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 교육칼럼, 학교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고민(4) .

연구학교 가산점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12.25 08:07 | 최종 수정 2023.12.25 08:11 의견 0

연말이 되면 학교에 따라 다양한 승진 점수가 부여되는데 우리 학교는 2019년부터 2025년까지 고교 학점제 연구학교로 지정되어 우리 학교에 근무하는 모든 교사(기간제 포함)들에게 (의무적) 일률적으로 연구학교 승진 점수 0.1548점(0.0129*12월)이 부여된다. 오늘 아침에 교내 메신저로 이 사실을 알리고 개인 나이스 번호를 묻는다. 언뜻 보기에는 매우 작은 점수처럼 보이지만 매년 교감 승진 순서에서 0.01점 차이로 탈락이 결정되는 분위기에서 0.1548점은 거대한 점수에 가깝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나는 이 점수가 전혀 필요 없다. 정년을 앞두기도 했거니와 이미 교장을 거쳐온 나에게 이 점수가 필요할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반드시 이 점수를 부여하여야 한다는 것이 업무 담당자의 설명이다.(교육부령) 필요 없다고 받지 않아도 되는 점수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참 어이없는 제도 아닌가!

문득 십 수년 전 일이 생각났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교무부장 선생님은 승진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던 분이셨다. 그런데 이 연구학교 점수가 없어 승진이 모호해지는 상황이었다. 연구학교를 하는 학교로 전보해 가면 될 일이지만 그렇게 되면 새로 옮긴 학교에서 다시 교무부장이 되어야 하는데(근무평정 일 '수’를 얻기 위해) 그 시간이 1~2년은 걸리게 되어 당시 그 선생님의 나이로 볼 때 어려운 점이 있었고(하지만 그 역시도 불확실한 상황), 이 학교에 그대로 있어 근무평정은 일 '수’를 획득하지만 필수적인 연구학교 점수가 부족한 상황을 보게 되었다.

결국 그분은 이 연구학교 가산 점수 부족으로 승진에서 탈락하셨고 몇 년 뒤 명예퇴직을 하시고 말았다. 같은 학교에서 같이 근무해 본 나의 견해로는 그분은 모든 방면에서 탁월한 교사였고 만약 교장으로 승진하셨다면 새로운 학교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분이셨는데 바로 이 연구학교 점수가 그분의 발목을 잡았고 마침내 그분을 명예퇴직으로 내 몬 것이다. 정말 우연히 연구학교에 근무했다는 이유로 이 점수를 부여받는 일과 정말 이 점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근무 기회를 잡지 못하는 일이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승진을 위해서는 행운이 꼭 필요하다. 심지어 나와 같은 공모 교장에게도 행운은 필수적이다. 승진 점수를 모아 모아 승진한 현재의 모든 교장 교감 선생님들은 행운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고 또 그 행운을 잡기 위해 나름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하지만 행운이 노력한다고 오는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자신에게 다가온 행운으로 승진에 이른 분들이 매우 겸허해져야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나는, 2023년 본의 아니게 연구학교 승진 가산점 0.0774(0.0129*6)를 받게 된다. 이 점수는 양도불가능하니 그냥 내 인사기록카드에서 내 정년 동안 겨우 살아 있을 것이다. 이 이상한 상황이 바로 현재 대한민국의 교사 승진제도의 일면이다.

일리야 레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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