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호의 임진강 노래 11】 시간의 파고를 넘어서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1.10 08:14 | 최종 수정 2024.01.10 09:23 의견 0

사실 퇴직하면서 주변에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시간 관리에 대한 것이었다. 현직에 있을 때처럼 바쁜 시간을 잘게 쪼개서 관리하는 문제가 아니라, 일정 없이 한없이 남아도는 텅 빈 시간을 채워 넣을 수 있는 일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현직의 인간관계는 유효기간이 6개월 정도여서 그 안에는 만나자는 사람도 있고 만날 사람도 있고 이것저것 정리할 일도 있고 해서 그럭저럭 보낼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등산이나 당구 치고 소일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 먼저 퇴직한 이들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새로 시작한 일이 페북 질이었다. 출강하던 대학의 한 교수님이 퇴직하면 글쓰기와 글 읽기를 하며 시간 보내기 가장 좋은 곳이라며, 페북의 세계와 무림의 고수 몇 분을 소개해 주셨다. 아주 옆에 앉아 가입을 함께 하고 글을 쓰고 포스팅하는 방법과 다른 이의 글에 대해 반응하는 방법에 대해서까지 아주 소상하게 알려주셨다. 처음 접한 페이스북의 세계는 말 그대로 신비경이었다.

우선 규모의 방대성이었다. 이 페북 세계에 오만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실제 세계에서 일상적으로 만날 수 없는 각양 각종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각종 직장인, 상인, 농부, 작가, 목사, 신부, 승려, 교사, 정치인들이 넘쳐났다. 평소 같으면 말 한마디 붙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친구 신청을 하고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면 옆집 아저씨처럼 금방 “안녕하세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화를 나누는 수준도 참말로 다양했다. 무슨 이런 이야기를 이런 공개적인 곳에 올리나 싶은 신변잡기들도 있고, 억울한 일에 대한 하소연이나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한 비난과 분노 섞인 글들도 다수 있었다. 반면에 학술지에 실어야 할 전문분야의 전문적인 글들도 있었고, 문예지에 올릴 시나 소설도 매일 같이 올라왔다. 교제 범위도 전국적을 넘어 세계적이었다.

한편으로 페북이 마치 이산가족 상봉장 같기도 하였다. 무슨 인력시장처럼 ‘알 수도 있는 사람’을 죽 훑어보면 학교 졸업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한 친구들이나 하다못해 40여젼 전 군대 동기들의 얼굴까지 보였다. 이제 이마도 벗어지고 늙은 모습이지만 애써 친구의 얼굴을 확인하고 옛 기억을 되살려 친구 신청을 해서 인사를 하면 다시 옛날의 인연이 이어졌다. 좋았던 기억도, 부끄러운 과거의 경험도 함께 왔다.

친구 신청도 하고 친구 신청을 받기도 하면서 친구 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친구들은 내가 하는 일이나 취향에 따라 교사, 문인, 종교, 지역사회 네 개 그룹으로 대별되었다.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학교나 문단, 교회와 성당, 절, 우리 동네에서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들을 알게 되고 특정 이슈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를 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페북은 유명 인사들의 글 읽기는 물론이고 내 개인의 글쓰기 플랫폼이 되어 주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어느 문예지에 작품 하나 내기 어려운 나 같은 삼류 무명 문인에게는 글을 실을 수 있는 좋은 발판이 페북이었다. 출판(publishing)의 개념이 종이책의 개념에서 온라인이나 전자출판의 개념으로 진화하면서 sns상의 쓰기도 발표와 별 차이가 없게 되고, 더구나 작품에 대한 피드백도 즉각적으로 받을 수 있어서 글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유리한 점이 많았다.

이미 브런치(brunch)에서 글을 쓰면서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가지고 있었지만, 브런치(brunch)에 비해서 페북은 쌍방향적이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면에서 더 유리한 점이 있었다. 교육과 관련한 글은 가능하면 쓰지 않으려 했지만, 아무튼 페북에 매일매일 일기를 쓰듯 1일 1 포스팅의 원칙으로 원고지 20매 정도의 글을 썼다. 정치, 여행과 같은 일상에 대한 글도 쓰고 본격적으로 시도 쓰고 자주 작품을 소개했다, 훨씬 지나서의 일이지만 집 짓는 전과정을 페북에 썼고, 집을 짓고 임진강가에서 정착하게 되는 과정도 페북에 썼다. 최근 정권의 입맛에 따라 유형, 무형의 검열과 통제가 느껴지면서 페북이 변질되면서 많은 논객들이 떠나고 글판이 광고판으로 바뀌면서 페북질의 맛이 예전과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것이 일인 사람을 작가라고 한다면, 작가로서 페북에 글을 쓰면서 지루할 틈 없이 시간의 파고를 넘으며 보낼 수 있었다. 작가는 정년이 없다는 친구의 조언도 힘이 되었다.

평생 수고하셨으니 이제 여생을 즐기시지요

듣기 좋게 번지레한 말을 다시 생각해 보니

하던 대로 하루하루 사는 것이 인생이요

원래 누구나 처음부터 여생(餘生)이 인생이지

여생이라고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일을 물러났다고 남는 인생이 아니라

시간을 한 시간 하루 이틀로 나누지 않고

할 일을 이 일 저 일로 칸을 막지 않으며

하늘처럼 둥근 시간에 기대어 살뿐이다

서둘러 끝내야 할 일도 시간도 한정이 없으니

아침저녁 하루 해면 족하지 않은가

젊어 늘 정처 없는 안갯속을 떠다녔지만

안개강을 넘어와 이제 보이지 않는 건 없다

시간의 부유에도 짐짓 게으르지 않고

생활의 가난에도 차마 비굴하지 말며

오직 마알간 한가함 한 모금 끌어들여

하류의 강물소리에 온전히 귀 기울이며

물소리 따라가다 소리가 그치면 멈출 뿐

강물이든지 저 하늘 빈 마음 구름이든지

흘러 흘러가는 것들에게 종점(終點)은 없다

- 졸시 ‘여생은 없다’

해지는 인천대공원, 이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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