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독서 출판 칼럼, ‘삼식의 생존 요리’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1.06 07:52 | 최종 수정 2024.01.07 20:09 의견 0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은퇴자들과 신년여행을 왔다.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 화제에 오른 것은 요리였다. 평생 삼식이로 살아온 이들이었다. 교사로서 정년퇴직을 한 뒤 요리학원에도 다닌 이가 유튜버들이 알려주는 지식을 활용해 요리를 하니 가화만사성이란 이야기를 듣고 너도나도 요리자랑을 했다. 요리를 하지 못하는 이는 설거지를 도맡아한다고 했다. 65세 이상인 남성들이다. 한 은퇴자가 아이디어를 냈다. ‘삼식의 생존 요리’란 제목으로 책을 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이 모임은 언제나 귀승전결이 책으로 끝나긴 하지만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은퇴자모임을 만든 것이 10년이 넘는다. 코로나19로 3년을 쉬었지만 해마다 연초에는 여행을 떠나곤 했다. 이들과 처음 펴낸 책이 『은퇴자들의 공부법』 이었다. 어떤 이는 나와 함께 펴낸 책이 벌써 10권에 가깝다고 했다. 일행은 급한 일이 없으니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대화를 나눈다. 은퇴자들이지만 강연이 많아 시간을 낼 수 없는 이들도 있다. 어제도 칠순이 된 한 분은 줌으로 두 시간 동안이나 수업을 하셨다. 그런 그들에게서 모두가 요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격세지감이었다.

물론 나도 요리는 한다. 돌싱이 되어 어머님을 모신지 15년이다. 나도 한 여인을 위해 요리로 헌신했다. 어제 7분 안에 돌솥밥을 하는 방법을 배웠다. 앞으로 어머님에게 늘 따뜻한 새 밥을 해드릴 수 있게 됐다. 이러니 배워야 한다. 어제 요리를 주제로 한 난담(亂談, 아무렇게나 떠드는 잡담)은 어떤 독서로도 얻을 수 없는 지혜를 안겨주었다. 일행은 숙소에서 만나 다시 세 시간 동안 여러 주제를 놓고 난담을 벌였다. 우리는 이렇게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서서 잘 익어가고 있는 것이리라!

황혼이혼이 급증하던 1990년대 중반의 일본에서는 혼자서 밥을 해먹어야 하는 중장년 남성을 위한 ‘아빠를 위한 요리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다. 막내가 결혼해 신혼여행을 떠날 때 나리따 공항에서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어주고 옆으로 돌아서서 ‘너도 빠이빠이’라고 말하는 ‘나리타 빠이빠이’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나이가 들고나니 모든 인간관계가 달라지는 세상이다 그런 면에서 어제 대화중에 나온 ‘삼식이의 생존 요리’는 ‘아빠를 위한 요리책’이 긍정적으로 순화된 기획이라 볼 수 있다.

오늘도 오후 늦게까지 여행을 한다. 이런 모임이 많았으면 좋겠다. 어제 새로 펴내는 내 자전의 편집자가 제목을 ‘잡지, 기록 전쟁’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카톡을 보내왔다. 부제는 “출판전문지 발행인이 써 내려간 25년의 생존 일기”였다. 어제 화두는 ‘생존’이었던 것일까? 나는 충분히 논의해서 압도적으로 모아진 의견이라 해서 동의한다고 간단하게 카톡을 보냈다.

갑작스런 출간 결정, 열흘만의 집필, 초스피드의 편집으로 1월 하순에는 책이 나온다. 올해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다. 무조건 잘 될 것 같다. 어제 일행 모두가 그랬다. 이렇게 나이든 젊은 이들이 서로 기운을 북돋우니 이런 여행이 정말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참, 어제는 날도 무척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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