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눌노리 5. 나의 불펜(bullpen)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12.23 11:27 의견 0

시골살이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시골에 집을 지었다. 시골살이 도시살이가 뭐 다른가? 고민이 크지 않았다. 고민해 볼 시간이 적었다고나 할까. 15가구가 몇 년간 함께 지속 가능한 농법으로 밭을 가꾸며 지내다 집을 지어 마을을 만들기로 했다는데 그중 부득이한 사정으로 빠진 한 가구의 자리에 우리가 급하게 동참했고, 아이러니하게 뒤늦게 합류한 우리가 가장 먼저 집을 짓고 들어와 살고 있다. 그러니 집을 짓고 나서야 시골살이를 고민하게 된 셈이다. 집을 먼저 짓게 되면서 비록 작은 집이지만 고심을 듬뿍 담아 공간을 구성했다.

동선의 편리성을 고려함은 물론 운무 띠를 두른 멋진 산을 볼 수 있고, 만월의 달빛은 잠자는 방에 가득 찬다. 고측창이어서 누우면 눈 맞춤까지 할 수 있다. 빛은 종일 외장 벽돌에 나무 그림을 그리고, 실내까지 그 빛의 하모니는 더해져 간다. 같은 집에서 산과 들과 나무를 보지만 느낌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바라보는 산과 나무는 움직이지 않지만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생각도 든다. 마치 주사위에는 분명 여섯 개의 면이 있지만, 우리가 동시에 볼 수 있는 면은 아무리 많아도 세 면뿐이라고 한다. 그 세 면의 조합을 날마다 다르게 해서 보는 것처럼.

나는 집안에서 시골을 바라만 보는 생활을 하고 있다. 반쪽짜리도 못 되는 시골살이가 분명하다. 집을 지어 놓고 몸만 시골에 부려 놓은 셈이다. 시골살이에 대한 고심은 건축에 쏟은 것에 비하면 십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했다. 준비랍시고 귀촌 귀농에 대한 책들을 찾아 열심히 읽긴 했다. 그때 읽었던 책들과 메모한 것들을 뒤적이다가 혼자서 슬쩍 웃었다. 초심과 구상은 충실했구나 생각하면서 웃고, 초심과 구상이 현재는 표류하고 있는 것을 알고 한 번 더 웃었다. 가장 먼저 집을 짓고 우리만 입주한 터에서 6개월가량을 살면서 여름내 헛풀을 맸고, 원주민인 이웃들은 여름내 땀 흘려 살뜰히 작물을 가꿨다. 나는 그 작물을 수확하는 이웃들의 모습을 눈팅하며 가을을 보내면서 시골 백수가 바로 ‘나’였음을 깨닫는다.

자칭 시골 백수로 살면서 느낀 것은 시골살이에 뭐 정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어슴프레 깨닫는다. 열심히 눈팅한 백수의 생각은 간단명료해졌다. 이웃을 따라 하면 된다. 그들의 바지런함을 배우고, 진정을 쏟아 작물을 키우는 모습, 수확물을 나누는 인정을 닮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눈팅하면서 보는 어떤 밭은 알뜰살뜰 가꾼 티가 팍!팍! 난다. 걷다가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예술이 따로 없다. 숭고함마저 느낀다.

그래서 요즘 나는 밭을 만들고 있다. 땅을 돋우고 있다. 뒷산에 올라서 낙엽을 모아 부엽토를 두 달 넘게 만드는 중이다. 나의 아침은 닭장 돌아보기로 시작된다. 어떤 책이었나?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닭똥을 ‘검은 금’이라 적었다. 나는 날마다 검은 금도 모으고 있다. 닭의 창자는 짧아 사료 소화 흡수 능력이 떨어지므로 약 70% 정도가 소화가 안 된 사료를 분변으로 배출시킨다고 한다. 그러니 잘 말려 사용하면 토양의 비옥도를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토양구조를 개선, 지속 생산 능력을 걍화시킨다니 금에 비유할 만하다. 몇 달 닭똥을 치우다 보니 닭똥이 칼러풀하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글 김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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