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생이 있었다. 상담을 하면서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수업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권유했더니, 당장 다음 날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왔다.
“선생님, 한 달에 얼마나 버세요?”
의자에 앉자마자 다리를 꼬고 어머니가 내게 던진 첫 질문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우리 동훈이는 한 달에 천 넘게 벌어요. 걔 앞으로 건물이 한 채 있거든요.”
나는 한마디도 끼어들지 않고 어머니가 말을 마치기만을 기다렸다. 눈빛이나 앉은 자세, 말투에 공격성이 가득했다. 흥분한 학부모를 상대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 동훈이한테 수업 시간에 잠을 자지 말라느니, 공부를 하라느니 하며 스트레스 주지 마세요. 선생님이 잘 모르나 본데요. 가난한 서민 자식이야 죽어라 공부해 대학 가서 취직해야 먹고살 수 있겠지만, 우리 동훈이는 아니거든요. 그깟 공부 안 해도 웬만한 대기업 다니는 것보다 많이 버는데, 왜 굳이 스트레스받으면서 공부하라고 해요? 어차피 대학은 외국으로 보내서 간판만 딸 거예요. 그러니까 수업 시간에 잠 자지 말라고 스트레스 주지 마세요. 또 그러시면 저, 가만히 안 있어요.”]
20년 넘게 교직에 종사해온 현직 교사이자 작가인 최문정의 자전적 고백인 『선생님, 죽지 마세요』(창해)가 전하는 학교 현실은 참담하다. “아이를 위해 매일 손편지를 써달라는 학부모,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모닝콜을 해달라는 학부모, 아이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라고 강요하지 말라는 학부모, 입시업체에서 작성한 생활기록부를 가져와 그대로 기록해달라는 학부모, 졸업 전에는 공개되지 않는 생활기록부를 인쇄해달라는 학부모……” 등 황당하고 부당한 요구를 하는 학부모들의 면면은 분노하게 만든다.
“학부모들은 갑작스러운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슬퍼하는 게 아니라 분노한다. 아이의 죽음에 대해 책임질 사람을 찾는다. 담임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학부모들은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원망을 퍼부으며 담임을 공격한다. 교통안전지도를 하지 않아 아이가 자동차에 치였다고, 학교 옥상 문을 잠그지 않아 아이가 추락했다고, 가정불화나 교우관계 등의 문제를 털어놓을 만큼 친밀하지 못해 아이가 자살했다고, 담임이 신경을 써서 상담을 더 자주 했다면 죽지 않았을 거라고……. 그러다가 가끔은 담임을 고소하기도 한다.”
이런 일을 왜 담임에게 맡기나! 학부모가 직접 하면 되지 않나! 나는 사범대학을 다녔지만 교사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니 현장은 잘 모른다. 나는 아이들의 문제 때문에 한 번도 학교에 가지 않았다. 딱 한 번은 학교에 갔다. 아이가 고3일 때 학교에 책 4,400권을 기증했다. 아이에 대한 모든 평가가 끝난 다음에 담임에게 전화를 한 다음 트럭 두 대에 책을 싣고 가서 학교에 내려줬다. 무슨 대가를 바라서 기증한 것이 아니었다. 그때 그 학교 도서관에는 3,000권의 장서가 있었는데 절반은 구 맞춤법의 책이었다. 나중에 졸업식 때 감사패를 준다고 오라고 했지만 나는 거부했다. 출판사가 증정한 책을 기증한 것이니 일종의 절도를 한 것이라서 감사패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내 모교에는 7,400권을 기증했는데 역시 감사패를 받으러 오라는 것을 거부했다.
학부모 입장은 교사와 조금 다를 수 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일부 교사들의 행태만 해도 충분히 분노할 일이었는데 그런 행태가 모두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작가가 전하는 학교의 현실은 너무 암울하다. 이런 현실에서 누가 교사를 하고 싶을까 싶다. 작가는 “우울은 가장 쉽게 전염되는 감정이다. 교사의 불행은 학생에게로, 학부모에게로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로 번져나간다. 그렇게 우리 모두 불행해진다. 불행에서 벗어나려면 우리 모두 변해야 한다. 그 변화를 위해 나의 개인적 경험을 정리하고 분석해 공개하기로 했다. 개인사를 드러내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 어느 때보다 출판 후 반응이 두렵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이런 기록은 되도록 많이 출간되는 것이 좋다.
작가는 이어서 “내 기억과는 전혀 다른 기억을 가진 학생, 내 의견이나 주장에 심기가 불편할 교장 · 교감, 내부 문제를 드러내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길 동료 교사, 내 경험을 믿지 못하는 학부모……. 모두가 나를 비난하고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서 “단 한 명의 교사라도 죽음에서 구해낼 수 있다면, 내 제자들이 사는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면, 나는 괜찮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평등교육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월간 <학교도서관저널>을 창간해 14년째 펴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학교 현실이 이렇게 되도록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나 하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물론 내 역할은 한계가 많다. 담장 안으로 들어갈 자격 자체가 없다. 그렇더라고 교실에서 웃음꽃만 필 수 있도록 내 나름의 노력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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