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있으면서 ‘수상한집’에 묵었다. 간판도 수상했고, 집의 구조도 수상했고, 집주인의 행동도 수상했다. 나도 3일 동안 수상한 생각에 사로잡혀 수상한 일을 수행했다. 낮에는 차를 빌려 제주 남북으로 출퇴근하며 비능률적인 동선을 따라 쏘다녔고, 저녁에는 제주세무서에 근무하는 파주에서 가르친 어른이 된 아이를 불러내 술을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퇴직금 1억 원을 아내 통장에 쏴주니 아내는 삼양 해수욕장 인근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딱 한 잔을 사줬다.
‘수상한집’은 강광보(姜光保)씨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다. 강광보의 삶은 이름처럼 빛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보호받지도 못한 고달픈 것이었다. 그는 1941년 제주시 화북동 서쪽 마을, 지금은 사라진 동네 곤을동에서 출생했다. 마을은 4.3사건 당시 불타 사라졌고, 그때 가족을 잃은 충격으로 친인척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광보 씨도 1962년 5월 큰아버지 도움으로 목선을 타고 오사카로 밀항했으며, 여러 눈을 피해 공장을 전전하며 살다 도쿄로 이주했다. 밀항 18년째 되던 1979년 5월, 일본 출입국관리소에 의해 체포되어 7월 제주도로 강제송환된 그는 제주항에 도착하자마자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고문을 받고 풀려났다.
한 달 뒤인 1979년 8월에 다시 경찰에 연행되어 65일간 고문 수사를 받다가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이유로 풀려났다. 7년 뒤인 1986년 1월 또다시 보안사에서 갖은 고문 끝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7년 형을 살았다. 이웃에 사는 아는 사람이 2009년 무죄판결을 받는 모습을 9시에 뉴스에서 보고 재심을 결심한 그는 2017년 광주고등법원에서 재심을 통해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광보 씨 개인의 삶 속에 4·3 사건, 강압 행정, 밀항, 고문, 간첩 조작 등 국가 폭력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강광보 씨는 2019년 무죄판결 보상금으로 본인 집터에 재심 판결에 도움을 준 비영리법인 ‘지금 여기에’와 함께 게스트하우스를 기획하고 ‘수상한 집’을 지어 국가 폭력의 실체를 알리고 있다. 집의 구조 또한 매우 수상하다. 집 속에 집이 있다. 소박한 시골집 위에 H 빔으로 새로운 집을 만든 형태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현관에 들어서면 옛날 집이 그대로 있고 그 옆에 광보 씨의 원룸과 2층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올렸다. 원래의 시골집은 아들이 감옥에서 나오면 그래도 몸 뉠 곳은 있어야 한다며 부모님이 손수 지은 집이라고 한다. 집은 6인치 시멘트 ‘보로끄’에 개량형 슬레이트 강판으로 지붕을 덮은 80년대 유행했던 보급형 주택이다.
부모님이 지은 집을 허물지 않고 그 위에 집을 덮어 지어진 집인데, 집 자체보다는 그 의미가 훨씬 크다. 집을 덮고 있는 큰 집은 국가를, 안에 있는 작은 집은 국민을, 이 집 속의 집은 국민은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건물 1층은 카페와 서재, 전시 공간으로 광보 씨의 억울한 이야기와 또 다른 억울한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특별히 가파르고 게스트하우스의 방은 ‘감빵’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광보네 다락방에는 세월호 기억 공간이 차려져 있고, 지붕 위에 설치한 시계는 죄 없이 감옥에 갇혔던 광보 씨 인생처럼 멈춰서 있다.
1층 남쪽 연결 통로에 금속판에 새겨진 수상한 글이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다
이 걸림돌에 발을 헛디디길 바랍니다.
그리고 잠시나마 그들의 삶을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귄터 뎀니히(Gunter Demnig)
며칠 전 퇴임식에서 ‘꽃길만 걸으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축복의 말이라고 듣고 온 마당에 길 가다가 걸림돌에 발을 헛디디라니! 이게 말인가? 술인가? 세상에 꽃길만이 어디 있을까마는, 의도하지 않은 것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다반사이고, 나 또한 여러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면서 수많은 시간을 상처를 안고 살아왔지만, 그래도 대놓고 길을 가다가 걸림돌에 발을 헛디디라니! 내가 발을 헛디디지 않고는 발을 헛디딘 다른 사람의 경우와 고통을 모를 것이니, 의도이든 아니든 발을 헛디딘 사람들의 뼈에 사무치는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뜻일까?
내가 ‘수상한집’에 와 있는 것도, 오름을 오르내리며, 오름 여기저기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묻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쫓으며 하루를 쏘다니는 것도 다 발을 헛디딘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닌가? 아무튼 나는 첫날 비행기에 내리면서 받은 수상한 전화에 대한 대답을 해야 했다. 왜 전화를 안 받냐고? 비행기 안에 있을 때 여러 번 전화를 한 모양이다. 어제 퇴직한 사람에게 모 기관 이사직에 응모하라고 한다. 노매드 인생을 살려고 결심하고 내려왔는데 지역에 또 붙잡힐 수 있는 일에 발을 담그라니? 오름을 오르내리며 이틀을 고민했고, 결국 없는 컴퓨터를 빌려와 지원서와 계획서를 써서 친구에게 보냈다. 인편으로만 접수한다고 해서.
둔지봉에서
둔지봉에 가면 오름에 오르지 마라
여기는 죽은 자들의 땅이니
아랫자락 또는 산허리쯤
수천수만의 무덤 천지를 홀로 거닐며
어떻게 죽어서 여기에 누워있는지
산담에 갇힌 당신에게 일일이 물으라
삶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등 붙이고 함께 눕는 일임을
먼저 산 자들이 알려줄 것이다
그럼에도 정말로 죽음이 궁금한 자는
여기 와서 다시
역사를 기억하는 억새에게 물으라
제 한 몸 던져 온전히 부서져야만
모진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불굴不屈과
다랑쉬 오름 너머 저 넓은 성산포 바다
포효와 격동에 다다를 수 있음을
흔들리며 비로소 보여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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