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디와 나

시그마링겐의 어느 낡은 성에서 그와 함께 현장답사 중 찍은 사진


친구의 이름은 Hundefänger Carl Rudi Domidian이다. 아니 ‘훈데펭거’라니? 개 잡는 사람이라고! 그의 이름을 소개받으면 대부분 사람은 “징그럽게 ‘훈데펭거’가 뭐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필자도 1991년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같은 생각을 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본명이 아니라 유럽 문명에 대한 냉소적 관점을 표현한 자작 별칭이었다.

그를 알고 나면 그가 얼마나 순수하고 따뜻한 사람인지 느끼게 된다. 어떤 사람은 “꼭 산타할아버지처럼 생겼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는 한 예술가라기 보다는 미술을 좋아하는 철학자 같은 사람이다. 학창 시절 조금은 거칠고 급한 성격이라 주먹질도 곧잘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리기와 만화를 좋아했던 그를 보고 선생님이 그의 부친께 화가 수업을 권유했으나 보수적인 부친의 완강한 반대로 일반 학교에 진학하여 공무원 또는 사업가의 꿈을 키웠다고 했다.

졸업 후 어느 회사에 입사해 지점장까지 하게 되는데, 돈벌이로는 괜찮았지만 그 일이 자신이 가야 할 궁극적 인생이 아니라고 생각해 다른 길을 모색하였다고 한다. 한때 목수 일을 배웠으나 별 흥미가 없어 결국 예술가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약간 늦게 그것도 특별히 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거나 사사하지 않고 완전히 독학으로 예술가가 된 것이다. 20대 중반 그는 자기 방식대로의 수채화와 오브제 작업에 몰두했다. 특히 생활 주변에서 발견되는 새의 깃털, 뼛조각, 깨진 그릇 등을 활용한 작업은 자연미술가로서의 입지를 굳힌 오늘날까지 그가 즐겨 활용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의 작업은 자유로움이 가장 대표되는 느낌이다. 그가 만일 미술학교에 들어가 남들처럼 전형적인 화가수업을 받았으면 현재와 같은 자유로운 영혼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초기 화가 수행 시절 남다른 표현 방법으로 그는 얼마 가지 않아 자기 고향에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배운다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위험한가를 역으로 생각해 볼 문제다.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 제대로 잘 배우면 좋지만, 자칫 운이 없어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평생 돌아오지 못 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현장의 루디

루디는 작가 겸 시청의 삼림감시 모니터로 일하며 약간의 급료를 받는 모양이다. 따라서 습관처럼 산에 오르며 작업을 한다. 주변의 산에는 가는 곳마다 그의 작업들이 있었다. 오늘도 그는 산을 오르며 자신의 작업을 둘러보고 또 필요에 따라서는 보완하기도 한다. 이 사진은 그의 아이콘 같은 깃털 작업을 보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