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응우의 자연미술 이야기, 핀란드 2

산타클로스의 고장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2.13 06:12 | 최종 수정 2024.02.13 06:13 의견 4

여러 가지 이유와 함께 작업의 진행이 지연되며 상황이 막바지로 접어들자 작가인 나 자신보다 그들이 더 몸을 달아했다. 작품을 현장에 설치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모색하던 중 자기들끼리 무슨 말을 했는지 박장대소를 하길래 토마스Tuomas에게 물었더니 “오란키 프로젝트 14년 만에 오란키를 대표하는 가장 좋은 작품이 나왔는데 잘못해서 부서뜨리면 신문에 대서특필된다.”라며 어떻게든 세울 테니 걱정을 말아 달라고 했다. 아무튼 현장의 녹록지 않은 상황을 극복하고 작품의 완성을 보게 되어 무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올해부터는 소수 초대 형식으로 진행하여 참가 작가의 수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개막하던 날도 특별한 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였다. 이곳에서 가장 비싼 사슴고기(이곳에서는 레인디어라고 함)와 렘을 아침부터 그라운드 그릴로 익힌 것이 주 음식이었다. 고깃덩이에 칼집을 내어 마늘을 쑤셔 넣고 여러 가지 허브와 양파를 통째로 함께 넣은 후 땅속에서 익힌 고기는 담백하고 맛이 있었다. 다들 흥에 겨운지, 아니면 핀란드 사람들도 음주와 가무를 즐겨서 그런지, 행사를 주관한 사람들마저 초저녁부터 핀란드 보드카에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자연동행 캠프
가는 곳마다 금강에서 시작된 자연미술에 대한 소개와 체험을 계속했다.


핀란드식 사우나 체험

인간은 언제나 주어진 환경에 어울리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모양이다. 핀란드 사람들의 사우나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온종일 숲에서 작업을 하고 나면 땀과 먼지, 모기에 물린 괴로움 등으로 만사가 귀찮게 된다. 이때 딱 어울리는 것이 바로 사우나다. 그래서인지 오란키의 숲에 머무는 동안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우나를 즐겼던 것 같다.

어느 날이든 눈치껏 사람이 몰리지 않을 때 들어가서 불을 지피면 20분 이내에 해결된다. 어느 날 혼자서 사우나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있어 귀를 기울여보니 한 여성 작가가 마침 사우나를 마치고 나간 독일 작가 토마스 메이에게 “안에 누가 있소?”라고 묻고 있었다. 이어 토마스가 “한국서 온 ‘리’가 있다.”라고 말하자 그 여자가 “내가 들어가도 괜찮겠지?”라고 재차 묻자 토마스가 “물론이지, 아무 문제 없지!”라고 답변하는 소리가 들리며 바로 문이 열리더니 그녀가 알몸으로 사우나실로 들어섰다. 얼떨결에 자리를 내어주긴 했으나 시선은 어디에다 두고 또 몸은 어떻게 추슬러야 하는 것인지 대책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 촌스럽게 굴 수도 없고... 속으로는 무척이나 당황했으나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척 물 한 바가지를 달구어진 돌에 들어부었다. 후끈 달아오른 수증기가 한 평 남짓한 사우나실을 순식간에 오리무중으로 만들었다. 잠시 후 그녀가 한 바가지를 더 부으며 말을 걸어왔다. 순간 그녀의 음성이 어찌 그리도 태연하고 자연스러운지 마치 일상적 공간에서 옆에 앉은 사람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자연스러운 수작을 보며 잠시나마 긴장하고 별의별 생각을 다 했던 나 자신이 오히려 부끄러워졌다. 잠시 후 긴장이 풀리고 대화가 오가며 그녀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은빛 모발의 단발머리, 그리고 차분한 분위기에 중년의 여성이었다. 언 듯 보기에 그저 잘 아는 누님처럼 보이는 분이었다. 물론 백인이라서 그렇겠지만 살결이 희고 피부가 거친 보통의 서양인과 다르게 잡티 없는 고운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얼떨결에 경험한 일이긴 하지만, 문화적 차이를 이해한다면 그리 몹쓸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 그녀는 나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그리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녀의 담담한 행동으로 미루어 아마도 동양사람은 얼마나 다를까? 하는 정도의 관심을 두고 있었겠지. 그리고 그 정도로 마무리해 두는 편이 내게도 편하다고 생각한다.

사우나를 마치고 나와 열기를 식히고 있으려니 토마스가 싱글벙글 다가와 “사우나 어땠냐?”라고 물어왔다. 왠지 어떤 의도가 강한 태도라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간단하게 “응, 아주 좋았어!”라고 짧게 답하자 “그것이 진짜 핀란드식 사우나야! 이제 어디 가서 ‘피니쉬 사우나’ 했다고 말할 수 있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순간 이 친구에게 엮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화나는 결과가 아니라 정말 소중한 경험을 위한 친구의 배려였다. 고마워, 토마스! 언제든 이 형님을 위해 좋은 일 많이 해주게!

밤의 오랑키 캠프
한여름이지만 야간에는 섭씨 20도를 밑도는 서늘한 날씨라서 작업을 마치고 나면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아 담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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