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선생의 중학교 진로진학 코너 32. 노골적인, 너무나 노골적인 지표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2.09 07:38 의견 7

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대학 시절 기억이다. 내 친구는 수원에 있는 공학 계열로 유명한 대학에 다녔는데 어느 날 총장님이 앞으로 실용적이지 못한 학과들은 축소한다며 특히 철학 등과 같은 인문 학과를 거론했다고 이게 말이 되냐는 성토를 했다. 친구는 철학과가 아니고 전자 공학과 학생이었다. 당시까지 살아있던 문·사·철에 관한 로망의 발로였지 싶다. 우리 때 남학생들은 수학이 부담스러워도 이과를 많이 지망했다. 졸업 후 전망 즉 취업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문과가 취업에 극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때 총장님의 결기 덕분일지 이미 이과 정원은 문과를 압도한다. 갈수록 문과생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세상이다(참고로 이미 고등학교는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이지만 상당수 대학은 계열을 구분하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가 발표한 ‘2003~2022년 계열별 대학 입학정원 변화’를 보자. 통상 인문과 사회계열을 문과, 자연과 공학, 그리고 의약 계열을 이과라 한다면 문과에 비에 이과 모집정원 비율은 2003년 5.6%, 2012년 10.14%, 그리고 2022년에는 무려 31.37% 더 많다. 예로부터 대입에서 이과가 유리한 측면이 이런 이유다. 하지만 이과생들은 어려운 수학, 과학 공부를 더 하기에 문과생들보다 대입이 어렵다는 하소연을 해왔다.

어려운 공부를 애써 하는 이유는 결국 졸업 후 먹거리 때문이리라. 일찍이 이과생들에게는 문과도 지원할 수 있도록 계열 경계가 많이 허물어져 있었는데 이젠 융합 교육과정을 강조하면서 그 추세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건 기존의 이과생들에게 주는 혜택 그 이상인 느낌이다. 오히려 문과생들도 이과 공부를 융합해야 경쟁력이 있다는 주장처럼 보여 그들에 대한 모종의 압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졸업만 하면 사회에서 쓸모가 없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고3 담임을 하던 15년 전 일이다. 우리 반 1등 여학생은 경영학과를 지망하고자 했다. 수시모집을 한창 준비하던 중에 아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바로 아이 아버지의 확고한 진로 조정 때문이었다. 금융 계열에 종사하고 있던 아버님은 당시 현장에서 유수의 대학 경영·경제 계열 학과를 졸업한 여사원들이 겪는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딸에게는 겪게 하기 싫다 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택한 게 초등학교 교사였다. 수시모집을 모두 교대에 쓰고 떨어지자, 당시 농어촌 전형을 살려 정시모집으로 진주 교대에 합격시켰다. 물론 담임이 아니라 아이 아버지의 노력 덕이었다.

합격해도 즐거워하지 않던 제자는 대학 생활 중에 전혀 다른 톤의 연락을 전했다. 시골 학교라 별 기대 없이 학교에 갔는데 재학생 가운데 서울과 수도권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심지어 좋은 대학을 나온 후 회사 생활을 하다 온 언니들도 많다며 그들과의 대학 생활이 너무 재밌고 활기차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무난히 임용 고시를 치른 후 지금 경기도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임용된 지도 어언 십여 년이니 최근에 학교생활은 어떤지 궁금하다.

아버님의 말씀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상장법인과 공공기관 노동자의 성별 임금 격차 조사’에 따르면 2022년 성별 임금 격차는 상장법인 30.7%, 공공기관은 25.2%였다. 그리고 중위 임금 3분의 2 미만인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은 여성이 남성의 2배가량이었다. 초등학교 교사 지망에는 근속 연수에 관한 고민이 컸다. 남녀의 차이가 계속 감소하는 추세지만 같은 자료를 통해 확인한 바 2022년 남성 평균 근속연수는 11.9년, 여성은 8.9년으로 25.1%의 격차가 났다. 아버님이 걱정했던 15년 전에는 더 심했으리라.

먹고 사는 문제로 따지면 진로와 진학 고민은 상당히 단순해진다. 산업 동향을 보고 현재 유망한 직업군을 중심으로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따져보면 될 일이다. 올해는 고용노동부에서 2015년에 발표한, 2014~2024년까지 대학 전공별 인력 수급 전망 예상의 끝자락이다. 대입 설명회 자료로 많이 썼던 당시 예상에 초과공급 상위는 경영·경제, 중등교육, 사회과학 부문이었고, 초과수요 상위는 기계·금속, 전기·전자, 건축, 화공 부문이었다.

서비스 분야와 의·약 등 보건 및 돌봄 분야의 인력 수급이 시급한 현 상황을 보충해야 할 자료지만 얼추 십여 년 전 예상대로 적절히 들어맞은 모습이다. 일명 전화기(전자, 화학, 기계) 관련 공학 분야와 앞서 말한 서비스, 의료 분야 들은 앞으로도 꾸준한 수요가 있을 것이다. 반면 문과는? 경영·경제 분야도 이과생들의 침투가 많아진 지 오래여서 더 이상 만만한 분야가 없다. 특별한 자기 진로의 소신과 열정이 없으면 취업만 보고 추천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유망직업 분야를 실제적이다 못해 노골적으로 알려주는 자료는 무엇일까? 통계청과 고용노동부 등의 기관 자료를 참고하는 것도 좋지만 아주 직관적이고 확실한 지표가 우리 사회에는 있다! 마치 구성원들의 모든 욕망을 최적화한 숫자로 표현한 그 자료는 바로 대입 정시모집 배치표이다. 심지어 대학의 위상이 고민되거나 대학별 학과의 위상이 궁금할 때도 판단할 근거로 쓸 수 있다. 이건 주장이 아니고 현상에 관한 적시이다. 나도 실제는 틀리길 바란다. 중학교에 오니 참고삼아 볼 뿐이다.

