임교사로 선생이 되었다. 육아휴직으로 현장을 떠났던 3년을 빼고 33년을 선생으로만 살아왔다. ‘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취미도, 특기도, 기쁨도, 아픔도, 일도, 쉼도 선생밖에 없었다. ‘선생님, 저 꽃 이름이 뭐에요?’ 하면 ‘이름 없는 풀꽃이란다.’ 하게 될까봐 운동장의 나무와 풀꽃을 공부했고 하루에 한 번은 하늘이 있는 교실 밖 교실로 아이들을 안내했다. 어쩌다 푸른 초원이 펼쳐진 곳으로 여행을 가면 우리 반 아이들이 먼저 떠올랐다. 섬진강 넓은 모래밭을 보아도 아이들이 뛰어놀면 좋겠다고 여겼다.

나는 선생의 자리가 참 좋았다. 교장도, 교육감도, 교육부 장관도 아니면서 나는 늘 우리 학교의 교육을, 대구교육을, 대한민국의 교육을 고민하며 살았다. 4년간 근무하고 학교를 옮겨 다니기를 여러 번, 그 때 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우리 학교’가 아니라 ‘내 학교’였다.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수업이라는 모습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내가 수업 시간이 행복하지 않으면 내 삶의 질이 너무 낮아질 것 같아 괜찮은 선생이 되기를 선택했다.

이오덕선생님의 민주교육을 구현하려고 노력했고, 회복적 생활교육, 비폭력 대화, 학급긍정훈육법과 버츄교육을 익히고 비고츠키, 존듀이의 생각을 배우려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이 눈으로 수업보기’를 동료들과 함께 공부했고 ‘스승은 있다’의 우치다 타츠루를 깊게 만났다. 교사로서의 선물 같은 ‘배움의 공동체’를 만나 한 아이도 배움에 소외되지 않는 교실, 자발성과 동료성으로 함께 하는 교사 문화를 실천하였다.

학교 교육의 기획자인 연구부장과 교무부장을 8년이나 하면서 행복한 학교문화와 동료성의 힘과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존경하는 선배와 유능한 후배들을 동지로 만났다. 일상의 수업 영상을 찍고 함께 수업을 고민하던 시간들 덕분에 학급경영, 교실 수업 개선, 생활교육, 책쓰기 교육을 주제로 한 교사 연수에서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어느 장학사님이 별명처럼 불러준 ‘선생님들의 선생님’이 되면서 감사하게도 후배들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선배 교사로 살아 올 수 있게 되었다.

용기 있게 묻고 친절하게 대답하는 반 아이들과 ‘지금’을 살려고 노력했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지금은 없고 내일만 있는 것 같아 아쉬웠다. 먼 훗날 있을 내일을 준비하느라 유치원 아이들도 우울증에 걸리는 현실이 안타까워 우리 반 아이들과 오늘을 살려고 노력했다. 여덟 살의 삶이 의미 있고 행복하면 아홉 살의 삶도, 열 살의 삶도 의미있고 행복하리라 믿는다. 학(學)만 있고 습(習)이 부족한 교육 현장에서 날이면 날마다 줄넘기를 하고, 시를 쓰고 리코더를 불고, 이어달리기와 오래달리기를 했다. 그리고 8년 전 맨발걷기 교육을 만나 나의 생태교육은 더 빛나기 시작했다. 맨발로 만나는 비 내리는 운동장의 촉감과 겨울 낮, 온몸으로 느껴보는 겨울 햇살의 눈부심을 진심으로 아는 아이들을 보며 행복했다.

교육대학 1학년일 때 만난 이오덕 선생님의 ‘삶이 있는 글쓰기’는 36년 교사로서의 삶을 함께 했다. 우리 반이 되면 매일 글을 쓴다. 주제가 있는 한 편의 글을 쓰는 아이들을 위해 책을 만들기 시작했고 대구광역시 교육청의 학생저자(교원저자 포함) 출판 지원 프로그램의 최대 수혜자가 되어 20여 권의 학생책, 교사책을 출판하는 행운을 누렸다. 판매되는 책의 저자가 된 우리 반 아이들의 환한 미소는 나를 괜찮은 선생으로 살게 했다.

선생을 하면서 학부모와의 소통은 나의 큰 숙제였다. 학부모와의 소통 없이는 학교 교육의 한계가 있음을 느껴 학부모와 반 아이들을 위해 교단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20년이 훨씬 지난 교단일기 쓰는 습관은 나를 괜찮은 선생으로 지켜 주었다. 아이들이 돌아간 빈 교실에서 하루의 수업을 스케치하듯이 쓰는 교단일기는 학부모님께는 대한민국 공교육을 이해하고 신뢰하게 되는 기회가 되고 나에게는 교사로서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가 되었다. 힘든 입시 중심 교육에서 아이들과 학부모를 구하는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아 아이들과 만든 책이 인연이 되어 유퀴즈에 출연하게 되고 ebs 출판사의 제의로 선생으로서 세상을 향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 인생책 ‘1학년이 쓴 1학년 가이드북’을 발간하게 되었다. 이런 인연들로 최근 유치원과 초등학교 학부모 교육의 강사를 하면서 교사로서, 부모로서 나의 경험과 깨달음이 후배 부모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그 길을 가려고 한다.

이제 교단을 떠나 오래전 나의 제자였고, 지금은 학부모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 땅의 부모들에게 위로과 격려를 해 주고 싶다. 2024년 3월 4일 나는, 나의 마지막 제자들이 있는 대구복현초등학교에서 설렘과 두려움으로 입학식에 참가한 학부모들에게 특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 밖 교사로의 첫날, 내 마지막 일터에서 또 다른 나의 제자들을 위해 나의 마음을 전할 수 있어 기쁘다.

세상이 뭐라고 해도, 세상을 탓하고 있기에는 선생의 자리는 너무나 엄중한 자리여서 오늘도 고군분투 애쓰고 있는 대한민국의 평교사들을 위해 나의 마지막 교단 일기를 바친다. 그래도 살아남기를! 그럼에도 선생이기를!

글씨 유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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