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호의 임진강 노래 12】 노자를 읽으면서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1.17 07:19 | 최종 수정 2024.01.17 11:57 의견 1

세상은 점점 촘촘하게 엮여 가는데 사람들의 관계는 점점 느슨하고 각박해진다. 인의(仁義)와 같은 도덕적 규범에 의해서 운영되던 사회가 계약과 효율과 같은 산업화 논리에 의하여 사회가 조직되고 운영되면서 사람의 관계도 예의에서 이해관계(利害關係)로 점차 바뀌어 간다. 이에 따라 정리(情理)로 뭉친 집단은 점차 해체되고 사회는 이성적 판단에 기초한 차가운 개인의 연합체로 변형되어 가고 있다.

오랫동안 군인들이 나라를 지배하면서 쌓아온 힘에 의한 지배 즉 패도(覇道)가 우리의 심성을 형성하고 지배하여 왔다. 리바이던이 지배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기였다. 살기 위해서는 남을 밟고 일어서야 했으며 그것이 경쟁주의 사회에서 미덕이었다. 기본적으로 상호 투쟁의 시대에 개인적으로 인의를 따르려는 덕치주의적 정치나 교육은 설 자리가 없었다. 민본(民本)을 내세우던 성리학의 시대에도 그것은 경서에나 있는 말씀이지, 조선 양반사회는 노예나 농민과 같은 신분 사회의 제도 위에서 유지되었다. 형명(刑名)과 같은 법가와 한비자의 질서를 거부하고 인의에 기초한 바른 질서 즉 정명(正名)을 주장하는 유가들조차 신분 사회에 기초하여 하위 계급을 착취하며 살았다는 얘기다.

노자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다. 노자는 형명은 물론이고 정명조차 거부하고 무명(無名)을 주장했다. 그렇다고 무질서를 찬양한 것도 아니고. 인위적인 질서 자체가 없는 상태랄까, 이른바 그가 말하는 무위자연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말로 설명하고 이해하자면 어렵다. 강력한 법질서를 강조하던 군사정권 시대에 전통적인 논법으로 말하자면, 그나마 부드러운 유교적 덕치교육에 기초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려던 나도 아무리 아이들을 부드럽게 대한다고 하더라고 교사의 생각과 의도에 맞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참된 교육인가에 대한 회의감이 든 것이다.

이런 회의감이 들면서, 그리고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차츰 노자의 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의 본성에 관심을 가진다는 측면에서는 존 듀이의 진보주의 교육관과 비슷한 점도 있었다. 노자의 생각은 기왕의 사상을 전복하는 사상이었다. 노자는 아나키스트였다. 폭력을 지배의 수단으로 삼는 법가의 사상은 물론이고, 인의에 기초하여 도덕적 사회를 건설하고, 이 도덕적 사회를 통해서 춘추시대를 마감하고 천하를 통일하려는 유가 사상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것이었다.

교사가 선의를 가지고 학생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학생 본인의 깨우침과 자발성이 없는 상태에서 교사 중심으로 계획하고 강제적으로 밀어붙이고 끌어간다면 그게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교직의 전반기에는 열성, 또는 교사로서의 사명감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강제적으로 교육했다면, 후반의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이런 회의가 들면서 교사가 별다른 일을 하지 않더라고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고 공부하는 방법 즉 무위지위(無爲之爲), 무위지치(無爲之治)를 고민하면서 아이들이 따라올 때까지, 아니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아 나설 때까지 나 스스로 기다리는 훈련 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듯싶다.

개인이 혼자서 노자를 공부하기는 어렵다. 노자를 번역한 많은 책들이 한문을 단순하게 우리말로 번역한 수준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 많았다. 원문 뒤에 달아놓은 주석도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는 충분치 않은 것이었다. 주석이라는 것이 초심자에게는 열린 텍스트인 노자를 주석자의 세계에 가두는 부작용도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노자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무언가 답답함 속에서 대안을 찾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참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에서 물러난 나이 든 사람들이 많이 읽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질서 속에서 숨 막히는 사람들이 노자를 읽는다. 자녀나 친구 관계에서 파탄 났다고 절망감을 가진 사람들이나, 기후위기 속에서 새로운 생태적 질서를 찾는 사람들이 노자를 읽는다. 동네에서 아줌마들하고 노자를 읽으면서 나는 교육자로서 잘못 살아온 것을 반성하고, 아이를 제 마음대로 못해서 마음에 병이 난 아주머니는 스스로 놓는 법을 배움으로써 딸과의 관계를 개선해 가고 있다.

수업 시간에 하품이나 하고 앉아 있는 것은

제가 한심한 하품下品이오라고 말하는 거라고

한때 아이들을 다그치며 다잡은 적이 있었다

진리는 마치 맹목성의 교과서에 있고

질서가 행복을 괴고 있는 것처럼 믿었던

철없는 어린 선생이었을 때의 일이었다

하품 한 번 할 순간에 인생이 다 지나고

하품을 견디고 그때 나보다 훨씬 어른이 된

아이들을 만나서 속없이 떠들다가

먼 산이 성큼 마을에 내려와 앉은

눈 내린 아침의 느닷없는 각성처럼

술잔 아래 가라앉는 말들을 보며 알았다

엊저녁 밤샌 알바의 눈꺼풀 무게에도

하루종일 의자에 매여 있던 것이

학교를 참아준 것이었음을

책상에 엎드려 자지 않고

졸린 눈 비벼가며 앉아 있던 것이

그나마 후한 선생 대접이었음을

쓰잘데없는 것들 떠들던 내 가벼움에 비해

가르치는 일이란

얼마나 무겁고 겁나는 일이었는지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어찌해야 하는지

제대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을

-졸시, ‘하품’, <어머니는 이제 국수를 먹지 않는다>중에서

인천대공원, 이정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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