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길림성 용정시에 가면 윤동주 생가가 있다. 입구의 큰 돌에 새겨진 ‘중국조선족유명시인 윤동주생가’라는 글자를 읽고 무심코 몇 발짝 떼다 보면 무언가 목구멍에 걸리는 것이 있어 뒤돌아서게 된다. 아니 윤동주 시인이 조선족이라고? 윤동주 생전에는 조선이라고 불렸고, 임시정부에서는 대한민국이라고 불렀는데, 조선족이라니?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맞지 않고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조선족의 조상이니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겠다 싶지만 무언가 찝찝한 느낌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실 조선족이라는 말은 1952년, 중국 동북 3성에 남아 있게 된 우리 동포들에 대한 중국 당국의 소수 민족 정책의 이름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우리가 중국 동포를 조선족이라고 부르기에는 적합한 명칭은 아니다. 연변은 중국 동북부 지역 지린성(吉林省)의 자치주로 중국 내 조선족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다. 자치주 전체 인구의 대략 40%를 조선족이 차지하고 있다가 도시로, 한국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조선족 인구는 점차 현저하게 줄어드는 추세이다.
연변지역에 한국인이 집중적으로 늘어난 것은 일본의 만주국 건설에 따른 농업인구의 이주정책에서 비롯되었으나,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면서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유입된 것이 원인이 되기도 했다. 더 멀리는 1880년대부터 조선조 말 국정의 혼란과 경제적 피폐를 피해 국경을 넘어와 무주공산이었던 이곳 농토를 개척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 전체가 중국 동포에 대한 역사적 부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80만 명 이상의 연변 조선인들이 고국으로 귀환하였으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남아 있게 된 조선인들이 자치조직을 꾸렸으나, 1952년 '연변조선족자치구'가 설립되었으며, 그후 '연변조선족자치주'로 격하되었다. 현재 연변조선족자치주는 대략 170만 정도의 조선족 인구가 있고, 옌지(延吉, 연길)·투먼(图门, 도문)·둔화(敦化, 돈화)·룽징(龙井, 용정)·훈춘(珲春, 훈춘)·허룽(和龙, 화룡) 등의 6개 시와 안투(安图, 안도)·왕칭(汪清, 왕청) 2개 현을 관할하고 있다. 자치주의 수부 도시는 옌지이다.
연변은 중국의 소수 민족으로 편입되었으나 지금까지 한민족의 문화적 전통을 대체로 잘 유지하고 있다. 특히 의식주 생활과 관혼상제의 의식에서 고유한 조선족의 문화적 풍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말 그대로 한국에서도 사라진 옛 관습과 전통문화가 그대로 ‘살아 있는 민속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조선족 자치권은 많이 약화되고 중국동화정책이 강화되면서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이 많이 약화되어 가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만연해지면서 돈벌이를 위해 도시로 한국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중국과 북한의 관계 악화로 북한과 동포에 대한 관심이 많이 약화되었고, 남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경제적 부에 대한 선망과 아울러 동시에, 조선족에 대한 역사적 몰이해와 국내의 하급 대체 인력으로만 취급하는 인식에 대한 반발심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조국을 떠나 타국에 정착하게 된 지나간 아픈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진정한 동포애로 이들을 대하고 만날 마음의 준비가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 미주나 유럽에 거주하는 해외동포 이상으로 중국 거주 동포들에 대한 정부의 포용정책이 필요하다.
연변 아리랑
무엇을 찾아 여기 남의 나라까지 왔는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농토를 빼앗기고
단 하나뿐인 목숨 초개처럼 버리고라도
아무것도 해준 것 없는 나라 되찾으려고
눈물을 훔치며 집을 버린 사람들을 위해
조국은 한 번도 손을 잡아준 적이 없다
손톱이 빠지고 도가니가 무르고 닳도록
황무지에 불을 지르고 물 대어 논을 만들고
자금을 대고 독립군을 숨기고 먹이고도
해방된 날에도 돌아갈 때 돌아가지 못한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사람들을 위해
남북의 조국 정부는 무엇을 해주었는가
감히 마주 볼 수 없는 백두의 얼굴 앞에서
속을 알 수 없는 깊디깊은 천지를 바라보며
감출 수 없는 것은 분노와 부끄러움뿐
헐벗고 메마른 북조선의 산하가 안타깝고
돈 냄새 풍기는 남한 사람들이 한심하지만
해란강은 어머니 강 두만강으로 흘러가는데
묻노라 우리는 언제 돌아오라 부름받을 것인가
(시와 글 전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