지금은 광역 교육청 단위로도 만든 배치표가 있으나 예전부터 활용된 사영 입시 기관들의 것을, 지인을 통해 입수해서 확인해 보았다. 2024 대입 정시모집 3개 입시 기관 배치표에 따르면 점수가 가장 높은 문과 상위 계열 또는 학과는 경영·경제 계열이다. 그 아래로는 사회과학 계열의 학과들이 포진해 있다. 정치외교학, 사회학, 심리학, 통계학, 행정학 등이다. 언론이나 광고, 미디어 관련 학과의 인기는 꾸준해서 개설된 대학은 경영·경제 계열 바로 아래에서 해당 학과를 찾을 수 있다. 이제 중간 정도로 가면 사범 계열이 나온다. 최근에 인기가 약해졌지만, 취업을 감안하면 문과에서는 아직 경쟁력이 있어 보인다. 끝으로 대부분의 학교에서 철학과 역사 등 인문계열이 가장 낮게 배치되어 있다. 그중 어문 계열은 웬만한 대학의 문과 커트라인을 형성한다.

그럼 이과에서 점수가 가장 높은 계열 또는 학과는 무엇일까? 예상대로 ‘의치한약수’ 즉, 의약 계열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 그 아래에는 최근에 인기가 있는 빅데이터, 소프트웨어 등 컴퓨터 관련 첨단 학과들이 있고, 그 아래에 전통의 강자 전자, 화학, 기계 등의 공학과들이 배치되어 있다. 반도체 관련학과, 미래 자동차 관련학과 등은 해당 분야에서 파생된 학과들이라 비슷한 위치이다. 자연과학 계열은 그다음에 주로 있는데 물리, 화학, 생명과학 등의 기초과학들이다. 단, 수학과의 경우는 개중에 가장 높은 위치에 있어서 최근에 산업 분야에서 활용도가 높은 상황임을 짐작하게 한다. 이과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학과들은 주로 예전에 토목공학으로 불렸던 사회기반시스템 관련 학과와 환경이나 생활 과학(식품영양학 등) 관련학과들이다. 아직은 환경 분야나 동물과 식물 등의 분야가 큰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학교에 따라 달라지는 학과의 위상이다. 수도권 소재 큰 대학들에서는 위와 같은 배치가 보편적이지만 지방의 거점 국립대로 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문과의 경우 다수의 국립대에서 경영·경제 계열보다 상위에 있는 건 사범 계열이다. 이과의 경우도 사범 계열이 의약학 계열 바로 다음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이는 수도권과는 다른 지방의 경제 상황이 반영되었기 때문으로 본다.

지방 사립대의 경우는 문과에 경영·경제보다 공채나 선발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실용적인 학과들이 높게 배치된 경우가 많다. 예컨대 경찰행정이나 행정학과 그리고 취업률이 높은 유아교육과 등이다. 이과의 경우는 공학 계열보다도 각종 보건 계열 학과가 높게 배치되어 있다. 전문 보건인 양성을 할 수 있는 간호, 물리치료, 임상병리, 작업치료 등의 학과가 개설만 되어있다면 높게 배치되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수도권과 지방을 비교하니 대한민국 정시 배치표는 진정 유망 직업 바로미터란걸 실감하게 된다.

유망한 직업에 관해 “10년 뒤 이런 직업 뜬다”란 한 일간지 내용을 소개한다. 푸드 닥터, 유전자 프로그래머, 무인 자동차 엔지니어, 에코 컨설턴트, 에너지 수확 전문가, 종 복원 전문가, 날씨 조절 관리자, 미래 화폐 전문가 등이다. 듣기만 해도 새로움이 넘쳐나는 직업들이지 않은가? 해당 기사에는 독일의 한 자동차 회사가 자동 운전 트럭을 고속도로에서 운행할 수 있도록 미국 네바다주로부터 허가를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운전자는 운행 중 다른 업무를 보다가 비상시에만 핸들을 잡는다며 이제 운전자가 아니라 ‘운송 매니저’로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다. 앞으로는 무인 자동차 엔지니어가 유망직업으로 꼽힌다고도 썼다. 이렇게 세상이 바뀔 것이라며 기사에 붙인 제목이 “우리 아이 의사 됐으면?…10년 뒤엔 최고 직업 아니랍니다”이다. 정말 10년 뒤엔 그럴까? 하고 궁금하던 차에 기사 작성일을 보고 실소가 나왔다. 그리고 미래의 세상과 직업에 관해 한 번 더 진지해졌다. 일간지에 기사가 입력된 날은 2015년 6월이었다. 바로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기사였던 것이다.

대학서열의 바로미터, 대학입시배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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