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43년 전(1981) 대학생이었으며 군복부 중 창립전에 퍼포먼스를 발표함으로써 ‘야투’의 일원이 되었다. 그 후 교사발령(‘83) 결혼(’84) 두 아이 출산(‘86, ’88) 등 사적 환경의 변화로 4~5년 활동을 유보한 기간을 제외하고 줄곧 자연미술연구가 또는 메신저로 살아왔다.
만시지탄은 있지만 오늘날 자연미술운동에 대한 외부의 평가가 분분해진 것은 매우 고무적이긴 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다. 따라서 외부의 시각과 관계없이 나는 나대로의 견해를 밝힘이 매우 중요한 일이 되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자연미술은 현장체험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작가는 무엇을 창조하기보다 자연에 기대고 의지하며 동행하는 태도를 지닌다.” 아울러 작업방식도 일정부분 “미술이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자연과 노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전혀 새로운 것으로써 기존의 미술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라서 의견이 분분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처음부터 작가로서 멋진 작품을 하려는 욕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스스로를 만족시켜주는 작업은 대부분 자연의 이법(理法)을 이해하고 편승하여 함께 이루어간다는 생각을 품었을 때 도달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의 전통인 도법자연(道法自然)이나 무위이화(無爲而化)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나의 자연미술은 20세기 후반의 환경미술이나 최근의 생태미술과 같은 예술의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자연미술은 ‘인식과 깨달음의 미학’ 또는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미술’이라고 말하고 싶다. 따라서 이 미술운동은 새로운 문맥으로 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미술작품은 작가의 창조물이며 작가에게 귀속된 것이다. 그러나 자연미술은 작가에 의해 창조되거나 재현된 것이 아니어서 작가와 자연 사이에 생성된 것으로, 하나의 생명체처럼 한시적 독립된 존재로 인식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작가와 대상사이에 존재하는 ‘무엇’으로 자연미술의 ‘중간지대’라 명명한다. 따라서 이 중간지대는 작가의 표현의지와 자연실체가 뭉뚱그려진 새로운 개념이다. 그리고 나는 이 특별한 구간을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이 만나는 지점으로 여긴다.
사람마다 개별성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30년 이상 이 미술운동에 천착한 나로서는 처음부터 도착점 없이 출발했듯이 언제나 만나는 현장의 다양한 시공간적 상황에 적응해야 했다. 그리고 땅에서 하늘, 머리에서 발끝까지 가능한 모든 감각을 열고 동원하려 노력했다. 때로는 느긋하게, 때로는 기민하게 또는 임기응변을 통해 성장 발전 진화하며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라도 이 미술의 요체인 자연은 언제나 그 중심에 있었다.
손으로 빚어 오랫동안 숙성된 김치는 특유의 맛을 낸다. 그런 김치의 맛은 다른 김치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구수한 된장도 항아리 안에서 숙성된다. 그래서 특별한 맛을 내게 된다. 양자 모두 사람의 손으로 빚지만 숙성의 과정에서 숨 쉬며 자연의 생명현상 또는 우주와 만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지점과 마주하게 된다. 맛의 결정도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이 부분을 나는 ‘숙성의 중간지대’라고 본다. 그리고 나는 이 특수한 구간을 ‘자연미술의 중간지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것이 한국자연미술의 독특한 맛이요 특질이므로 다른 개념이나 말로 설명될 수 없다. 다른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것은 마치 투가리 대신 접시에 된장을 담는 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