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응우의 자연미술 이야기, 멕시코 예술유목 2019, “삭베(Sacbe/White Road)”
중앙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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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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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예술유목(Global Nomadic Art Project/GNAP)은 2013년 10월 야투가 기획한 '세계 자연미술가 회의'를 통해 결성된 세계 유일의 자연미술 국제적 현장 방문 및 작업, 결과전시 프로젝트이다. 2014년 한국에서 시작해서 전 세계로 확산되었으며 올해는 11년 째 되는 해로, 프랑스(4월), 몽골(9월)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1. 마야의 땅에 열린 새로운 길
2019년 새해 벽두에 지구 반대편 자연과 문화가 매우 다른 멕시코 마야의 땅에서 예술유목이 시작되었다. 당시의 주제는 “삭베(Sacbe/White Road)”였다. 길은 왕래와 소통의 상징이다. 특히 마야문명의 중심인 유카탄 반도의 지반은 온통 석회암이 받치고 있어서 ‘하얀 길’이 탄생했으며, 그 대로를 중심으로 마야인의 생활과 문화가 발전해 갈 수 있었다. 따라서 마야의 땅에서 이루어지는 멕시코 예술유목은 그 주제가 말해주듯 현장의 자연조건과 지리적 특성은 물론 마야의 역사를 배경으로 새로운 세계로 나가고자 하는 그들의 염원이 담긴 것이다. 난생 처음 방문하는 나라지만 축구와 선인장, 테킬라 그리고 고추, 챙이 넓은 모자 등이 먼저 떠오르는 나라다.
고추는 멕시코가 원산인데 조선 후기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상륙했다. 그리고 폭발적으로 그 활용도가 높아져 한국의 대표적 음식인 “김치”를 탄생시켰다. 이렇듯 문화는 길을 통해 교류되는 것이며, 다른 기후와 풍토를 만나면 그 조건에 맞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리라. 과연 마야의 “하얀 길”은 우리에게 또 어떤 길을 열어줄 것인지 기대케 한다.
2. 현장의 체험을 미술로
예술유목을 시작한 것이 올해로 11년째가 된다. 그동안 한국을 비롯해 인도, 이란, 남아프리카, 동유럽, 서유럽, 터키,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개최되었다. 그리고 멕시코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첫 번째 나라이자 전 세계로 보면 12번째 나라가 된다.
올해는 4월 프랑스 중부지방, 9월 몽골의 고비사막에서 예술유목이 계속된다. 그 광범위한 지역의 곳곳을 방문하며 우리는 다양한 자연에 적응하며 그들이 어떻게 문화를 일구었는지, 그리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등을 살피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때론 혹독한 자연조건을 이기며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는 차라리 숙연해지기도 했다.
멕시코의 예술유목은 남서부 카리브해로 튀어나온 유카탄 반도의 플라야 델 카르멘(Playa del Carmen)의 정글 속에 있는 ‘삭베’라고 하는 공동체 마을에서 개최되었다. 석회암 지반 위에 열대의 나무들이 자라고 땅속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세노테(cenote)라는 지하 호수들이 있다. 이 특이한 지형에 조성된 마을 ‘삭베’는 오늘날 인류가 누리는 문명의 이기보다 주어진 자연의 조건과 질서에 따라 생활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숲을 지키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 억제와 태양열 전기를 활용하며 자연정화 시스템을 통해 생활 하수를 처리하는 등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 노력한다. 이렇게 특별한 곳에서 자연미술 유목이 이루어지는 것은 더욱 의미가 있었다.
마야사람들의 말로 ‘삭베’는 석회석을 깔아 만들어진 대로(大路)를 일컫는 말이다. 적어도 유럽 사람들이 이곳에 상륙하기 전까지 마야사람들은 하얀 대로를 오가며 평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일행은 여러 곳을 방문하여 마야의 자연과 역사와 문화를 접할 기회를 얻고 방문하는 곳으로부터 얻은 경험을 토대로 작업을 진행하였다. 어느 곳을 가든지 현장의 조건에 따라 직접 표현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은 ‘자연미술’이 갖는 최대의 장점이자 특화된 부분이기도 하다.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바칼라(Bacalar)의 라군(Lagoon)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호수의 경이로운 물빛과 사람에게 친숙한 물고기 떼와 명상과 요가를 즐기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마 낯설 것이다. 더욱이 호숫가에 펼쳐지는 신비로운 여명에 대한 어떤 상상력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떤 경우일지라도 현장의 체험 없는 자연미술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현장 체험의 기회를 늘리고 자연 속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예술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바로 예술유목의 요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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