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중부의 자존심이 살아있는 곳, 가장 반골적이고 독립적이라는 도시, 크지 않은 도시에 성당이 9개나 되는 곳, 광장이 또한 그렇게 많은 곳'
외지인에게 관심많은 소녀들이 말걸어 오다
까마궤이를 열렬히 사랑하는 마음들이 여기저기서 느껴집니다. 민영농산물 시장에 가려는데 걷기엔 조금 멀었지만 마침 가지고 있는 peso가 없어 골목을 많이 걸어갑니다. 가는 중 골목에서 초등 저학년 정도의 꼬마 4명이 말을 겁니다. 여기 쿠바에 와서 “지나?”나 “자뽄? ”라는 말이 제일 많이 듣는 말입니다. 중국인이냐, 아니면 일본인이냐 묻는 말인데, NO, corea de sur라고 말하면 대부분 알아듣고 좋은 도시 서울이라고 말합니다. 남한에서 왔다 하니 뭐라 하는데 잘 못 알아들어 귀 기울이니까 신나게 말하는데 한마디가 들렸어요. BTS! 아! 방탄소년단 BTS?라고 말하니 더 신났습니다. 아고 미안하다. 그러면서 정국, 또 뭐라 뭐라 방탄소년단 다른 사람 이름도 말합니다.
카르멘 광장의 한쪽에 작업실이 있는 유명한 도예가(MARTHA JIMENEZ)의 작품들
가게는 많은데 나와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주로 양파, 마늘. 쌀, 꿀. 오이. 토마토 등을 팔더군요. 토마토와 오이를 사는데 뒤에서 어떤 사람이 한국말을 해서 보니 장년의 남자가 인사를 합니다. 자기는 저기 쌀가게에서 일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지는 4년이 되었다고. 오!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다니. 대단한 분이네요. 아바나 호세마르티 문화원에서 한국말을 배웠는데 선생님이 한국인이었고 배우 김현성이랑 같이 공부했다고 하네요. 왜 한국어를 배우냐고 물으니 한국의 문화가 좋다고 한국말로 합니다. 참 많이 배우셨더군요. 발음도 좋고. 내가 스페인어를 혼자 배운 세월과 같다고 말하니 끄덕끄덕 웃습니다. 옆 동료가 그에게 한국엔 오라고 해서 내가 쿠바인이 한국에 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올 수 없다고 하니 그가 끄덕인다. 지금 쿠바의 많은 젊은이들은 탈쿠바를 원한다고 들었습니다.
과일 노점상
자신이 운영하는 페이스북 주소도 알려주고 이름도 알려주며 연락하라 합니다. 오는 길에 비씨탁시 낼만한 쿠바 페소가 없어 (여기는 또 더 시골이라 그런지 까마궤이라 그런지 달러를 잘 안 받네요. 다른 도시는 거의 다 받았는데. 또 걸어 돌아오는데 까마궤이에서 길 찾기가 어렵다고 책에 쓰여 있더니 과연 이리저리 맵스미를 보고 사람들에게 물어도 집 찾기가 어려워서 고생했습니다. 사람들이 우유 가게에 줄 서 있어 가게를 들여다보니 우유가 아니라 큰 드럼통 같은 데서 페트병에 따라주는 것이 요구르트였습니다. 배당을 받는지 수첩을 내밀고 받더군요. 우리는 처음 구매하는 줄 알고 물통을 비워 내미니 담아 주며 먹어보라 합니다 예전에 티베트 버섯이라는 종균으로 만들어 먹던 시큼한 요구르트 맛이 났고, 맛있다 하고 돈을 지불하려니 그냥 가랍니다. 아니라고 하며 지갑을 여니 거기 있는 사람들이 다 그냥 가라며 웃고 한 청년만 돈을 내라고 하니 사람들이 그냥 가라며 막 웃습니다. Muchas gracias! 를 외치며 돌아 나왔다.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지급하는 곳 같았어요. 여기 오니 더 인심들이 후합니다.
지쳐 집에 돌아와 Osleidis가 준 쌀로( 이 쌀도 선물이라며 그냥 가져가라는 걸 아니라며 돈을 던지고 나왔음) 밥을 지어 냠냠 맛있게 먹었다. 오이를 잘라 고추장에 먹는 게 최고. 오이가 입맛을 살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황열병이 모기 통해 전염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핀레이(1833-1915) 기념관에 갔다가 san juan de dios 박물관에 갔는데 원래는 쿠바 첫 성인으로 추대된 호세 욜라요 신부가 운영하던 병원이었습니다. 지금은 이 건물과 당시 사람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인데 막 문을 닫는 시간이어서 안된다고 하더군요. 안타까운 표정을 보이자 관리인이 “rapido(빨리)” 하며 보라고 하여 천천히(ㅎㅎ) 잘 보았습니다. 실내 정원에는 각종 약재로 쓰이는 허브식물들이 잘 자라고 있고 관리인이 하나씩 뜯어 냄새와 효능을 설명하여 잘 듣고 왔어요.
마지막 떠나는 날 아침에 솔레다드 교회와 자폐학교( escuela ‘ HEROES del MONCADA)”에 들렸습니다. 까마궤이에 하나밖에 없는 학교이고 일본과 자매결연이 되어있어 물품 지원도 하는 모양이고 , 내부로 들어가니 연령대 별로 공부하는 내용에 따라 아이들이 분리되어 공부하고 있어 나름 시설과 시스템이 잘 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 온 선생이라 하니 이 학교 선생님 한분이 데리고 다니면서 설명을 잘해주셨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시인, 시집 <몇 걸음의 고요>)
까마궤이 출신의 국민 시인 니콜라스 기옌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